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북핵 관련 단상: 설마, 과신, 딴짓?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2년 10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5월 중순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가까워오면서 북핵문제 회담 틀(frame)을 기존의 비핵화에서 ‘군축’(軍縮)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빅터 차, 美 대북정책 실패…韓, 킬체인 대신 핵군축 협정 필요”(4.29 중앙일보), “북한은 핵무력 국가, 협상은 이걸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5.2 프레시안)이 대표적 사례이다.

개인적 소회

과연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북 간 접촉이 재개되고 북핵문제 해결의 큰 줄기가 ‘군축’으로 방향을 잡아나갈까? 필자는 이 같은 류(類)의 기사를 볼 때마다 몇 해 전부터 사무실 책상 옆에 붙여 놓아 누렇게 변해 있는 신문 한 조각 “이태원 참사처럼 미·북 핵군축 회담 온다”(2022.11.24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을 힐끗 쳐다보곤 한다.

필자가 이 칼럼을 오랫동안 가까이에 두고 있는 이유는 ▲북핵문제에 ‘군축’이라는 단어를 쓰기 어려운 환경(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사용 자제) 속에서 현실적 대안의 하나로 차분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제안을 높이 샀으며, 무엇보다도 북핵문제의 민낯과 미래 즉 ▲우리 모두가 지난 30여 년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경로로 진행되어 나갈지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던 차에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무기를 동결한 후 군축을 해나가는 것(비핵화는 장기 비전으로 두고)이 보다 실제적인 북핵문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할 때는 ‘아!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 그렇지만 이 길밖에 달리 대안도 없지 않은가’ 하는 미묘한 기분(명분은 완전한 비핵화, 현실은 점진적 군축)에 젖어 들었었다.

양상훈 칼럼 전문(全文)

필자는 이번 글을 쓰면서 양 주필 칼럼의 핵심을 요약해서 소개할까 하다가 독자들이 다소 길지만 전문을 모두 읽어보는 것이 북핵문제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듯해서 그대로 카피, 첨부하기로 했다.

이제 국민에겐 별 관심도 없는 주제가 됐지만 북한 핵 사태가 결국 어떻게 될지에 대해 떠올려보는 그림이 있다. 언젠가는,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과 북한이 이른바 핵 군축 협상의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될 것으로 본다. 북한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핵 군축 협상의 기본 전제는 당연히 북한 핵 보유의 공식 인정이다. 북한이 핵 탄두 개수를 줄이고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탄(ICBM)을 축소, 폐기하는 대신 한미 동맹의 성격 변화와 주한미군의 대대적 감축 카드가 테이블 위에 오를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의 30년 역사는 우리 입장에서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 그래서 설마했던 그대로 흘러왔다. 북한이 설마 핵실험까지 하겠느냐고 했지만, 핵실험을 했다. 대륙간탄도탄이 아니라 인공위성 로켓일 거라고, 끝내 못 만들 거라고 했지만 정반대로 됐다. 핵실험은 한 번 하고 그치겠지 했는데 6회나 했다. 설마 했는데 수소폭탄까지 개발했다. 우라늄 농축은 못 할 거라고 했는데 했다. 중국 러시아가 북의 핵 보유까지 용인하지는 못할 거라고 했는데 용인했다. 이 과정에서 북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는데 아니었다. 북핵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했는데 북한 스스로 주 목표가 한국이라고 밝혔다. 북핵은 외교 협상 카드라고 했는데 실전용 전술핵까지 개발했다. 북핵 문제가 앞으로도 우리 입장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은 합리적이다. 그것이 북한이 기를 쓰고 핵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으나 지난 1027일 미 국무부 보니 젱킨스 군비통제·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한 콘퍼런스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군축 (협상)이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다음 날과 그 며칠 뒤에 반복해서 이를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의 머릿속에 북한과의 핵군축 협상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젱킨스 차관이 원래 그런 성향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람뿐만이 아니다. 이미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 등 여러 전문가들이 대북 제재 완화를 대가로 북한에 군축 협상을 제안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전략사령부에서 미 정보기관들 총괄 지휘부(국가정보국장실)의 주재로 비공개 북핵 토론이 열렸다. 처음으로 북핵 문제만으로 열린 것이다. 미군 고위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북한이 조만간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 퍼센트라고 말했다고 한다. 토론에 참석한 국가정보국장실 분석가 출신은 가까운 미래에 핵무기를 발사할 국가가 있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북한이라고 했다. 이 토론회는 이제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 갔으며 북핵 사용 억지가 목표가 됐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미국 입장에서 북핵 사용 억지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북한과의 핵 군축 협상이다. 미국은 북핵이 100, 200개를 넘어가는 상황은 도저히 방치할 수 없다. 한국의 이익을 희생하고 북한에 양보할 결심을 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핵 군축 협상이 공식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북한이 전술핵 실험과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탄의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실험에 모두 성공한 이후가 될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미·북 핵 군축 협상에 흔들려 큰일 날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심각한 걱정거리임에는 틀림없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방 안에 코끼리가 들어와 앉으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난리 법석을 피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생기면 그냥 코끼리를 못 본 척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 인간 심리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것은 설마. ‘설마 김정은이 핵을 쏘겠느냐’ ‘핵을 쓰면 저도 죽을 텐데 설마 저 죽을 짓을 하겠나라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김정은이 핵을 쏠 것이냐는 것 이전에 우리가 사는 삶의 기본 조건이 바뀌는 사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에 미사일과 포탄 비를 퍼붓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땅에 포탄 한 발도 쏘지 못한다. 미국이 절대 쏘지 못하게 한다. 러시아가 핵을 가졌기 때문이다. ·북 간 핵 군축 협상 뒤에 북한의 대남 도발도 이렇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 말처럼 핵은 다른 나라에 대한 사냥 면허가 될 수 있다. 북의 사냥감은 어딘가. 우리 사회의 설마를 비웃듯 북의 사냥이 벌어질 것이다.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되면 사람들은 그 문제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핼러윈 축제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린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축구장 압사 사고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태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누가 걱정했으면 다들 속으로 설마했을 것이다. ·북 핵군축 회담도 그렇게 올 것 같다.

반성과 교훈

양 주필이 진단한 것처럼, 지난 30여 년간 우리의 북핵문제 대처는 ‘설마’와 ‘외면’으로 특징지어진다. 설마가 아닌 ‘치밀한 준비’, 외면이 아닌 ‘당당한 대처’가 필요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럼 지난해 6월 출범한 현 정부는 어떨까? 정부 관계자들은 좀 섭섭하게 생각하겠지만, 앞선 정부들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전반적인 대북정책구상(조건없는 선제조치 포함)과 레토릭(rhetoric)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북핵문제와 관련 실제적인 행동(action)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매우 어려운 화두인 ‘군축’을 언급(1.21)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음이 없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동결-축소-비핵화’의 3단계 북핵 해결 로드맵은 ▲지금 당장은 북한이 거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과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며 ▲우리의 전략전술적 목소리(평화적 핵 이용 권리 포함)도 높일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평가한다. 즉 비핵화 원칙론의 입장에서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북한이 핵포기를 거부하고 핵능력을 시시각각 고도화시켜 나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름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 아닐까?

그렇지만 문제는 정부 관련 부처와 관변 학계가 여기에 전방위적으로 집중하지 않고 ‘딴짓’에 몰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북핵문제가 아니라 신파조의 대북 몸짓? ‘통일’을 해야 하냐 마느냐? 북한을 ‘조선’이라고 불러야 하냐 마느냐?와 같은 이슈에 몰두하며 야단법석들이다. 대북 군사력 우위를 주장(핵무기를 제외한 평가가 무슨 소용 있나?)할 때는 점입가경이다.

북한이 우리를 타깃으로 하는 신형 전술핵을 연일 시험발사해도 조용하다. 상대는 위협의 도를 갈수록 높이는데 우리는 태평성대 노래만 부르고 있다. 미국 등 주변국과의 북핵전략외교 소식도 듣기 힘들다. 얼마 전 북핵수석대표가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에서 미 국무부 군비통제·비확산 담당 차관보와 만났다는 단신(短信) 정도만 들린다. 오히려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북핵시설 공개를 계기로 한 ‘미국의 정보공유 제한’과 같은 한미 간 공조 파열음만이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중 정상회담이 곧 열린다. 과연 그간 정부 관련 부처가 국내외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대통령이 이야기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는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혹여 “우리가 지금 뭐할 게 있나. 트럼프가 잘 하겠지”하며 시간만 보낸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대통령이 1월에 ‘군축’으로의 방향 전환을 언급했으면, 지금쯤은 미국과 단기, 중기, 장기 전략전술 합의가 끝나고 플랜 A, B, C를 가동해야 할 시점인데? 어정쩡하게 있다가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크게 한 방 먹고 나서야 허겁지겁 나서는 것은 아닌지? 필자의 쓸데없는 걱정(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이다.

맺음말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더욱 비장한 마음과 치밀한 전략전술로 북핵문제를 대해야 한다. ‘설마’, ‘외면’, ‘어정쩡’, ‘근거없는 자신감’, ‘딴짓’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분명한 원칙하에 긴 호흡과 냉철한 지혜를 가지고 선제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필자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지론인 1)군축협상(외부동인: 비핵화는 장기목표)과 북한자유화(내부동인) 병행 전략 2)미국 등 주변국과 선제적·다방면적 협의 3)대국민 사과 4)남북한과 미국이 참가하는 ‘3자 군축협상’(필요시 확대) 소견이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핵심은 ▲상대 선의만 기대하지 말고 ▲총체적으로 접근하며 ▲선제적·유기적으로 협조해 나가라는 것이다.

특히 ‘대국민 사과’는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현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결단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핵문제가 이 지경까지 된 데 대해 그 어느 전직 대통령도, 그 어느 참모도 국민께 사과한 적이 없다. 재난사고만 나도(수십 년 세월이 지나도)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개인이나 정부나 진정한 새출발을 위해서는 ‘진정한 반성’이 먼저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지나간 모든 정부를 대신하여 북핵정책 실패, 안보 참사에 대해 국민 앞에 진정으로 사죄해야 한다. 그런 연후 전심전력을 다하여 국민과 국제사회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딴짓’할 시간이 없다. 이태원 참사처럼 미·북 핵군축 회담이 훅하고 와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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