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시진핑 앞에 터뜨린 음악폭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환영하는 공연이 8일 밤 평양체육관에서 성대히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6월 8일 평양체육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는 음악 공연이 열렸다. 공연의 주제는 ‘조중(북중)친선은 영원하리라’였지만 실제 공연 내용은 단순히 친선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다. 혈맹이라 부르는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방문했으니, 축하공연은 의례적인 친선 도모의 장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선곡과 무대 연출을 보면, 화려한 친선의 외피 속에 숨겨진 북한의 공세적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북한 체제에서 음악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당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외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통치 기제다. 그래서 ‘음악정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진핑을 앞에 두고 김정은은 어떤 음악정치를 펼쳤을까?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공훈국가합창단, 국무위원회연주단, 삼지연관현악단은 물론 한동안 무대 전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모란봉악단 가수들까지 총출동한 무대였다. 대외적으로 중국에 가장 친숙한 모란봉악단 형식을 전격 복원한 것은 북한 당국이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우’로 보인다. 그러나 공연의 지향점은 결코 대외적 의존이 아니었다.

공연의 포문을 연 첫 곡은 북한에서 제2의 애국가로 통하는 장엄한 관현악 대합창 <빛나는 조국>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 무대 대형 배경대에 황금색 글씨로 선명하게 박힌 ‘자력부강’이라는 문구다. 시진핑을 앉혀놓고 외교 무대의 첫 메시지로 외부의 원조나 영향력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번영하겠다는 통치 담론을 당당히 천명한 것이다. 뒤이어 외교적 격식을 위한 중국 노래 연곡이 연주되었지만, 곧바로 이어진 <조국과 나의 운명>과 체력교예(서커스)는 무대조명과 수직 깃대를 철저히 북한 인공기의 삼색(붉은색, 흰색, 파란색)으로 도배하며 “조선은 강하다”는 국가적 기상을 시각적으로 압도했다.

이러한 국가주의 강조는 장르의 파격적 융합과 미디어 전략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구사되었다. 현대적 전자음악으로 편곡된 민요 <모란봉>이 연주될 때, 대형 화면에는 평양 화성지구와 려명거리의 화려한 고층 살림집 모습이 연출되었다. 가사의 “사회주의건설 좋을시구”라는 구절과 맞물린 이 연출은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이 이룩한 ‘평양 중심의 물질문화 성과’를 과시하는 시각적 선전효과였다. 2019년 시진핑 주석 방북 당시의 아리랑 대집단체조 중 아동 줄넘기와 씨름 공연을 복원해 정서적 유대를 자극하면서도, 배경에는 마식령스키장, 농촌부흥 단지, 지방발전공장 전경을 끊임없이 교차 노출하여 자신들의 치적을 선전하는 교묘함을 보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군가연곡과 체력교예·무술의 결합이었다. 실제 조선인민군 공군 유니폼을 착용한 교예 배우들이 공중에서 난도 높은 ‘인간 비행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조국은 영원히 기억하리라>라는 곡에 맞춰 무대 전면에서 군인들이 현란한 레이저 조명 아래 특공무술 격파 시연을 감행했다. 뒤이어 대규모 여군들이 제복을 입고 등장해 완벽한 일사불란함으로 군가 메들리를 소화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결사옹위와 일당백이라는 혁명적 군사주의 프레임이 무대를 완벽히 지배했다.

대중국 공연의 핵심 가수로 손꼽히는 모란봉악단 출신 김류경, 조국향, 박미경 등의 가수와 전자 바이올린, 전자기타의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어머니 조선아>에 이르러 삼색기를 든 수백 명의 무용수 위로 무대 상공에서 초대형 인공기가 하강하는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연출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시진핑 주석의 눈앞을 지배한 시각적 기호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아니라 북한의 인공기와 국장, 그리고 자력부강의 글발이었다.

이전 김정일 시대의 중국 인사 방북 공연이 동맹국의 지지에 사의를 표하는 수혜-시혜적 서사였다면, 김정은 시대의 이번 공연은 자신들이 이룩한 군사력과 자립 경제의 실체를 앞세워 ‘우리는 중국에 종속된 관계가 아니라, 당당히 국격을 나란히 하는 자립적 강대국’임을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의도를 보였다. 한마디로 ‘조중(북중)동맹’의 전제 조건은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라 독자적인 국가 주권과 힘의 실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경고를 음악정치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밀어붙여 사실상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오만함, 그리고 러시아 파병에서 보여준 군사적 실체에서 누구도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확신에서 기인한다. 북한이 이토록 군사력을 과시하며 자력부강을 외치는데 정작 우리의 현실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여전히 실체 없는 평화, 상대의 선의에만 기대는 ‘거짓 평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안보 불감증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 평화 구호로는 결코 김정은의 독재를 막을 수 없다’라는 점을 우리는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평양체육관을 핏빛으로 물들인 삼색 조명과 조선인민군의 구호는 ‘진정한 평화는 오직 압도적인 힘과 철저한 대비책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는 냉혹한 안보 현실을 깨워주는 경종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revious article텅 빈 농촌 상점에 충격 받은 도시 학생들 “선전과 현실 간극이…”
Next article마른 인분 50㎏씩 바치라는 과제에 “생산계획 넘쳐 수행했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