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8 핵과 인권의 연결, 의식을 전환해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체제 유지를 위한 생존수단이자 협상무기로 활용되었고 이후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거의 전적으로 북한의 핵 도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며,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슈로서의 위치는 공고했다.

핵 도발은 북한 체제 하 주민들을 통솔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사회 저항적 움직임을 차단하고 대내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대외적 위기감을 끌어올리는데 ‘핵’은 유용했다. 북한 주민들은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보다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당국으로부터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 바빴다. 고난의 행군이 도래해도,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도 북한 주민의 저항의지는 크게 발현되지 못했다. 이 가운데 인권 상황의 개선은 처참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핵 문제는 이렇듯 외부 세계의 시선을 차단하고 북한 주민의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북한 당국은 북한의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핵개발에 투입하고, 나아가 주민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사회는 인권 문제의 방치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으며, 도외시된 생존권의 문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발간한 특별보고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https://www.tjwg.org/report-data/report/)’에서 지적한 핵 시설에 관한 인권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주목한다. 먼저, 핵실험 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들의 건강권 침해 문제이다. 이들에게는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나 그 외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둘째, 비단 북한 주민들의 식수 문제 뿐 아니라, 북한산 농수산물자 및 특산물의 유통 흐름 상, 이 문제를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하여 살펴볼 필요성 까지도 제기한다. 보고서는 핵에 잠식되어 버린 인권 문제로의 연결 지점을 제시하고, 우리의 인식을 확장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주민 건강권 및 관련 인권 침해

특히, 주민들의 건강권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핵실험장 반경 40km이내에 행정구역 3개 도가 걸쳐져 있으며, 2008년 기준(Data from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DPR Korea 2008 Population Census, 2009, p.252-253)으로 총 8개 시 군에는 108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핵실험장 인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건강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관한 연구는 일천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위 보고서, TJWG, 2023, p9). 2008년 인구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길주군을 포함한 함경북도의 여섯 가구 당 거의 한 가구(15.5%)가 지하수, 우물, 공동수도, 샘물 등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초 인프라의 열악함으로 강물이나 우물 등으로 물을 길러 식수를 해결하는 가구는 여전히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상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의 자연 환경 의존도는 매우 높으며, 핵 실험장 관리의 질적 수준이나 건강권 측면의 관심 및 이해도가 현저히 낮을 것을 고려하면 위험성은 더 크다.

건강권뿐만 아니라, 관련된 주민들의 인권 침해 양상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핵실험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거나, 강제 노동을 통한 착취 및 보안상의 이유로 직업 대물림을 하는 등 노동권 전반의 침해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장슬기 기자, 핵실험 준비 끝내놓고 재는 北…풍계리 주변에선 이례적 움직임, DailyNK, 2022년 6월 17일자)

정보 은폐와 불법 유통의 영향

해당 지역에 거주한 적 있는 증언자들은 보고서에서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나 자신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어떤 사전 고지나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힌다. 관련된 소문만이 암암리에 퍼져 있을 뿐이다.(DailyNK, 풍계리에서 내려온 물 마시고 암환자 늘었다 소문 돌아, 2017년 12월 26일자)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2013년 남쪽 3번 갱도 입구로부터 계속해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 위성사진에 포착된 바 있다.(위 보고서, TJWG, 2023, p.22) 이로 인한 토양 오염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강경호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현재까지의 측정 자료에 의하면 방사성 물질 유출은 전혀 없으며 주위 생태환경도 아주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증언자들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고 한다. 아울러, 해당 시설 인근은 산세가 험하고 이중삼중의 보안 과정을 거쳐야 접근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사회 감시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재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단순한 인식도 이제는 접어야 한다. 특히 방사성 물질은 물을 통해 길주 평야 등의 농산물과 근해의 수산물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확산을 크게 우려한 바 있다.(위 보고서, TJWG, 2023, p.37) 한국 사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보고서는 특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하여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까지 유통되었을 것이고,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 당국의 불법 유통은 쉽게 근절되거나 검역 과정에서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특산물이 어디에서 자라고, 어떻게 국경과 바다를 넘나 들고 소비되어 왔는지 파악할 필요성을 제기된다. 아주 작은 정보라도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추적하는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 당국의 책무성과 남은 과제

북한 당국은 핵 시설의 운용과 관리의 측면에서 책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핵과 인권 문제’에 대한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올해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 Commission of Inquiry) 설립 10주년을 맞아 NGO의 탐색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해당 조사위원회가 설립되고 조사를 진행하는데 많은 NGO들의 헌신에 기반한 노력과 협력이 있었다. 2014년 보고서의 발표 이후에도 북한 당국의 책무성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을 묻는 근거 자료를 축적하고, 정보에 어두운 북한 주민들에게 충실한 정보원으로서 기능하는 다양한 NGO들의 활동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북한 인권 시민단체들의 활동 무대는 유엔 메커니즘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관련 단체들의 결집을 주도하거나, 한국 정부, 동아시아 각국 정부 등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주체들 간의 진전된 논의를 주문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또한 이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인식을 전환하는데도 기여한다. 우리의 관심은 핵 도발의 위협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핵 시설의 운영 및 관리의 측면에서 상시 존재하는 우리 모두의 건강권 및 생명의 위험성에도 머물러야 한다. 풍계리와 만탑산은 북한 당국의 비인권적 정책에 희생된 북한 주민들과 인간안보를 위협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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