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7 북한해외노동자, 탈주와 기회의 사이에서

2019년 2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 세관 안에 북한 여성들이 모여 있는 모습. /사진=데일리NK

북한 해외노동자의 탈주

최근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건설노동자 탈출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DailyNK 정태주 기자, 北, 파견 노동자 이탈 차단 위해 러시아에 비밀리에 협조 요청, 2023년 1월 3일자) 이미 중국 현지에서 일부 여성 노동자들이 코로나로 인한 장기 격리 및 감금생활의 열악함(DailyNK 장슬기 기자, 中 파견 北노동자들 2년째 감금 생활… “하루종일 일만해 괴롭다”, 2022년 4월 6일자)과 이를 견디지 못한 채 일부는 탈출하였다는 보도가 전해졌기에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북한의 해외 파견 현장은 시기와 파견지를 불문하고 거의 동일하게 관리되고 있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한 체력 저하, 밀집된 장소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함께 숙식하는 거주 형태, 당국으로부터 방역 관리 및 보호조치에서 배제되었을 가능성 등이 유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과도한 통제와 노동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관리 형태가 ‘위기 상황’에서 생명과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물론, ‘탈출’이라는 노동자들의 행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노동자의 해외 파견은 북한 사회 내에서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일하는 만큼 노동 가치가 매겨지는 시장에 대한 이해, 외부 세계의 자유로운 생활상과 노동 현장의 선진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 정보와 이동의 자유의 제한이 풀리는 새로운 공간에의 거주 경험 등이다. 해외에 파견되어 외부 세계를 직접 접하면서, 북한 정부가 숨겨왔던 외부 현실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인내하고 순응하였으나, ‘정보’는 문제의식을 일깨우고 이윽고 그들은 저항감을 갖게 되었다.

북한의 노동 현실과 가치

다시 파견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어떤 이유로 해외 파견을 선호하는지를 살펴보겠다. 북한의 노동 현실에서 노동 가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물론 가족 단위의 배급제와 일한 노동자에게 생활비가 제공된다고 하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노동을 해야 하는 의무(「헌법」 제30조, 「사회주의로동법」 제4,5조)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로 인해 부업을 하여 시장에서 얻은 수익을 공식적으로 소속된 직장에 일정금액 납부하고 출근을 면제받는 8.3근로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시장에 의존하기는 어렵다. 시장은 자신이 생산하거나 확보한 물자를 거래하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불법, 비법적 행위에 대한 단속의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다. 따라서 직업적 탐색의 측면에서 소위 ‘먹을 알’이 있는 직업의 인기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직장은 토대와 성분이 좋은 경우이거나, 뇌물 공여에 따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북한 노동자 해외 파견 규모가 확장되면서, 기존 파견자들의 경험담이 전파되고, 외부 세계를 볼 수 있는 이점과 동시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파견은 일종의 와크(허가권)에 따라 세부 계획이 수립되면, 각 기관별로 일정 수준의 대상자를 차출하여 검증 과정을 통해 해외 파견에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토대는 물론이고, 가족 성분을 8촌까지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의 면담 과정에서 기능과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탈의 위험이 낮은 사람, 즉,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본다.

북한 노동자들이 파견된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한 현장 사무소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내걸려 있다. /사진=이승주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프로파일러 제공

노동 현장의 열악함

6개월에서 1년 간 걸리는 검증 과정에서도 파견 후 맡을 업무와 월급 수준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며, 노동 현장의 열악함을 미리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해외 파견 직후 여권을 압수당한 채 직장과 거주지만을 오갈 수 있는 수준의 통제를 당하기에 쉽게 파견현장을 벗어날 수도 없다.

해외 파견지에서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은 현장의 문제점을 과도한 노동시간, 상납금 착취와 감시, 통제 등으로 꼽고 있다. 먼저 달성해야 하는 일의 양을 기준으로 밤낮없이 일하는 ‘도급제’ 형식의 계약 형태가 처벌의 위협 하에 강요되고 있다. 임금 또한 탈출의 위험으로 귀국 후 제공되는 것으로 수표로 갈음하고,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다시 임금에서 제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비자발성을 강제노동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며(ILO 강제노동협약(제29호 협약) 제2조), 구체적 지표로는 부채로 인한 결박, 임금연체, 신분증 압수, 취약성의 악의적 이용 여부 등을 관련 지표로 제시하고 있다(ILO Indicators of Forced Labour, Special Action Programme to Combat Forced Labor, 2012). 대부분 북한과의 동맹 관계에 놓인 국가에서 북한 노동인력을 충당하는데 급급하기에 해당 업체나 현지 지역 관리기관이 이를 눈감아 주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빈틈’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그 열악함은 가중된다. 밀집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집단적으로 머무는 공간은 감염에 취약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숨겨진, 분리된, 특수한 형태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거주 및 근로 공간의 문제점을 알고, 이동 및 치료를 받기 위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전언이다. 결국 이들의 탈주 의지는 파견으로 얻은 기회를 압도하게 된다.

파견의 지속성과 기회의 생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실험에 대한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2017년 9월 11일 결의 제2375호를 통해 유엔 회원국 관할권 내 북한 노동자에 대한 신규 허가를 제한했으며, 2017년 12월 22일 결의 제2397호를 통해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도 24개월 이내에 송환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해외 노동자 규모는 크게 감소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2021) 그러나, 중국의 파견 규모는 단동 한 지역에만 8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DailyNK 장슬기 기자, “북한 노동자 단둥에만 8만 명…코로나 검사 과정서 밝혀져”, 2022년 11월 14일자), 파견국의 수요와 북한의 파견 동기가 여전히 매우 강력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파견 현지를 방문해 본 결과, 북한의 노동인력을 수용한 대부분의 파견 국가들이 북한 만의 ‘특수한 정치적 성격’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파견 현장은 생활 총화를 진행하는 등 북한 측의 방식대로 노동인력을 관리하게 되며, 북한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있는 북한 사무소마저 존재했다. (필자, 2018년 중국 훈춘시 현지 조사 결과)

그러나 탈출한 노동자들의 동기를 들으면, 한 번 외부 세계를 나온 뒤,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의 파급력을 주목하게 만든다. 러시아에서 근무한 뒤 귀국한 보위원이 러시아와 북한을 비교하는 취중 실언을 했다가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DailyNK 정서영 기자, “러시아서 귀국 보위원 술자리서 ‘이말’ 했다가 결국 인사조치”, 2020년 2월 18일자)이 새로 습득한 ‘정보’의 힘을 보여준다. 과연 이를 단속한 보위부의 말처럼 북한에 갇혀 살던 어느 누가 ‘당의 배려로 누구나 함부로 갈수 없는 외국에 다녀 왔음에도 자본주의 환상에 젖어 사상이 타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금 노동 현장의 인권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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