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최근의 헌법 개정은 북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취재를 통해 당국의 제도적 선언이 실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연속 추적해 보도합니다. |

“큰 병에 걸리면 일반 노동자 수입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요즘은 큰 병에 걸리면 (그냥)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주민 A씨는 최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이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 느끼는 절망감을 이렇게 전했다. 국가가 치료해 줄 것이라는 기대보다 수중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가 생사를 가르는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평안남도 내륙 산간 지역 주민들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B씨는 “돈이 없으면 집에서 민간요법을 쓰거나 필요한 약 가운데 일부만 사 먹으면서 버틴다”면서 “병 치료에는 외상이 거의 통하지 않고, 친척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요즘은 다들 살기 힘들어 남을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고 전했다.
B씨는 “결국 병을 키우다가 뒤늦게 병원에 가거나 아예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간염이나 결핵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쌀 100㎏ 값을 들여도 모자랄 수 있어 돈이 없는 사람은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두 주민이 사는 지역과 말의 표현은 달라도 가리키는 현실은 비슷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병원은 아프면 으레 찾아가 치료받는 곳이 아니라, 돈과 약품을 마련할 수 있을 때에만 갈 수 있는 곳이란 점이다.
북한은 2026년 3월 개정 헌법에서 ‘전반적 무상치료제’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무상의료는 헌법에서 사라지기 훨씬 전부터 현실에서 먼저 무너져 내렸고, 현실은 더욱 암담해졌다.
“병원에 가 봤자 진단뿐”…치료는 환자 몫
취재에 따르면 주민들은 감기나 복통 등 비교적 가벼운 증상이 생기면 병원보다 먼저 집에 보관해 둔 약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한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장마당의 약장사에게 약을 사고, 증상이 오래가거나 참기 어려운 통증이 생기면 그제야 병원을 찾는다.
A씨는 “병원에 가 봤자 진단만 내릴 뿐 약도 주지 못하고 특별한 것이 없다”면서 “지금은 돈이 없어 자체로 치료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병원에 약이 없어 치료에 필요한 약은 대부분 환자가 직접 구해야 해 결국 시장의 개인 약장사에게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신의주에서는 구체적인 현금 가격으로 의료비가 굳어지고 있다. 접수비와 진찰비를 합쳐 2000~5000원, 검사 종류에 따라 1~5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맹장 수술이나 제왕절개에는 최소 50만 원, 골절 수술에는 100만원 이상이 들기도 한다”며 “아무래도 돈이 없는 사람은 수술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입원한다고 해도 식사와 침구는 물론이고 주사기와 수액, 약품까지 환자 측에서 마련해야 한다. 신의주에서는 한 달 정도 입원할 경우 모든 비용을 합해 약 100만원이 필요하다는 전언이다.
최근 신의주에서는 오토바이 사고로 대퇴부가 골절된 한 주민이 수술과 열흘간의 입원에 약 150달러를 쓴 사례도 있었다. 소식통은 “과거 같으면 석 달 이상 입원해야 할 정도의 부상이지만 지금은 7일, 길어야 10일이면 퇴원한다”면서 “집에서 깁스한 채 지내다가 나중에 다시 병원에 가서 굳어진 다리를 펴는 치료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치료가 끝나 퇴원하는 것이 아니라 입원비를 더 감당하기 어려워 병원 밖으로 나오는 셈이다.
평남 산간 지역에서는 접수비와 진찰비가 정식 가격으로 아직 굳어지지 않아, 쌀과 담배, 현금 등 비공식 사례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맹장 수술에는 쌀 30~50㎏ 정도의 비용이 들며 더 큰 수술에는 이보다 두세 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B씨는 “입원하면 식사와 이불, 물, 난방에 필요한 것부터 주사기와 링게르, 약품까지 가족이 모두 준비해야 한다”면서 “간병도 가족이 직접 해야 하니 환자 한 명이 입원하면 온 집안이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앞선 데일리NK 취재에서도 이 같은 치료 포기 현상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양강도 혜산에서는 아스피린 10알 가격이 쌀 1㎏ 가격과 비슷할 정도로 올라, 감기 환자들조차 약을 사지 못하고 소금물로 입을 헹구는 등 민간요법으로 버티는 일이 벌어졌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환절기 감기 환자 느는데 약값 너무 비싸…“그냥 참고 버틴다”)
주민들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곳은 여전히 장마당이다. 병원에서 약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성분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외국산 의약품까지 약장사의 설명과 입소문에 의존해 구매하고 있다. 이에 “실제 인민들의 생명을 지탱하는 건 국가의 무상치료제가 아니라 장마당”이라는 말도 나왔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무상 치료 아니고 무(無)의료”…외국산 수입 약 찾는 주민들)

북한은 올해 3월 헌법을 개정했다. 기존 헌법 제56조는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공고발전시키며 의사담당구역제와 예방의학제도를 강화한다”고 명시했지만, 개정 헌법 제49조에서는 전반적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제도 등 표현이 모두 빠졌다. 대신 “국가는 사회주의 보건제도를 공고발전시키며 의료봉사의 질을 개선하고 보건 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강화한다”는 일반적인 의무만 규정했다.
공민의 권리를 다룬 개정 헌법 제71조에도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 가운데 ‘무상으로’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치료받을 권리’만 남았다.
북한이 모든 의료서비스의 유료화를 선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치료받을 권리와 국가의 보건제도 발전 의무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고 헌법에서 특정 제도의 명칭이 빠졌다는 사실만으로 하위 법령상의 제도가 자동으로 폐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치료비 전액을 책임진다는 구체적 약속이 사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의료비 부담을 국가 밖으로 나누고, 보험료와 진료비·약값을 통해 기관·기업소와 주민이 비용을 부담하는 제도로 전환할 수 있는 법적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이우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북한은 그동안 국가가 모든 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강조해 왔지만, 이번 헌법 개정에서는 이런 표현이 빠졌다”며 “국가가 모든 의료비를 책임지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주민도 의료비의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즉, ‘무상’이라는 명시적 단어가 삭제되면서 국가의 의료비 전액 부담을 헌법에서 도출할 근거가 약화됐다. 기관·기업소와 주민에게 보험료나 진료비·약값을 분담시키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헌법적 제약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헌법 개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된 의료 서비스의 유상화와 국가 책임의 후퇴를 뒤늦게 반영한 성격이 강하다. 헌법이 바뀌기 전부터 환자가 약값과 검사비, 수술비, 입원비를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주민들은 무상치료제가 원래부터 교과서에만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에서 무상치료를 해주기를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약값과 검사비, 수술비를 환자가 부담하고 의사에게도 따로 돈을 줘야 한다”면서 “주민들 처지에서는 오래전부터 무상치료가 아니었던 셈”이라고 했다.
A씨도 “지금은 무상치료제라는 말조차 아예 하지 않는다”면서 “과거에는 그나마 겉으로라도 무상치료를 말했지만, 지금은 가는 곳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헌법이 의료비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이미 의료비를 부담해 온 현실이 헌법을 바꾼 셈이다.
다만 헌법 개정은 현실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공식 제도로 재편하는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오가던 돈과 물품이 앞으로는 보험료와 진찰비, 약값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민보건법 및 하위 법령 개정 내용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의료비 유상화?…주민에게는 또 다른 부담
북한 당국이 무상치료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의료 공급 체계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다. 병원은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의사와 간호사 역시 국가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렵다. 산간 지역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돈이나 쌀, 담배를 받거나, 개인적으로 환자를 진료하거나, 약을 판매하는 등 약품 유통에 직접 관여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 안에서도 수술과 검사가 많은 진료과와 그렇지 않은 진료과의 수입 차이가 크다. A씨는 “수술하는 외과는 인기가 많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만 내과는 진단서와 관련한 사례비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병원 운영과 의료진의 생계가 이미 환자에게 달려 있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과거의 무상치료제를 되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의료보험 도입 움직임도 운영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NK는 지난 1월 북한 당국이 직장 근로자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보험료로 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본 진료는 국가가 정한 가격으로 제공하되 입원이나 특수 치료에는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北 ‘의료보험’ 도입 움직임…김정은 언급한 ‘보건 혁명’과 연결?)
이 연구위원은 “그동안 국가가 의료비를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었다면, 보건보험기금은 의료비 부담을 국가만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의료비 부담의 일부가 국가에서 주민에게 넘어가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개인에게 돈을 걷어 병원 운영비를 마련하고, 의약품 유통과 의료비 지출을 국가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다만 의료 장비와 의약품,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통제에 따른 의료비 유상화를 앞세운다면 내부 불만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평남 산간 지역에서는 보건보험기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입한 사람을 주변에서 거의 볼 수 없다는 전언이다. 직장과 개인이 의무적으로 돈을 내야 한다는 말과 자발적으로 가입한다는 말이 뒤섞여 있고, 돈을 내면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B씨는 “주민들도 무엇이 정확한지 잘 모르고 대부분 믿지 못해 반신반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표준약국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표준약국은 국가적으로 선전하는 데 이용될 뿐 일반 주민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이 5%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도 “표준약국이라고 해서 약값이 더 싼 것은 아니며 개인 약장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경우도 있다”면서 “국가 약국은 가격을 흥정할 수도 없어 필요한 약을 다른 데서 구하지 못할 때에나 찾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의 비공식 부담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북한 당국이 내건 새로운 제도에 따라 공식 부담만 더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국가 공급을 회복하지 않은 채 공식 부담만 제도화한다면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악순환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보험기금제도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보험료를 누가 얼마나 내는지, 어떤 치료까지 보장되는지, 실제로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는지를 확인해야 제도의 실효성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주민복지라는 명분 아래 보험료 징수와 기금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법·제도와 관련 규정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기관·기업소별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만큼 제도가 빠르게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