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25 김정은 시대 북한의 법과 통치의 진화

북한이 주민 교양용으로 제작한 동영상 화면. 범죄를 저지른 주민들이 공개 비판장에 불려나오는 모습. /사진=데일리NK

김정은 시대의 법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단절된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기존 통치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변화한 사회환경에 맞게 집행 방식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주민을 정치적으로 분류하는 성분제도와 국가 중심의 형법이라는 기본 구조는 유지되고 있지만, 시장화와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과 집행 방식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통치의 수단 : 형법과 성분제도

독재국가에는 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최고지도자의 말이 곧 법이라면 굳이 새로운 법률을 만들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오히려 법을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 문제는 법의 양이 아니라 법의 목적이다. 북한의 법은 국가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국가 권력이 국민을 더욱 정교하게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북한의 형법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 국가의 형법이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북한 형법은 국가와 사회주의 체제,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보호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국가전복이나 조국반역, 반국가선전, 간첩, 체제 비방과 같은 국가범죄가 형법의 핵심을 이루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한 형법이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의 법은 성분제도와도 분리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 통치의 가장 중요한 지속성은 성분제도이다. 성분제도는 주민을 핵심계층·동요계층·적대계층으로 구분해 국가가 누구를 우선적으로 신뢰하고 감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분류 체계라면, 법은 그 대상에게 어떤 행위를 금지하고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집행 기준이다. 다시 말해 성분이 ‘누구를 관리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법은 ‘무엇을 처벌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통치는 성분제도와 법률이 서로 결합하여 작동하는 구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통제 법률 

김정은 시대 들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2022~2023년 형법 개정에서는 사형 적용 대상이 11개에서 16개로 확대되고 국가안전과 체제보호 관련 범죄 규정이 강화되었으며, 시장화와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활동에 대한 형사 규율도 지속적으로 보완되었다. 또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새로운 특별법이 잇달아 제정되면서 한국 드라마 시청, 한국식 말투 사용, 해외 영상 유포 등이 처벌 대상이 되었다. 사회가 변화할수록 국가가 처벌하는 행위의 범위 역시 함께 확장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시장의 확대는 휴대전화 보급을 늘렸고, USB와 SD카드를 통해 외부 정보와 한류 문화가 주민들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기존 형법만으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지자 북한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을 개정해 통제의 범위를 확대했다.

김정은의 지시와 법률: 통치 명령의 제도화

그렇다면 최고지도자의 지시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김정은의 지시와 법은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에 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는 특정 사건이나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국가보위성(현 국가정보국), 사회안전성, 검찰소, 재판소가 동일한 기준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따라서 지시는 법률과 제도로 구체화된다. 예를 들어 ‘반동사상을 강력히 단속하라’는 방침이 내려지더라도 무엇이 반동사상인지, 누가 단속할 것인지, 어떤 처벌을 적용할 것인지, 사형이나 재산 몰수는 어떤 경우 가능한지까지 법률로 규정되어야 전국적인 집행 기준이 마련될 수 있다.

이처럼 법은 주민을 통제하는 동시에 국가기관을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법률과 규정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서 법이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라면, 북한에서 법은 국가기관의 행동을 표준화하고 주민 통제를 일관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통치 매뉴얼에 가깝다. 따라서 최근의 변화는 법치주의(Rule of law)의 발전이라기보다 법을 통한 통치(Rule by law)의 정교화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법개혁인가, 체제수호인가

이러한 흐름은 최근 김정은이 최고재판소와 최고검찰소를 방문한 뒤 하달한 1호 방침에서도 확인된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김정은 최고재판소·최고검찰소 방문 후 내려진 1호 방침은?) 방침에는 증거 중심 재판, 변호권 확대, 권리 보호, 권한 남용 방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현대적 사법제도의 요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사법기관의 최우선 임무를 ‘당과 혁명, 사회주의 제도의 수호’라고 명시했다는 점은 이러한 변화의 본질을 드러낸다.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적법절차와 인권 담론을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실제 목적은 체제 수호를 위한 법 집행의 전문성과 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즉, 법률을 이용해 독재체제를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실제 집행 과정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이 법은 단순히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학교는 학생들의 언어와 복장을 점검하고, 청년동맹은 생활총화와 사상투쟁을 강화했으며, 인민반은 주민들의 외부 영상물 시청 여부를 감시했다.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은 휴대전화와 저장매체를 불시 검열했고, 적발된 사건은 검찰과 재판소를 거쳐 형사처벌로 이어졌다. 하나의 법률이 교육기관, 사회단체, 수사기관, 사법기관을 동시에 움직이는 통합적 통치 장치로 작동한 것이다.

2023년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표현과 억양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되었고, 학교와 직장, 언론기관까지 감시 대상이 확대되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비상 방역 관련 법률을 근거로 국경 접근과 이동 제한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가보위성과 국경경비대는 이를 근거로 월경 시도와 접경지역 주민을 강력하게 단속했다. 사회 변화가 생길 때마다 법률은 새로운 통제 수단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 /사진=데일리NK

국경을 넘는 법 집행: 해외까지 확장된 통치

북한의 법 집행은 국경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와 유학생, 외교관에게도 동일한 법적·정치적 기준이 적용되며, 이를 집행하기 위해 해외 공관과 보위기관이 동원된다. 2014년 중국에서 기독교 활동을 했거나 한국 선교사와 접촉한 북한 주민을 체포하기 위해 국가보위성, 정찰총국(현 정찰정보총국), 북한 영사관이 협력한 사례는 이러한 초국가적 집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의 법은 영토 안의 주민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북한 주민까지 관리하는 초국가적 통치의 근거로 활용된다.

북·러 밀착으로 북·중 관계가 경색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확인되었다. 김정은은 중국 주재 북한 공관에 1호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계기로 해외 공관은 정보 수집과 외화 조달 등 대외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라는 신호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외 공관과 정보기관의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 집행 명령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북한의 법과 지시는 국내 통치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자국민과 외교기관을 움직이는 초국가적 통치의 운영 원리로도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김정은 시대의 법은 단순한 처벌 규정이 아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법률로 제도화하고, 이를 국가기관 전체의 행동 지침으로 전환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일관되게 집행하도록 만드는 통치 기술이다. 김정은 시대에 법률이 급증한 이유는 법치주의가 발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체제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통치 방식이 더욱 정교하게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AI와 디지털 감시가 바꾸는 북한의 미래 통치

결국 법은 무엇을 처벌할 것인지를 규정하고, 국가기관은 이를 집행한다. 앞으로는 여기에 AI(인공지능)와 디지털 감시 기술이 결합하면서 법 집행은 더욱 자동화되고 정밀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세계 여러 권위주의 국가는 얼굴인식, 음성인식, 빅데이터 분석, 행동 패턴 분석 등을 활용해 감시와 사회 통제를 고도화하고 있다. 북한 역시 AI 연구와 디지털 전환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며, 국경 감시 카메라를 통한 탈출 시도 차단, 주민의 휴대전화 검열, 전자기기 포렌식, CCTV 확대, 디지털 기록 관리 등 기존의 통제 체계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여건을 점차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그 자체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과 같이 법이 권력을 제한하기보다 권력의 집행을 정당화하는 체제에서는 AI가 주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기술이 아니라, 법 집행의 효율성과 정밀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이 크다. 과거 성분제도가 ‘누구를 관리할 것인가’를 결정했다면, 김정은 시대의 법은 ‘무엇을 처벌할 것인가’를 규정했다. 앞으로 AI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예측하는 새로운 통치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법과 집행은 변화와 지속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성분제도라는 통치의 기본 원리는 유지되고 있지만, 법은 사회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AI와 디지털 감시 기술과 결합하면서 더욱 정교한 통치 체계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북한인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법률만을 분석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성분제도와 법, 그리고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결합해 새로운 통치 메커니즘을 만들어가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독재국가의 미래는 법이 사라지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법과 기술이 결합해 권력이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는 사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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