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23 북한 외교관 망명 일지 속 숨겨진 인질화

홍순경 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2010년).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1999년 2월 17일, 태국 방콕.

북한 외교관 홍순경은 아내와 함께 태국 주재 북한 대사관을 빠져나왔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향한 탈출이었지만, 동시에 가족 일부를 체제에 남겨두는 비극적 선택이기도 했다. 그의 망명 일지는 북한 체제가 국경을 넘어 어떻게 개인을 추적하고, 가족을 인질로 삼아 통제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외교관의 망명, 그러나 끝나지 않은 감옥

당시 홍순경은 방콕을 떠나 파타야에서 한 달 가까이 은신했다. 그러나 3월 9일 새벽 5시, 홍순경은 북한대사관에 매수된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포승줄에 묶인 채 북한 공관원들과 함께 라오스로 강제 이송되던 중,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혼란 속에서 그는 태국 총리 추안 릭파이에게 구조를 호소하는 편지를 남겼다. 이 편지는 곧 국제사회에 알려졌고, 전 세계를 분노케 했다. 현직 외교관을 외국 땅에서 납치해 본국으로 압송하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외교 공관’이라는 외피 아래 자행됐다는 점 때문이었다.

결국 태국 정부는 즉각 개입했다. 납치에 가담한 북한 공관원 일부는 출국금지와 추방 조치를 받았고, 사법 절차도 개시됐다. 그러나 사건이 드러난 대가로 홍순경 가족이 치러야 했던 희생은 컸다. 그의 막내 아들은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억류됐다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풀려났다.

북한 외교의 민낯 : 특권과 통제의 이중 구조

북한 외무성 외교관들은 평양외국어대학, 김일성종합대학 등 선별된 엘리트 코스를 거친다. 외무성 입문 자체도 쉽지 않지만, 해외 파견은 중앙당·외무성·국가보위부의 다층적 검증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신원 조회가 아니라 가족 성분, 과거 행적, 사회적 관계망 전반을 통해 ‘충성의 총합’을 평가하는 절차다.

해외 파견은 북한 사회에서 분명 특권이다. 외국 생활 경험,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 제한적이지만 외화 접근의 기회까지 주어진다. 그러나 이 특권의 이면에는 일상화된 감시가 존재한다. 출국과 동시에 국가보위부 요원이 배치되고, 사상 동향 보고는 상시적으로 이뤄진다. 여권 역시 필요 시 소지할 수 있을 뿐, 실질적 관리권은 대사관과 당 조직에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잇따른 해외 이탈 시도가 발생하자, 북한은 해외 간부·무역대표·보위원들까지 여권을 회수해 현지 영사관에 보관하는 조치를 취했다. 국경 밖에 있어도 이동의 자유는 봉쇄된 상태였다.

가족 인질화와 사회적 연좌제 

홍순경 사건의 본질은 ‘이동 통제’가 ‘가족 인질화’로 작동하는 구조에 있다. 과거 북한 외교관은 해외 파견 시 가족 전원을 동반할 수 없었다. 자녀 중 단 한 명만, 그것도 연령 제한을 두고 허용됐다. 나머지 가족은 평양에 남겨졌다. 이는 명백히 탈출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였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때는 자녀 동반이 다소 완화됐지만, 태영호 공사의 탈북 이후 조치가 다시 강화됐다. 장기 근무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자녀 동반 출국이 허용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사실상 가족은 체제의 ‘담보물’이 돼야했다.

가족 연좌제는 이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1996년 잠비아 주재 북한 외교관 현성일 씨 역시 부인 최수봉 씨의 망명 시도로 인해 북한으로 강제 소환될 위기에 놓이자 뒤따라 망명을 결심했다. 그는 함경남도 당책임비서였던 현철규의 아들이었고, 그의 탈출로 아버지는 핵심 요직에서 지방 공장 지배인으로 전락했다.

홍순경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긴급소환 전보가 오기 전, 이미 상급자는 체포돼 감옥으로 끌려갔고 관련 인력들은 연쇄 소환됐다. 사회적 연좌제가 일상화된 북한에서 소환장은 귀환 명령이 아니라 체포 통지였다. 그는 “들어가면 체포되고 가족은 파멸된다”는 판단 속에서 탈출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곧 큰아들을 북한에 인질로 남겨두는 결단을 전제로 했다.

가담자에서 피해자로

이 사건의 또 다른 비극은, 많은 외교관들이 한때 체제 폭력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홍순경 역시 1990년대 동남아에서 탈북자 체포 작전에 가담했던 경험을 증언한다.
“본국 지령이 떨어지면 식칼이라도 쥐고 체포하러 갔다”는 그의 고백은, 북한 외교 공관이 외교 기관이 아니라 보위부의 해외 거점으로 기능해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체제는 충성도 높은 외교관조차 끝내 신뢰하지 않는다. 출국 직후부터 감시가 시작되고, ‘사상이 좋지 않다’는 보고가 올라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체제의 자산이 아닌 제거 대상이 된다. 그렇게 외교관은 하루아침에 가담자에서 피해자로 전락한다.

북한은 늘 흑색선전으로 대응했다. “거액 횡령범”, “마약사범”, “외국 정보기관에 매수된 배신자” 홍순경 역시 ‘국가식량구입비 8천만 달러 횡령범’이라는 조작된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고영환의 회고처럼 실제로 그들이 들고 나온 것은 “지갑 속 몇 십 달러”에 불과했다.

국경 밖 인권침해를 멈춘 결정적 변수

홍순경 사건은 분명히 보여준다. 북한의 연좌제와 통제는 국경을 넘는다. 여권 회수, 가족 인질화, 강제 소환, 해외 납치 시도까지. 이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초국가적 인권 침해다.

주목할 점은 태국 정부의 대응이다. 태국은 이 사건을 외교적 마찰이 아닌 주권 침해이자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북한의 ‘유감 표명’과 특사 파견 제안을 일축하고, 아들 원명 씨의 무조건적·즉각적 석방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세웠다. 추안 릭파이 총리는 직접 나서 석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 외교관 전원 추방을 경고했고, 태국 사법당국은 실제로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법 집행에 착수했다.

이 선명한 태도는 북한의 초국가적 납치 시도를 공개적으로 제어한 드문 사례로 남았다. 체류국의 명확한 법치적 대응이 초국가적 억압을 멈출 수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 순간이었다.

홍순경의 망명 일지는 단순한 개인의 탈출기가 아니다. 그것은 북한 체제가 국경 밖에서도 사람을 인질로 삼아 통제하는 방식, 그리고 그 폭력이 언제 멈출 수 있는지를 동시에 증언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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