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에서 내려온 물 마시고 암환자 늘었다 소문 돌아”

안녕하십니까. 이광백입니다. 2015년 유엔은 대한민국 서울에 인권사무소를 설치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감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2016년 말 탈북민들의 증언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은 통일 후 인권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결정적인 법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어떤 인권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해 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인권침해를 지속하고 있는 가해자들이 인권침해 행위를 중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행 : 북한 당국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지금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거듭된 핵실험으로 인근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풍계리 인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증상은 있지만, 원인은 알 수 없어 ‘귀신병’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하는데요, 길주군 길주읍에서 살다가 백혈구 수치 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는 김소연 씨 모시고 방사능 피해에 관해 이야기 들어봅니다.

– 오늘 함께해 주실 김소연 씨 나와 계신데요, 안녕하세요? 북한에 계실 때는 어디서 사셨나요?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서 살다가 2013년 12월에 탈북해 2014년 여름에 한국에 입국한 김소연입니다.

– 길주에서 2013년 말까지 살았고 2014년에 한국에 입국하신 거군요? 길주군에서 태어나신 건가요?

네, (태어나서) 50년을 살았죠.

– 길주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길주에서는 직장 안 다니고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탈북했어요.

– 그럼 고난의 행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가정주부를 하면서 장사를 했어요.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안 해 본 장사가 없죠.

– 길주군 정도면 다른 여타 시·군에 비해서 규모가 조금 큰 편인가요?

북한치고는 큰 군에 속해요. 교통도 편리하고 과일도 잘 되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길주가 이름난 고장이에요.

– 인구를 보니까 전체 인구가 14만 명 정도 되네요. 한국에 있는 군 중에서도 14만 명이 되는 군이 많지 않은데 굉장히 큰 거군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핵실험장이 있던 위치가 풍계린데 길주군에서는 어느 동네에서 사셨나요?

길주군 소재지인 길주읍에서 살았어요.

– 길주읍은 풍계리하고는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풍계리를 재덕이라고도 하는데, 풍계리 소재지가 길주군부터로는 한 50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거기(풍계리 소재지)부터 핵 기지 중심까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보통 풍계리 소재지까지는 50리 밖에 안 돼요.

– 10리가 4Km라고 하면, 20Km 정도 되는군요. 굉장히 가까운 곳이었군요.

네, 가까운 거리예요.

– 그러면 (길주) 읍내에 사셨으니까 여러 사람들이 뭉쳐 살았을 것 같은데 풍계리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인가요?

풍계리에는 협동농장 마을이 있고 길주-혜산 전기철도가 통과해요. 그래서 철도 노동자들도 살고 있었어요.

– 북한에 계셨을 때 핵실험을 몇 번 정도 경험하셨다고 봐야 할까요?

저는 2013년 2월에 있던 3차 핵실험까지 경험하고 나왔어요.

– 세 번 정도 경험하신 셈이군요. 그러면 2006년 1차 핵실험이 있었는데 이때도 길주에 사셨던 거군요. 혹시 핵실험 했을 때 기억나세요?

첫 실험 때는 진동도 안 느껴지고 핵실험 하는 것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조선중앙방송에서 길주군 풍계리에서 제1차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자랑찬 성과를 거뒀다고 막 보도하고 하니까 우리가 알게 됐어요. 또 1차 핵실험 끝난 후에 길주군 회관 앞에 노동자 각계 계층이 모여서 군중 집회를 했어요. 성공을 경축하는 집회죠.

– 당국에서 성공했다고 보도가 나온 이후에 경축집회를 했군요. 보도에서는 그 지역이 길주군이라는 것도 공개했나요?

길주군 풍계리라고 딱 나왔어요.

– 길주군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경축집회를 한 거군요? 그럼 거의 다 알고 있었다는 거네요?

네, 그때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죠.

– 2차 핵실험 때도 당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었나요?

2차 핵실험은 경축집회도 하지 않았고 기억나는 게 없어요.

– 3차 핵실험 같은 경우는 한국 기상청이긴 합니다만 3.9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그 진동을 한국에서 감지했는데요. 혹시 3차 핵실험 때에는 그 진동을 느낄 수 있었나요?

그때는 진동이 엄청 컸거든요. 제가 단층집에 있었는데 그 날 12시 전쯤이었어요. 집이 막 흔들리고 집 밑으로 탱크가 지나간 것처럼 막 흔들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앉아서 ‘또 핵실험 했구나’ 싶었죠.

– 직감적으로 이게 핵실험으로 인한 진동이라는 것을 아셨군요.

네, 그리고 5분도 안 돼서 3차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보고를 하더라고요.

– 2차 핵실험에 대해선 특별한 보도가 없고 크게 진동도 안 느껴졌군요. 그런데 3차는 보도도 나오고 진동도 심했군요.

제 기억엔 그래요. 3차 핵실험 때 진동은 마치 지진처럼 심하게 진동했어요. 흔들림이 딱 땅 밑에 뭐가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아래를 바라볼 정도로요.

– 그 정도였군요. 혹시 그 외에 이상 현상이나 그런 것은 없었나요?
 
그 후에는 제가 본 건 없어요. 제가 그해 말에 탈북했으니 다음 핵실험에 대해선 모르고요.

– 네 그렇군요. 다시 말하면 1차와 3차 핵실험은 당국이 발표하는 것을 들었고 그 지역도 길주군 풍계리 이렇게 명시를 했어요.

네, 길주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에서 성공했다고 했어요.

–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도 얼마 전에 포항에 지진이 났습니다만 지진이 날 정도면 피해가 있잖아요. 건물이 갈라진다거나 그릇이 깨진다거나 주택이 부서진다거나 그런 피해가 길주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당국의 조치는 없었나요?

그런 것은 전혀 없죠. 집이 어떻게 됐는가, 이런 걸 물어보는 곳도 없어요. 자치단체나 이런 곳에서 문의하거나 이런 게 전혀 없어요.

– 피해가 있었나요?

3차 때까지 집이 부서졌다는 소리를 저는 못 들었어요. 

– 3차에도 역시 대대적으로 북한 당국이 성공을 경축하는 보도를 했나요?

그저 진동이 울리고 몇 분 안 돼서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계속 보도했어요.
 
– 3차 핵실험 당시, 진동이 핵실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방사능 오염이라든지 다른 피해 위험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때 당시 우리끼리 병을 얻고 사람들이 죽고 하는 게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지역에 암 환자들이 특히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핵 실험장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어서 병이 많다고는 조금씩 얘기를 했었죠.

– 당시 핵실험에 대해선 매우 위험하다는 의식은 하지 못했는데 암 환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핵실험에서 나온 물 때문이 아닐까 조금씩 의심했던 거였군요. 핵실험장이 있었던 풍계리에 가본 적이 있나요?

네, 전 많이 가봤죠. 80~90년대 우리가 고난의 행군 때 거기에 있는 송이버섯 따려고 갔었죠. 지금은 핵실험장 골짜기를 철조망으로 막아서 못 들어가게 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핵실험장 골짜기까지 버섯 따려고 들어갔어요. 들어가다 혹시 비탈을 잘못 타서 미끄러져 걸리면 거기에 있던 군인들이 총으로 위협하면서 올라오지 말라고 그랬어요. 그 후에 가니까 골짜기 안에를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거기 밭도 많았는데 싹 철수시켰어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쯤부터 못 들어가게 다 차단해놨어요.

– 그런 식으로 군사 시설처럼 핵 실험장을 관리하고 조성했던 게 80년대부터군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까지 그곳을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근처에 있는 골짜기까지는 갔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골짜기까지도 못 들어가게 했던 거죠. 80년대 후반 이때부터 골짜기로는 못 들어가게 했던 거죠.

– 그럼 2006년 1차 핵실험 이전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시설을 만들고 넓혀왔던 거군요.
 
그걸 만드는 건 80년대부터 만들었어요.

– 1차 핵실험 이후에 핵실험장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2006년 이후로는 못 가봤어요. 송이버섯을 더 이상 딸 수가 없으니 갈 필요가 없었죠.

– 소문으로라도 핵실험 이후 풍계리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라든지 들어본 적이 있나요?

거기 지역 주민들은 핵으로 인한 피해를 전혀 못 느끼고 사는데 거기에 살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딸이 풍계리로 시집을 갔는데 임신해서 낳은 아이가 성기가 없이 태어났대요. 그때에도 그런 소문이 있었어요.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나오는 물이 있다는 데 거기에 있는 물고기들이 몽땅 죽어서 다 떠내려왔고 사람들은 몰라서 건져 먹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진행 : 알겠습니다. 핵실험으로 인한 피해 사례에 대해 경험을 하셨던 것들을 바탕으로 두 번째 시간에 더욱 자세히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핵실험 이후 방사능오염으로 실제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나오셔서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