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지금도 많은 이들이 ‘3대 세습 독재’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 김정은 체제를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우리는 분명히 새로운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 이른바 ‘김정은 체제 2.0’이다. 세습 체제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권력 구조와 통치 방식, 대외 전략이 전면 재설계된 체제를 의미한다.
이번 9차 당대회(2.19~25)는 그 전환점을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다. 겉으로는 연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대와 질적으로 다른 권력 운영 방식이 보다 명확히 제도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 김정은 개인 권력의 ‘완결형’ 구조가 구축되고 있다. 김정은은 더 이상 김일성·김정일의 후계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통치 이념과 권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주요 인사들의 김정은 단독 초상 배지 착용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후광에서 벗어나 ‘김정은 중심 체제’로의 전환을 일상 속에서 각인시키는 장치다. 실제로 9차 당대회 발언에서도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언급은 형식적으로 축소됐고, 계승 서사는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김정은 자체를 체제의 출발점으로 재정의하려는 흐름이다.
이와 맞물려 내부 사상사업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양강도에서 ‘김정은 사상’ 학습이 강화되고 있으며, 김정은을 선대 지도자를 넘어선 ‘유일무이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내부 소식통은 “이제는 수령님(김일성)보다 원수님(김정은) 사상을 더 많이 강조한다”고 전했다. 이는 김정은을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는 작업이다. 결국 지금의 변화는 ‘세습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 신화의 구축 과정이다.
둘째, 당 조직의 재편은 비서국 개편과 신진 세력의 전면 배치를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9차 당대회를 계기로 비서국 기능은 더욱 세분화(당 비서 8명 → 12명 확대)되고, 원로들은 일부 정리되면서 실무형·충성형 인사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정책 집행 속도와 충성도를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재설계다. 동시에 기능별 책임과 감시를 분산시키는 구조를 통해 각 부문이 교차적으로 관리되는 ‘다층적 통제 시스템’이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당규약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이번 개정은 ‘김정은 중심의 수령 유일사상체계’를 보다 명확히 규범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존 ‘김일성-김정일주의’ 중심의 이념 틀이 김정은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그의 사상과 노선이 당과 국가 운영의 절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권력 구조를 사상과 규범 차원에서 고착시키는 과정이며, 장기 집권 체제의 제도적 완성 단계로 볼 수 있다.
셋째, 대외 환경을 활용하는 전략도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러-우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북한은 더 이상 고립된 객체가 아니라, 긴장을 활용하는 능동적 행위자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미국을 상대로는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제재 완화를 전제로 한 조건부 대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중국과는 열차·항공 운행 재개를 통해 물류와 인적 교류를 복원하며 경제 협력을 다시 다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벨라루스 등 비서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외교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이는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외교 공간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으로, 김정은식 ‘외교 다극화’의 일환이다. 북한은 국제 질서의 균열을 활용해 협상력과 생존 공간을 동시에 확장하고 있다.
넷째, 당규약 개정을 통해 재차 강조된 ‘새 시대 5대 당건설 노선’은 내부 통제와 민심 관리를 결합한 통치 매뉴얼로 작동하고 있다. 정치·조직·사상·규율·작풍을 포괄하는 이 노선은 체제 운영의 기준을 재정렬한 지침이다. 특히 사상과 규율 강조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과 맞물려 외부 정보 유입 차단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정보 통제는 이제 일시적 단속이 아니라 상시 통치 방식으로 구조화됐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황해남도 은천군에서 외부 영상을 시청한 고급중학교 학생들이 공개비판을 받고, 해당 학교까지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개인의 일탈을 집단 책임으로 확장해 통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방식으로, 당 노선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은 ‘지방발전 20×10 정책’과 생활 개선 담론을 병행하며 제한적 성과 메시지를 통해 민심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북한은 여전히 세습 체제이지만, 그 작동 방식은 과거와 다르다. 동일한 외형 속에서 전혀 다른 통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선은 종종 본질을 비껴간다. 딸 김주애의 등장은 분명 의미 있는 신호지만, 분석의 중심이 돼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 아니라 그 장면이 설계된 방식이다. 어떤 무기체계가 공개됐는지,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를 읽어야 한다. 북한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했다.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그 변화를 따라잡고 있는가다.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북한은 과거와 같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이 새로운 체제를 제대로 읽고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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