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착 10년…개인 사업 도전한 탈북민들 사연은?

[기획취재②] 탈북민 코리아 엑소더스: 제3국행 택하는 탈북민들

[편집자주]
2019년 탈북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탈북 여성 고독사 사건 등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 부적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지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데일리NK는 ‘탈남'(脫南)해 제3국행을 택한 탈북민들에게서 한국 사회 부적응 원인을 살펴보고 탈북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과 노력이 무엇인지 진단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해외 지역 최대 탈북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영국 런던 뉴몰든 지역 파크 로드(Park Rd)에 위치한 써니헤어살롱. 이곳은 탈북민 이선옥 씨가 운영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기획취재팀

영국에서 ‘사장님’이 된 탈북민들도 처음부터 이곳의 삶이 녹록한 건 아니었다. 영국에 가면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난민 지위를 얻기까지 적게는 1년, 길게는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영국에서는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들이 정부로부터 매주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고 무상 의료 서비스와 18세 미만 자녀 무상 교육도 지원받지만,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얻기 전까지는 취업할 수 없다. 난민 지위를 취득한 후에야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언어 문제로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은 탈북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이것이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 대부분이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는 런던 남부 뉴몰든에 모여든 이유다. 이곳에서는 말이 통하는 한인 사업장에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 탈북민들은 정착 초기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마트, 이삿짐센터 등에서 설거지, 배달, 이삿짐 나르기 같은 일을 했다. 그러나 영국에 정착한 지 10~15년가량이 흐른 지금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영국 런던 뉴몰든 지역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탈북민 이선옥 씨가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기획취재팀

한국서 탈북민·싱글맘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영국행 택해

런던 뉴몰든에서 ‘써니헤어살롱(SUNNY HAIR SALON)’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탈북민 이선옥 씨도 정착 초기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방 보조일을 했다. “그것도 참 힘들게 얻었다”는 이 씨는 그 일자리마저 주변 사람들의 모함으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실 이 씨는 탈북 후 한국에 먼저 정착했다. 한국 남자와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시댁과의 불화로 이혼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탈북민 싱글맘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이 씨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향했다. 이 씨는 “싱글맘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주변의 시선도 그렇고 아이들이 어린데 나가서 일을 하기도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처음 정착한 곳은 이슬람교도 난민이 많이 거주하는 영국 북쪽의 한 지역이었다. 영어를 몰라 처음엔 아이들과 집에만 있었다는 그는 영국 현지 교회를 통해 정착 도움을 받았다. 영국인 목사 내외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영국 사회에 차차 적응해갔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이슬람교도들의 괴롭힘이 이어졌고 아이들도 다니던 학교의 이슬람 기도 시간에 교실 밖에서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계속됐다. 영국에 도착한 지 4년 만에 비자가 발급되자 이 씨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런던 뉴몰든으로의 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오게 된 뉴몰든에서 식당, 마트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경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이 씨는 한국에서 배운 미용 기술을 활용해 영국에서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한국에서 취득한 자격증도 있었지만, 영국에서 미용실을 차리려면 영국인들이 인정하는 자격이나 경력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해 유명 헤어디자인 학교인 런던 비달사순 아카데미도 수료했다. 7년을 꼬박 일해 모은 돈을 몽땅 등록비로 써야 했지만 제대로 배워 영국인을 상대하는 미용실을 열겠다는 목표만 보고 과감하게 결단했다.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도 여러 미용실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다시 차곡차곡 돈을 모은 그는 마침내 영국 정착 14년 만인 지난해 3월 미용실을 개업했다.

최신 설비를 갖춘 대형 미용실은 아니지만 목표를 이뤘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뻤다는 이 씨. 한번 인연을 맺은 손님들이 멀리서도 찾아오고 지인을 소개해주기도 하면서 단골손님도 늘었다고 한다.

영국 생활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도 어느덧 대학생, 고등학생이 됐다. 공부를 잘한 큰아이는 의대에 진학해 의사를 꿈꾸고 있다. 이 씨는 “영국에 와서 정신없이 살았는데 애들이 바르게 커 줘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스트레스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영국 런던 뉴몰든 지역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탈북민 이정희 씨. /사진=데일리NK 기획취재팀

자본주의 경험 부족한 탈북민들에게 개인 사업은 쉽지 않은 도전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중심가)에서 ‘K-Café’를 운영 중인 탈북민 이정희 씨는 딸들의 교육을 위해 영국행을 택했다. 한국의 사교육 환경에 맞춰 아이들을 교육할 자신이 없었고, 딸들도 한국이 아닌 영국이나 캐나다로 가서 공부하길 원해서였다. 영국에 온 뒤 큰딸이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나면서 한동안 슬픔에 잠겨 아무 일도 하지 못했던 이 씨는 몸이라도 바쁘게 움직여 이겨내겠다는 생각에 마트 일을 시작했다.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 10년 동안 뉴몰든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주방에서 일했던 이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상업간부학교에서 식음료 생산과 판매, 조리법에 대해 정식으로 배워 음식에는 자신이 있었다. 차츰 뉴몰든에서 손맛 좋기로 소문이 나면서 ‘식당 하나 차리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식당을 차릴만한 종잣돈은 쉬이 모이지 않았다.

외향적인 성격의 이 씨는 영국의 한국 교민들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해 자연스럽게 인맥이 넓어졌는데, 그러면서 연을 맺은 재영 한국문화예술원(이하 문예원) 원장의 제안으로 지난해 7월 문예원 한편에 한식당을 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사업을 경험해본 적 없는 탈북민들이 영국에서 성급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여러 차례 봐왔던 터라 식당 개업 제안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는 이 씨. 하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남북이 함께 한국 음식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일이라 생각해 고심 끝에 제안을 수락했다.

다행히 지난 1년간 많은 손님이 식당을 찾아줘 수익도 냈다. 특히 영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맛보고 맛있다고 칭찬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이 씨는 “좋은 재료로 저렴하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북한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누구든지 한국 음식을 편안하게 접하게 하는 게 이 사업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 씨는 현재 재영탈북민총연합회 회장도 역임하면서 탈북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때로는 탈북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구매해 식자재로 사용하면서 재영 탈북민들의 자립도 돕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재영 한인회와 함께 한국 음식문화 행사들도 진행하면서 K-푸드 전도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씨는 “이번 8·15 광복절에도 한인회와 함께 행사를 열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데일리NK 기획취재팀=하윤아 기자, 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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