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떠오르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정세현 전 장관이 깃발을 든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논란’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살아 계신다면, 20여 년 전 전작권 환수에 소극적인 군 장성들을 향해 호통칠 때처럼 이들에게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힘과 지혜를 모두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왜 패거리를 나눠 싸우기만 하느냐”는 죽비를 내리칠 듯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기 외교부 간부의 위와 같은 류(類)의 부적절한 발언에 휘말리긴 했지만, 재임 기간 동안 자주나 동맹과 같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정책이 아니라 한미FTA, 이라크파병, 남북정상회담 결단 등 국익과 실용을 최우선시하는 ‘자주동맹파’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배경
이재명 대통령이 9월 하순 유엔총회 다자외교와 END(E:교류협력, N:관계정상화, D:비핵화) 구상 선언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국내에서는 때아닌 자주파·동맹파 논란이 집권 여당발로 촉발되어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지금도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9.26)가 진원지이며, 핵심은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들이 너무 많아 자주파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채택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이재명정부는 바보가 되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동맹파를 정책 결정 라인에서 제외하고 자주파로 채우는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현 정부와 국가를 위한 충언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간 수면 하에 잠복해 있던 인사 및 정책에 대한 불만이 수면 위로 표출된 것으로서 ▲자기중심적 아전인수(我田引水) 사고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첫째, 시대착오적 이분법적 사고가 가장 큰 문제다. 지금은 복합 시대이다.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갈라치기나 선명성 경쟁이 아니라 ‘융합’이 기본 화두(話頭)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세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21세기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는 좌-우 또는 자주-동맹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는 설 자리가 없다. 일시적으로 대중을 선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금방 실력이 드러나고 곤궁한 국면에 직면하게 된다.
같은 진영 내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 생각을 가진 이들과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북한을 포용하고, 강대국을 잘 상대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물안 개구리식 또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글로벌 마인드와 상생 정신(‘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 그리고 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중요하다.
둘째, 집권 여당의 정부와의 엇박자도 문제다. 여당은 민간이나 야당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정부와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여당은 무거운 입과 책임감을 가지고 여론 수렴과 최종 결정 보좌 역할에 중심추를 두어야 한다. 치열한 토론이 필수지만 비공개리에 해야 한다. 보안 그 자체가 곧 전략전술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협상력(국익) 제고를 위해 공개가 필요하면 학계나 민간, 야당의 입을 빌리는 게 고도의 전략전술적 태도이다. 필요하다면 제3의 ‘레드팀’(red team: 적의 입장에서 의도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공격하는 역할)까지도 포함시키는 유연성도 가져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일단 국가정책이 결정되면, 정부와 집권여당은 ‘one object, diverse role’(한가지 목표, 다양한 액션) 원칙 하에 움직여야 한다. 일사불란한 게 능사는 아니다. 각 부처의 정체성에 맞게 일관성을 가지고 움직여 궁극적으로는 종합적·입체적 대응이 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통일부가 국방부처럼 처신해서도 안 되며, 국방부가 통일부처럼 행동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셋째, ‘맹목적 평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평화는 소중하다. 그렇지만 평화지상주의에 빠지면 상대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 주고 국민 자존심과 국가 품격(존망)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평화주의만으로 평화를 지킨 예는 인류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철학자 최진석의 가르침을 늘 곱씹어 봐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크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북한 당국에게 조건 없는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는 게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 국제사회를 선도해 나가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대북 직선로가 막혀 있는 지금은 세계인들과 함께 온-오프라인을 통해 북한 주민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려 활동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북녘 동포들은 압제의 사슬 아래서 신음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이 우리(한류)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맺음말
글을 마치며 강조한다. 지금은 김정은이 핵과 북중러 공조를 기반으로 한 ‘적대적 2 국가론’의 완전 정착화와 대미협상 우위 선점을 위한 전략적 포석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전환기적 시기이다.(세부 내용은 2025.9.22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김정은의 눈은 미래로 향하고 있다’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북한-국제정세 변화)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소망과 이상만을 앞세워서는 안 되며 과거로, 분열로, 반미(反美)로 가서는 더더욱 안된다.
우리 모두는 자주를 기초로 동맹을 적절히 활용하는 ▲열린 ‘자주동맹파’가 되어야 하고,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려고 노력하는 전파(前派) ▲좌, 우, 전, 후, 상, 하 모든 것을 고려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입체파(立體派)가 되어야 한다. 갈라치기가 아닌 ‘융합 사고, 더불어 하나’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지금 귀가에는 “나도 자주동맹파다”라는 노 대통령의 격려 말씀이 맴돈다. 아~ 기분 좋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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