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 선언(2025년 2월 6일)으로 ‘보건 혁명 원년’을 선포한 지 1년이 되어간다. 북한 당국은 이를 인민 생명권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체제의 우월성 증명으로 내세워 왔다. 그러나 약 1년간 북한 내부에서 포착된 변화는 의료의 질적 도약이라기보다, 의료 영역을 국가 통제 아래 다시 재편하려는 구조적 전환에 가깝다는 평가다.
보건 혁명은 병원 증설이나 의료 인력 확충보다 먼저 대대적인 실태 조사로 시작됐다. 2024년 말, 내각 보건성은 각 도 인민위원회 보건국을 통해 모든 의료기관에 대한 동시 점검을 지시했다. 의료진 현황, 의료기기 보유 상태, 의약품 관리 실태가 주요 대상이었다.
문제는 이 조사가 정기적 관리의 연장이 아니라, 기초 데이터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일부 병원은 의료진 규모나 장비 현황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기본 의료기기를 국가 공급이 아닌 개인 부담으로 마련해 온 실상이 드러났다. 이는 보건 혁명이 체계 개선보다, 현실과 선전의 괴리를 점검하고 관리하려는 정치적 조치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성공 사례’로 내세운 강동군병원의 의미
북한 당국이 보건 혁명의 첫 성과로 강조하는 곳이 평양시 강동군병원(11월 19일 준공)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준공식을 열고 ‘현대적인 지방병원의 첫 실체’라고 평가한 상징적 병원이다. 현재 외래 진료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전기·난방·수도 공급도 비교적 안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진찰비와 약값 역시 인근 병원보다 낮아 주민 반응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안정성은 제도화된 역량의 결과라기보다 집중 지원의 산물이다. 의료 장비 상당수는 평양 시내 병원에서 이전된 수입산이고, MRI 같은 정밀 장비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약품 역시 보건성이 직접 특별 공급하는 예외적 체계에 놓여 있다. 의료진도 핵심 인력이 평양에서 차출된 상태로, 장기 근무 여부는 불투명하다.
특히 강동군이 군수공업을 총괄하는 제2경제위원회 관련 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라는 점은 이 병원이 선택된 배경을 설명해 준다. 강동군병원은 지방 의료 개선의 일반 모델이라기보다, 체제 핵심 산업을 떠받치는 지역의 안정 관리용 시범 병원에 가깝다. 이 병원이 현재 수준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보건 혁명의 실질적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국가의 점검과 통제가 강화되는 동안, 주민들이 체감한 변화는 병원의 회복이 아니었다. 보건 혁명이 선포된 이후에도 지방은 물론 평양에서도 불법 개인 의료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병원에는 기본 의약품조차 없고, 치료를 받으러 가도 환자에게 약을 직접 구해오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동네 의사’나 개인 침술사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 접근성은 더욱 계층화됐다. 입소문 난 개인 의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돈과 인맥이 있는 주민뿐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참는다”는 선택을 한다. 이는 무상의료제가 사실상 제도적 상징으로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무상의료에서 ‘국가 주도 의료 상업화’로
북한이 내세우는 무상의료제는 공식적으로 폐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약품과 진단·치료 서비스의 유상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무상의료의 복원이 아니라, 의료 영역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상업화하는 방향 전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변화는 과거 배급제 붕괴 이후 양곡판매소(2021년) 체계를 통해 식량 유통을 재통제했던 흐름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국정 가격과 시장 가격 사이의 ‘중간 가격대’를 설정해, 주민들의 현금 흐름을 다시 국가 제도권으로 흡수했던 경험을 의료 분야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표준약국과 시범 병원에서 시장보다 ‘조금 눅게(싸게)’ 책정된 약품과 진료비 가격은 모두 이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적지 않다. 일단 표준약국은 겉보기에는 현대식 약국이지만, 중앙 계획에 따라 제한된 의약품만 공급되고 필수 약품 외 품목의 가격이 시장보다 비싼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는 주민 건강 개선보다는, 장마당에 퍼진 의료·약품 유통을 국가 통제 아래로 다시 거둬들이려는 시도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읽힌다.
앞서 언급한 무너진 신뢰 문제도 여전하다. 2025년 여름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의 무상치료제가 아니라 장마당이 생명을 지탱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러시아·중국산 항생제와 수액이 시장에서 거래되며, 주민들은 성분도 모른 채 ‘효과가 빠르다’는 말만 믿고 외국어로 적힌 약을 구매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는 국산 의약품에 대한 불신과 국가 의료 체계의 신뢰 붕괴가 구조적으로 고착됐음을 보여준다.
보건 혁명 1년의 성적표와 국제사회에 주는 메시지
지난 1년간 북한의 보건 혁명은 문제의식을 드러냈지만, 실행 방식은 의료의 질을 높이기보다 통제를 강화하고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의료 장비·약품·인력의 내부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유상화와 국가 독점만 앞세울 경우, 의료 불평등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병원 숫자(2026년 추가로 20개 설립 목표)가 아니라, 이 체계가 유지 가능한가(질적 문제)라는 질문이다. 또한 북한의 보건 혁명은 인도주의적 개혁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민 통제와 체제 재정 기반 강화를 동시에 노리는 체제 전략에 가깝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다.
‘보건 혁명 원년’ 1년의 결론은 분명하다. 북한은 보건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아직 인민의 건강을 책임질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지금의 보건 혁명은 혁신이라기보다, 국가 책임의 한계를 드러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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