‘제3국행’ 생각하는 탈북민 여전… “관심과 이해가 바탕 돼야”

[기획취재⑥] 탈북민 코리아 엑소더스: 제3국행 택하는 탈북민들

[편집자주]
2019년 탈북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탈북 여성 고독사 사건 등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 부적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지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데일리NK는 ‘탈남'(脫南)해 제3국행을 택한 탈북민들에게서 한국 사회 부적응 원인을 살펴보고 탈북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과 노력이 무엇인지 진단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해외 지역 최대 탈북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영국 런던 남동부에 위치한 뉴몰든. 이 지역은 본래 한인타운이 형성돼 있는 곳이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영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남한 출산 교포와 탈북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 사진=데일리NK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한 탈북민의 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증했으나 현재는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다.

영국 내무부가 공개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01년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하고 영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받은 탈북민은 총 548명이다.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탈북민은 2007년 204명, 2008년 279명으로 200명을 넘었으나 2009년부터는 심사가 강화되면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탈북민 수가 급감했다. 실제 2009년에는 3명, 2010년에는 1명만이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고, 2015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은 탈북민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영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탈북민의 숫자가 급감한 것은 영국 정부가 한국을 거쳐 영국에 오는 ‘탈남(脫南)’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북한으로 돌아가 박해받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는 셈이다.

영국에서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급감하면서 영국은 더 이상 ‘탈남’을 원하는 탈북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말하는 탈남의 원인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어머니 한모 씨(당시 42세)와 아들 김 모 군(6세)이 숨진 채 발견된 탈북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40대 탈북 여성이 서울의 한 임대주택에서 백골의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에서 탈북민의 경제적 어려움과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들도 ‘한국에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기가 쉽지 않았고 탈북민에 대한 차별과 소외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며 이를 탈남을 결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 언급하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탈북민 402명 중 24.8%가 미국 또는 중국, 영국 등 제3국으로의 재이주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해외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탈북민의 비율은 2017년 22.7%, 2018년 24.1%였다가 2019년과 2020년 22%로 하락했지만, 2021년에는 26.3%, 2022년 24.8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 새 해외 이민을 생각하는 탈북민들이 다소 증가한 모양새다.

응답자들은 ‘한국 사회 내 탈북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에’, ‘한국 특유의 경쟁 문화를 견디기 힘들어서’,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안보 위기’ 등을 탈남을 원하는 이유로 꼽았다. ‘어느 분야에서 차별을 느끼냐’는 질문에는 고용 차별에 대한 응답률이 가장 높았으며 이는 37.6%에 달했다.

실제로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 최중화 씨는 “탈북민이라고 밝힐 때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 하도 면접에서 떨어지니까 북한 사람이라고 안 뽑나 싶은 생각에 북한과 말투가  비슷한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말했는데 그제야 면접에 합격했다. 탈북민이라고 하면 기업에서 무작정 안 뽑는다. 한국에서는 취업할 때부터 북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북민 정착 지원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탈북민들의 탈남 이유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통일부는 본보의 질문에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남북 간 사회문화적 차이 ▲경제적 문제 ▲심리·정서적 애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탙북민의 한국 사회 부적응 및 탈남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에 관한 질문에는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적응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나가고 있다”며 “탈북 아동 및 청소년의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 지원, 북한이탈주민 맞춤형 일자리 지원, 심리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해 탈북민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로 꼽는 문제들이 차별, 소외, 냉대 등 정서적인 부분에 집중돼있는 만큼 제도적인 지원에 앞서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순희 NKDB 총괄본부장은 “북한도 일정 부분 변하고 있고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들도 달라지고 있음에도 90년대 대량 탈북으로 인식된 탈북민의 이미지가 여전히 2023년 현재에도 일반 국민 다수에게 각인돼있는 것 같다”며 “20년 전의 이미지로 탈북민들을 인식하는 것은 아직도 통일이라는 이슈가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임 본부장은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바탕이 돼야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정부의 지원도 효과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 내 북한 전문가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알톤 영국 상원의원은 본지에 “영국에서 난민 이주와 관련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는 영국에 정착하는 이주민 수 감소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생명이 위험한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은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북 난민들이 영국에 있는 동안 언어를 배우고 통합하며 문화와 민주주의, 인권을 체득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들과 그 자녀들이 자유로운 한반도를 건설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데일리NK 기획취재팀=하윤아 기자, 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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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