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 21일 탈북민 정책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북배경주민과의 동행’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탈북민이라는 용어 대신 ‘북배경주민’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 통합을 위한 목적의 위원회가 오히려 또 다른 분열과 남남갈등을 낳았다고 본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사용하는 법률적 용어다. ‘북한이탈’이라는 어감이나 의미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은 그동안 수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다. 당사자인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자유민, 통일민, 북향민 등 새로운 용어에 대한 제언도 이어졌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 및 실천 과제로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사회 정착을 위한 지원체계 확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가 컸다. 지난 문재인 정권 시기 탈북민 강제북송과 탈북민 모자 아사 등 탈북민 정책을 등한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도 큰 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제대로 된 탈북민정책과 용어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너무도 컸다.
그런데 이번 국민통합위원회의 특별위원회 출범과 탈북민 명칭 변경은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을 만큼 실망스럽다.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 앞서 지적했듯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용어다. 용어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관련 기관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마련하고 공식적인 법률적, 제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통합위원회가 북배경주민을 발표한 날 동시에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7월 14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말을 법률적, 공식적으로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사용하는데,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민통합위원회에서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면서 엇박자를 낸 것이다.
둘째, 그동안 탈북민이라는 명칭 변경에 대해 탈북민 사회와 학계를 비롯한 현장에서는 자유민, 북향민, 통일민 등 여러 용어가 제안되었다. 역시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지역회의에서는 북향민 용어를 제안하며 의견수렴을 위해 설문조사 등 다각도로 논의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그만큼 용어 변경에 대한 논의가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런데 그동안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던 북배경주민이라는 단어를 갑자기 사용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국민통합위원회는 남한 생활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탈북민이라는 말을 쓰는 게 맞지 않고 동등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취지에서 이 용어를 썼다고 한다. 그런 취지라면 굳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애써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셋째, 특별위원회가 제시한 3대 중점과제는 이미 주무 부처인 통일부에서 검토, 시행하는 정책으로 전해 새로울 것이 없다. 특별위원회는 ‘지난 30년간의 정책을 되짚어보고 정착 단계별로 빈틈없는 통합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과욕이자 옥상옥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다. 탈북민 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학계,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눈물과 수고로 거듭해 온 결과다.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기와 주요 현안에 따라 정책과 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을 임기가 제한적인 위원회에서 30년간의 정책을 되짚는다는 건 그야말로 현실성 없는 탁상행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넷째, 이번 특별위원회의 공식 명칭은 ‘북배경주민과의 동행’이다. 위원장을 비롯해 16명의 위원 가운데 위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북배경주민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남배경주민(?)이다. 탈북민을 위한 위원회에 구색맞추기로 2명을 포함시켰을 뿐이다. 탈북민 관련 정부 기관, 단체에 탈북민 출신 기관장이나 대표는 전무하다. 굳이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면 탈북민 출신 위원장을 임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북배경주민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는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용어다. 실제로 북배경주민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어느 탈북민에게 질문했더니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출신성분이라고 답했다. 남한도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배경이라는 말이 출신성분을 주로 의미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성분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받은 그들에게 배경은 출신성분에 따른 또 다른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배경이라는 단어는 북한에서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어린이를 비롯해 10만 명이 강제동원되는 아리랑 공연에서 아이들이 담당하는 카드섹션이 바로 배경대에서 이루어진다. 최악의 인권유린이 이뤄지는 그 배경대가 탈북민을 포용한다는 배경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건 적절치 않다.
먼저 온 통일인 그들은 고향이 북한이고 필자는 고향이 남한인 같은 대한민국 국민일 뿐이다. 통합을 말하는 국민통합위원회에서 특별위원회라는 옥상옥을 만들고 왜 굳이 그들을 구별 지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작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전에 충분히 논의를 거쳤는지 다시 한번 따져 묻고 싶다. 제발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가족으로,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잘살아가는 이웃을 그냥 좀 가만히 두면 안 될는지.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과 자립의 방해 요소는 어쩌면 제도와 용어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다. 남한에 온 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냐며 울분을 토하던 어느 탈북민이 떠오른다. 그들도 우리 사회에서 똑같이 세금 내고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평범한 시민이다. 통합은 결코 거창한 말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의 출신 지역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통합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곁에 온 탈북민과의 아름다운 동행이 바로 통일의 시작이다. 먼 훗날 언젠가 다가올 통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로부터 시작하는 통일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바로 우리가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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