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토양오염 감시부터 오염지역 조사와 위험성평가, 오염 제거, 위반자 처벌까지 전반을 규정한 ‘토양오염방지법’을 지난해 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이 토양오염을 별도의 법률로 규율하고 감시부터 정화까지 전 과정을 구체화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데일리NK가 입수한 북한 토양오염방지법에 따르면, 이 법은 2025년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930호로 채택됐다. 법은 총 6장 48개 조문으로 구성됐으며, 부칙에 따라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우선 법은 토양오염을 인위적인 오염물질의 영향으로 토양 속 유해물질 함량이 ‘토양환경질기준’을 초과한 상태로 정의했다. 유해물질에는 산과 알칼리, 중금속, 살충제, 폴리염화비페닐을 비롯한 지속성유기오염물질과 병원성 미생물 등이 포함됐다(제1~2조).
눈에 띄는 대목은 토양오염을 금지한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고 감시와 조사, 위험성평가, 제거계획의 승인과 집행, 사후 효과성평가로 이어지는 절차를 하나의 법률 안에 설계했다는 점이다.
오염 원인자뿐 아니라 그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 주체, 원인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토지를 관리하거나 이용하는 기관에도 제거 의무를 부과했다. 위반 정도가 무거우면 기업소 폐업과 시설·설비 몰수, 책임자에 대한 행정 및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했다.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간을 비롯해 육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근간인 토양이 오염되면 생태계가 교란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게 된다”며 “북한이 토양 보전과 오염 문제에 주목해 관련 법을 제정했다는 것은 환경 보전은 물론 주민 보건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전국 감시망 구축…조사·위험성평가까지 단계화
법에 따르면 중앙국토환경보호지도기관이 전국적인 토양오염 감시망을 형성하고 운영하도록 돼 있다. 지역 국토환경보호기관은 감시에 필요한 물질·기술적 수단을 갖추고, 측정·분석 결과를 상급기관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제7조). 또한 감시 지점과 측정지표, 감시 주기는 오염원의 분포와 토지 이용 상태, 토양의 물리·화학적 성질 등을 고려해 정하도록 했다.
아울러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이나 시설 주변, 농산물의 오염물질 함량이 기준을 초과한 지역, 중대한 오염사고가 발생했던 지역에서는 오염 정도와 위험성의 변화를 보다 엄격하게 측정·분석하도록 했다(제8~9조).
이밖에 전국에서 수집된 측정 결과는 지역별 토양오염 상태와 추가 조사 대상 등을 명시한 ‘토양오염감시통보서’로 작성돼 내각과 지방 인민위원회, 관계기관에 전달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제10조).
대상으로 지목된 토지를 조사한 결과 토양환경질평가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판단되면, 보건과 생태환경 분야의 전문기관이 주민 건강과 농산물 안전, 생태환경에 미칠 위험을 평가하고, 오염 유형과 범위·강도, 제거 목표와 방법 등을 담은 ‘위험성평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제11~13조).
다만 현재 확보된 법문만으로는 토양환경질평가기준과 유해물질별 허용기준의 구체적인 내용과 토양 시료의 채취와 분석 방법, 조사 주기, 위험성평가의 세부 방식을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감시통보서가 실제로 작성되는지, 오염도가 높은 지역이나 국가 핵심 기업소에 불리한 자료도 상급기관에 그대로 보고되는지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명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제정한 ‘토양오염방지법’이나 선전하는 ‘전국적 토양환경 감시체계’ 같은 제도적 장치는 문서상으로는 정교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북한은 계획경제 특유의 하달식 법령 구조를 가져 법문 자체는 체계적이고 엄격하지만, 이를 실현할 첨단 분석 장비나 정밀 시약 같은 하드웨어와 전문 인력 및 표준화된 검증 체계라는 소프트웨어가 모두 부족한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토양 정화와 오염 감시는 지속적인 전력 수급과 최신 장비, 분석 시약 등이 필수적인 기술 집약적 분야”라면서 “전력 및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의 산업 현장에서 정화 시설이 정상 가동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생산에 앞선 공해방지’라는 법적 명분은 경제 계획 달성이라는 명목 아래 후순위로 밀리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관측했다.

광산·제련소 넘어 주민 생활에서 발생하는 오염 관리도
토양오염방지법은 북한 산업 시설 주변에서 제기돼 온 환경오염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NK는 2025년 6월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황해북도 평산 우라늄 정련공장 침전지에서 배수로를 따라 흘러나오는 폐수의 양이 전년도 10월보다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위성사진에서는 폭 약 2m의 배수로를 따라 검은색 침출수가 흐르는 모습이 식별됐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위성+] 평산 우라늄정련공장 침전지 폐수 방류 포착)
이후 같은 해 8월에는 폐수 방류 정황이 외부에 알려진 뒤 북한 당국이 평산 우라늄공장 간부들을 문책하고, 폐수 정화시설과 배수로, 흙막이 등을 보완하는 현대화 설계를 추진했다는 내부 소식도 전해졌다. 다만 당시 문책과 설비 재정비가 새로 제정된 토양오염방지법에 따른 조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위성에 찍혀 나라 망신”…평산 우라늄공장 간부 줄줄이 처벌)
이밖에 본보는 2022년 평안남도 북창알루미늄공장의 제진·정화 장치가 노후화돼 분진과 오염물질이 공장 주변 주거지역과 학교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내부 소식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소식통은 공장 주변에서 호흡기 질환과 피부염을 호소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원심분리기 재료 생산 북창알루미늄공장, 오염물질 배출 심각)
주목해볼 부분은 법의 관리 대상이 광산이나 중화학공업 시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은 공업폐기물과 생활폐기물, 농업용 비료·농약, 축산 분뇨와 폐수, 관개용수 등 농축산업 생산, 주민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염원을 폭넓게 규율했다.
이는 북한 당국이 토양오염을 산업과 주민 생활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농산물에서 기준 이상의 오염물질이 검출된 지역을 중점 감시 대상으로 삼고 주민 건강과 농산물 안전에 미치는 위험을 평가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토양오염을 식량 안전과 보건 문제로 연결한 것으로 풀이된다.
명 선임연구위원은 관리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오염 수준이 높은 광산·제련소 주변의 중금속 오염지역과 식량 생산에 직결되는 농경지 토양을 꼽았다. 그는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 일대의 대규모 광산·탄광, 흥남·함흥·청진 등의 제련소 주변은 수십 년간 광산 폐수와 카드뮴·납·비소 등 중금속에 무방비로 노출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북한은 과거 식량 증산을 위해 집약적으로 투입했던 화학비료와 농약이 토양에 장기간 축적되면서 산성화가 심각해진 데다, 지속적인 산림 훼손에 따른 토양 유실 문제까지 겹쳐 있다”면서 “주민 먹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농경지 지대의 토양 산성화 및 잔류농약 오염 조사가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평산 인근 주민 이상 증세…법에 규정된 위험성평가 실시됐나
법에 주민 건강과 농산물 안전에 대한 위험성평가 절차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최근 평산 우라늄 정련공장 인근에서 나타난 주민 이상 증세도 주목된다.
본보는 지난 7월 24일 황해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평산 우라늄 정련공장 인근 하천 유역의 주민들이 탈모와 구토, 피부 반점, 심한 무기력증 등을 집단적으로 호소했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들은 공장에서 나온 폐기물이나 오염수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은 평산군과 서흥군 일대 주민의 이동을 통제하고 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의 검문검색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평산 우라늄 정련공장 인근 마을서 집단 괴질 발생…일대 전면 봉쇄)
주민들이 호소한 증상이 방사성 물질이나 중금속, 그 밖의 공장 폐수 때문인지는 객관적인 시료 분석과 의학적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방사능 피폭’이나 ‘토양오염에 따른 질병’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점은 토양오염방지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에 규정된 토양 측정과 현장조사, 주민 건강 위험성평가가 실제로 실시됐는지 여부다.
법대로라면 유해물질 취급시설 주변과 중대한 오염사고가 발생한 지역은 엄격한 측정·분석 대상이 되며(제8~9조), 토양환경질평가기준을 초과하면 보건·생태환경 분야 전문기관이 주민 건강과 농산물 안전에 미치는 위험을 평가해야 한다(제11~13조).
그러나 평산 일대에서 토양과 하천수, 지하수에 대한 시료 채취와 유해물질 분석이 진행됐는지, 위험성평가가 이뤄졌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이런 절차 없이 주민 이동 통제와 정보 차단에만 그쳤다면 법률에 규정된 환경·보건 절차와 실제 현실과의 간극이 드러난 사례가 될 수 있다.
오염 원인자 우선 책임…책임자 개인 행정 및 형사처벌도
법은 오염지역을 정화하는 단계에서 오염 원인자에게 우선적인 책임을 부과했다. 토양오염을 일으킨 기관·기업소·단체와 개인이 제거 의무를 지며, 책임 당사자가 변경되거나 개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 주체가 정화 책임을 이어받도록 했다. 또 오염 원인자를 확정할 수 없을 때에는 해당 토지를 관리하는 기관과 실제 이용하는 기관이 오염을 제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제30조).
또 정화가 끝난 뒤에는 전문기관이 제거 효과를 평가하고 도·직할시의 관련 기관이 이를 심의하도록 했다. 정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면 제거 계획을 다시 작성해 집행해야 한다(제39조).
다만 법은 오염 발생 당시의 기관과 현재 토지 이용기관이 다른 경우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 오염 제거에 드는 정화 비용을 어느 주체가 어떤 비율로 부담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법은 법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손해보상 ▲기업소 폐업 및 시설·설비 몰수 ▲책임자 개인에 대한 행정 및 형사처벌까지 폭넓게 담고 있다. 법 위반을 단순한 시정명령에 그치지 않고 기업소 운영 중단, 책임자 처벌까지 연결한 것이다.
법에 따르면 토양오염방지 질서 위반 정도가 무거우면 기업소 폐업과 시설·설비 몰수도 가능하다(제41~42조). 또 오염 제거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오염 확산과 2차 오염 방지 대책, 긴급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경우에는 3개월 이하의 무보수 노동 또는 노동교양 처벌을,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3개월 이상의 처벌도 가능하다(제45조). 아울러 ‘엄중한 결과’를 발생시킨 책임자에게는 강직과 해임, 철직 처벌을 내릴 수 있고, 그 위반행위가 범죄에 이르면 형법에 따라 형사책임도 물을 수 있다(제46~47조).
다만 폐업이나 몰수, 3개월 이상의 처벌을 가르는 ‘정상이 무거운 경우’, 강직·해임·철직의 전제가 되는 ‘엄중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처벌에 대해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확보된 법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실제 법 집행 과정에서 국토환경보호기관과 감독·검열기관, 법기관의 판단에 따라 처벌 대상과 수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제대로 된 법 집행 여부가 관건…국제사회와의 협력도 필요
토양오염방지법은 북한이 토양오염을 독립적인 환경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오염 발생 이전의 예방부터 조사·정화·처벌까지 행정절차와 책임 체계를 구체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전국 감시망을 통해 오염 의심지역을 찾아내 측정과 조사, 위험성평가를 거쳐 정화 대상을 지정한 뒤 제거 계획 승인과 집행, 사후 효과성평가까지 진행하는 절차를 하나의 법률 안에 설계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실제 토양오염 방지와 주민 건강 보호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려면 우선 토양환경질평가기준과 유해물질별 허용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지역 국토환경보호기관이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중금속과 지속성유기오염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장비와 전문인력을 갖췄는지도 주목해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오염된 토양을 굴착·운반하고 안전하게 정화하거나 보관할 시설과 기술, 오염 원인자를 추적할 수 있는 측정자료와 관리기록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계획 수행과 군수·핵물질 생산이 우선되는 북한의 기업 운영 구조에서 국토환경보호기관이 대형 광산이나 제철소, 화학공장, 핵 관련 시설의 조업을 실제로 중단시키고 정화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에 규정된 감시와 조사, 위험성평가, 정화 절차가 실제 공장과 광산, 농경지에서 작동하는지, 오염을 일으킨 국가기관과 국영기업소에도 책임을 일관되게 묻는지는 향후 북한 내부의 법 집행 실태를 통해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명 선임연구위원은 “환경 개선은 단순한 처벌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막대한 재정적 비용과 선진 정화기술이 수반되어야 한다”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문호를 열고 친환경 기술 도입을 위한 ‘피해 저감형 국제협력 프로젝트’를 수용하는 한편, 처벌 위주의 제도에서 ‘기술·재정 지원형’ 체제로 유연하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북한이 자체 작성한다는 감시통보서나 위험성평가보고서는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상태”라면서 “독립적인 제3자 모니터링과 현장 실사, 공동 조사를 허용해 환경 데이터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자체적인 감시·정화 역량만으로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국제 환경규범을 매개로 외부의 기술·재정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명 선임연구위원은 “토양오염만을 직접 다루는 단일 국제협약은 없지만 스톡홀름·바젤·로테르담 협약 등 관련 환경협약과 연계한 협력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면서 “특히 남북 모두가 협약의 당사국이며 지금도 꾸준히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생물다양성협약(CBD)을 매개로 협력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생물다양성협약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의 목표 7 ‘환경오염 위험 저감’,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5 ‘육상생태계 보호’,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의 ‘토지황폐화 중립(LDN)’ 등은 토양 생태계 건강 회복을 위한 국제 협업의 훌륭한 접점”이라며 “한반도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남북 환경협력은 한반도 전체의 생태계 건강성을 회복하고 토양이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증진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북한 토양오염방지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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