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한국과 쿠바의 수교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 전 주민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도 관련 보도를 일절 내보내지 않고 있지만, 당 간부들에게는 한-쿠바 수교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내부에서는 쿠바를 ‘배신자 국가’라고 하는 등 부정적 반응이 쏟아져나왔다는 전언이다.
28일 데일리NK 평양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한국과 쿠바의 수교 사실이 발표된 지 나흘 뒤인 지난 18일 당 간부들만 열람하는 ‘참고신문’(중앙당 출판물보급부가 국제정세와 관련한 외부 소식을 담아 간부들에게 보급하는 신문)에 해당 내용을 실었다.
참고신문에는 한국과 쿠바가 수교했다는 사실만 짧게 언급됐을 뿐 이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밤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양국의 주유엔대표부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외교 관계를 정식 수립한 사실이 알려지고 보름여가 지난 현재까지 북한은 이와 관련한 어떤 공식적인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앞서 김정일 생일(2월 16일) 82주년에 즈음해 진행된 기념 경축 연회에 에두아르도 루이스 코레아 가르시아 쿠바 대사가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관영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쿠바 대사를 뺀 채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쿠바는 북한 매체에서 중국, 러시아 다음으로 자주 언급되는 나라라는 점에서 북한 매체가 쿠바 대사의 참석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한국과 쿠바 수교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 당국이 참고신문에 한-쿠바 수교 사실을 곧바로 싣지 않고 나흘 뒤인 18일에서야 관련 보도를 담았다는 점 또한 해당 사실을 당 간부들에게 알릴 것인지 아니면 함구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한 흔적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참고신문을 통해 한국과 쿠바의 수교 사실을 알게 된 당 간부들은 쿠바에 대해 “배신자 국가다”, “겉으로는 한배를 탄 것처럼 행동하면서 뒤에선 배신의 칼을 찌르는 양봉음위(陽鳳陰違)의 행위다”, “변절의 외교 정책이 아니냐” 등 비판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형제국가’로 여겼던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것에 당 간부들은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은 참고신문을 배포하면서도 당 간부들에게 한국과 쿠바의 수교 사실에 대해 불필요한 언급으로 소문을 낳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라고 입단속 시킨 것으로도 전해졌다. 당의 유일적 외교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과 쿠바 사실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언급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는 것이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 사실이 일반 주민들에게 알려져 당국의 외교 전략을 두고 이러저러한 평가가 나오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북한 외무성은 쿠바에 파견된 자국 외교관들에게 쿠바의 대외 정책과 동향을 시시각각 보고하라는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소식통은 “국가에서는 꾸바(쿠바)의 다음 외교 정책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꾸바가 우리의 사상과 전통을 부인하지 않고 우리를 계속해서 지지한다면 꾸바를 배척하지 않을 것”이라며 “꾸바가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가와의 신뢰를 계속 유지하는지도 지켜본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쿠바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한-쿠바 수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앞으로도 쿠바가 국제사회에서 자국에 힘을 실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꾸바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이번 일로 꾸바에 대한 경계심도 커진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