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의 對日 밀당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23년 5월 21일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은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승부사다. 어느덧 집권 13년차를 맞은 그는 연초부터 선대 유훈(遺訓)이자 체제운영의 근간이었던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고 전쟁의 칼을 휘두르며 ‘2개 국가론’을 주창하는 또 다른 승부수를 띄웠다.

대한민국과 ‘헤어질 결심’을 한 그가 기시다 총리 앞으로는 《각하》라는 호칭을 이례적으로 사용하며 노토반도 지진피해 위로전문(1.5)을 보냈다. 곧바로 일본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졌고, 2월 9일에는 기시다가 직접 나서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는 의욕을 표시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의 막후실세 김여정은 “핵·미사일과 일본인 납치자 문제(이하 ‘2대 전제조건’으로 표기)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있다면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미끼성 담화(2.15)로 응대하였다.

국내외 언론은 하루 전 한국-쿠바 수교 발표에 충격을 받은 북한이 맞대응 차원에서 북일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기시다와 ‘대화할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진전될 것만 같았던 북일대화는 한 달여의 물밑접촉이 지난 후 김여정의 “일본은 력사를 바꾸고 새로운 조일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다”는 대화단절 선언(3.26)과 이후 리룡남 주중대사(3.29), 최선희 외무상(3.29)의 잇단 비난 담화로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있다.

겉이 아닌 속을 봐야

북한의 외교 원칙과 관례를 벗어난 상대국의 비밀접촉 제안 사실 공개, 협상 거부 강공 드라이브는 외양적으로만 보면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간 실무자 수준에서 물밑접촉으로 진행되어 오던 협상이 ▲올해들어 김정은과 김여정이 직접 나서 수면 위로 올라온 점 ▲특히 시기적으로 북한이 ‘2개 국가론’을 주창한 직후라는 점 ▲그리고 한-쿠 수교에 대응한 물타기, 외교적 고립 탈피 필요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섣불리 중단될 사안은 아니다.

게다가 ▲양국이 그간 주고 받았던 수사(rhetoric)와 비난이 매우 노골적이고 즉각적이라는 점도 서로가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10%대를 헤매고 있는 기시다의 곤궁한 입장 ▲북일회담 재개는 우리 국내 남남갈등과 한미일 3각공조 균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점(북한은 이른바 ‘갓끈 전술’ 개념하에 일본을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 ▲북한이 지방발전 20×10 정책 등 대규모 자원이 소요되는 장기프로젝트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완전 단절로 보는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우리는 북한이 고강도 압박전술로 2대 전제조건에 대한 일본의 양보를 이끌어 내려는 ‘벼랑끝 전술’의 일환으로 평가하고 대비해 나가야 한다. 이 같은 점은 기시다가 북한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3.28)고 발언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평가 및 전망

북일수교협상은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3당 공동선언(1990.9), 평양공동선언(2002.9), 스톡홀름 합의(2014.5) 등의 괄목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시행 과정에서 핵·미사일과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의 장애물에 부딪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수교를 통한 대일배상금 청구,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과 역내 평화관리자(peace maker)로서의 입지 확보가 핵심 목표이며, 김정은은 정권교체에 대한 부담이 없고 개혁개방도 속도조절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긴 호흡과 다양한 전술로 일본을 상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特需)에 이어 금명간 있을 푸틴 방북을 계기로 러시아와 보다 전방위적 협력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북중수교 75주년이다. 중국과도 다양한 수준의 교류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북한이 대일접촉에 그렇게 집착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그러나 기시다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2021년 10월 총리 취임 연설부터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없는 북일정상회담’을 제안했으며, 현재는 9월 선거를 앞두고 극적인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여 평양선언을 채택하였을 때 단번에 지지율이 20%이상 급등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기시다는 북한의 반응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북한의 문을 노크할 가능성이 크다. 4월 10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바이든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일대화에 대한 지지를 도출하려 할 것이다.

향후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 재개 여부를 결정한 주요 포인트는 ①가장 먼저 2대 전제조건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될 것이며, 그 밖에 ②‘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구도 형성 전략전술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복안 ③‘2개 국가론’에 기초한 대외개방의 속도와 폭에 대한 진단 ④경제-외교-군사-과학기술 분야에 총체적 영향을 주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여부 ⑤미국 대선 향배 ⑥한반도 위기고조 시 일본의 중재자로서의 역할 필요성 등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⑦기시다의 9월 선거 정치적 승부수 ⑧신냉전 구도하에서의 국익외교 전개를 위한 운신 폭 확장 ⑨보통국가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디딤돌이라는 점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25일 노동당 대표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김성남 국제부장이 같은 달 23일 베이징의 낚시터국빈관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사업위원회 판공실 주임과 만났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결론 및 대응책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향후 북한의 행보를 전망해 보면 《2024년 밀당, 2025년 대화 본격화, 2026년 수교 및 청구권 자금 확보》의 로드맵을 가지고 움직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같은 단기-중장기 전략전술은 11월 미국 대선국면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상세내용은 2024.3.4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김정은은 바이든 이후까지 생각하고 있다’ 참조)

①예상 시나리오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당분간 2대 전제조건 양보 유도를 위한 대일 압박 지속 → 헌법 수정 이후 남북 간 국지전 발생 등 긴장고조 시 원포인트 활용(위기관리 및 한미일 공조 균열 조성) → 11월 미국 대선이전 7차 핵실험 단행(핵보유국 위상 완전 확보) → 2025년 미국 신행정부와 군축회담 추진 및 대일 수교협상 본격화 → 2025년 10월 9차 당대회 조기 소집(김정은 집권 4기 신정책 노선 공표) → 2026년 일본과의 수교로 대일청구권 자금 확보라는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②정부의 역할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일회담이 물건너 갔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2대 전제조건이 일본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여서 수용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협상에 불가능은 없다. 정치와 외교는 생물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합의는 도출될 것이다. 단지 시기 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다양한 대비책을 검토해 나가야 한다.

북한과 일본이 수교협상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5년의 시간이 경과하고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9부능선을 넘어 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은 북한지도부가 핵개발 고지를 정복한 이후 행보를 고민하고 있을 타이밍이다.

즉 김정은은 집권이후 세 번째 당대회인 9차 당대회를 명실상부한 ‘완전 홀로서기 및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원년’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보다 가깝게는 조만간 ‘2개 국가론’에 기초한 영토규정을 헌법에 명문화한 이후 남북한간 국지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기시다가 제2의 문재인, 트럼프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 최근 들어 미국의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조치 논의 용의” 피력(3.4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보좌관), 러시아의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감시 전문가 패널 임기연장 부결(3.28과 같은 움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연동되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일본,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다. 일본의 대북접촉을 막아서도, 방관해서도 안 된다. 국제사회는 오로지 국익만이 존재한다. 선거와 외교에 이기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거래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히려 일본의 원칙있는 대북접촉을 먼저 권하며 정보와 정책을 공유하고 협의해 나가는 능동적 마인드를 발휘해야 한다.

③우리 국민의 자세

그런데 아직도 일부에서는 고리타분한 이상론, 이분법, 반일(反日)의 관점에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운운하고 있다. 지금은 과거 20세기가 아니다. 각국이 국익 창출을 위해 빛의 속도로 변화와 협력을 진행하는 시대이다. 깨어나야 한다.

북일대화가 진행되더라도 절대 일방적으로 패싱당하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한일, 한미일 공조는 매우 튼튼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은 일본의 대북접촉 추진과 상치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본을 중재자로 적극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나가야 한다. 반일, 반중이 아니라 용일(用日), 용중(用中)의 관점이 중요한 때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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