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MZ세대] “왜 국가를 위해 희생?” 애국심 강조에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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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청년교양보장법’은 코로나 시기 제정된 북한의 3대 ‘악법’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법은 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단속·통제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요. 청년 교양을 법률로써 뒷받침해야 할 정도로 정말 상황이 심각한 걸까요? 이에 데일리NK는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로 불리는 북한 청년들의 생활양식과 의식이 이전 세대와는 어떻게 다른지 추적해 보려 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8일 각 부문에서 청년들이 흘린 땀과 열정을 부각하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밝은 미래는 청년들의 것이고 청년들 자신의 손으로 당겨와야 하는 성스러운 애국위업”이라고 역할을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조선노동당 제2차 선전부문 일꾼(간부) 강습회가 열렸다. 보고에 나선 리일환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당 조직들과 당 선전부문 일꾼들이 격변하는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고 선전·선동 사업에서 뚜렷한 개진이 이룩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격변하는 현실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북한 당국이 체제 통치 기반의 중요한 축으로 여기는 청년 세대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데 선전·선동 사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 당국은 ‘청년교양보장법’까지 제정해가며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한 돌격대’로서의 역할을 청년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새세대 이른바 MZ세대들은 ‘왜 개인이 당과 수령,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국가의 정치적 선전·선동에 반발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충성이라는 덕목이 여전히 중요하게 주입되고 있으나 학교나 조직에서 이뤄지는 정치사상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는 많지 않다는 얘기다.

“국가를 위해 험지 탄원? 토대가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자원하는 것” 

북한 매체들은 “수많은 애국청년들이 국가의 방침을 높이 받들어 사회주의 건설의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탄원 진출하고 있다”는 기사를 지속해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에 거주하는 20대 청년 A씨는 데일리NK에 “경제적 동기와 사회적 압력 때문”이라며 탄원에 자발성이 결여돼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나 청년조직에서 험지로 탄원할 것을 요구하는 방침이나 포치(지시)가 수시로 하달되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탄광이나 건설장 등에 자원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A씨는 “요즘은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국가를 위해 험지를 선택한 청년 영웅이 나왔다하면 앞에서는 박수를 치지만 뒤에서는 ‘정신이 나갔으니 저런 선택을 한다’, ‘동무들 사이에서 취급받지(어울리지) 못한 대상들이나 국가의 선전을 믿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토대나 출신이 좋지 않아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사회 진출에 유리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험지에 탄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다만 청년들의 관심이 당과 국가의 발전이나 사회주의 혁명보다는 개인의 윤택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북한 당국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최근 북한 청년동맹(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이 하달한 학습자료에는 “사회주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당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끓어 넘쳐야 할 청년들이 개인적인 돈벌이와 경제적 안정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타개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담겨 있었다.

北 MZ세대, 삶의 목표로 ‘경제적 안정’, ‘사회적 성공’ 꼽아

MZ세대에 해당하는 북한의 20대 청년들에게 앞으로 5~10년 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입당’, ‘박사원(대학원) 진학 후 학위 취득’, ‘무역일꾼으로 해외 진출’ 등의 답변이 나왔다. 그러나 삶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사회적인 성공’, ‘경제적 안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특히 박사원 진학과 학위 취득을 원하는 청년들이 많아진 것은 김정은 정권이 과학과 교육을 중시하는 정책 기조를 취하면서 고학력자가 경제적·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과거에는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 또는 박사원에 진학하는 것 자체를 삶의 목표로 두고 사는 청년들이 많았다면, 현재 북한의 MZ세대들은 입당이나 학위 취득 또는 어떤 특정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을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두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 정권이 청년들을 당과 체제를 떠받들 ‘미래세대’로 여기고 청년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청년들은 개인의 행복과 성공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로써 국가가 청년들에게 바라는 바와 청년이 원하는 삶 간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북한 청년들이 국가의 발전이나 사회주의 혁명보다 개인의 행복과 성공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 급격한 시장의 발달, 한국 영화·드라마 등 외부 정보의 유입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은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소위 MZ세대, 청년들은 부모가 장마당 세대이거나 본인이 장마당 세대일 가능성이 크다”며 “국가의 배급 체제 붕괴를 경험했고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국가가 국가관이나 애국심을 교육해도 국가가 선전하는 사상이 현실과 유리돼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하는 등 청년들의 행동을 억압·통제하기도 하고 반대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거나 예술공연에 초청하는 등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강온양면 정책을 사용하고 있으나 청년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