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예선 홈경기도 취소한 北, 日과의 ‘밀당’ 속내는?

내부 모습 해외 언론 통해 공개되는 것에 부담 느껴…북일 정상회담 관련 대일 외교 전략 차원도

2019년 9월 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22 카타르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에 출전한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들 뒤로 가득찬 관중들이 보인다. /사진=북한 대외선전매체 ‘서광’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지난달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전을 갑작스럽게 취소한 가운데, 그 이유가 통제되지 않은 내부 상황이 해외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일본과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외교적 전략 때문이었다는 전언이 나왔다.

12일 북한 외교 상황에 밝은 데일리NK 내부 고위 소식통은 “축구 경기를 취소한 것은 우리 국가의 내부 실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제적인 위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정리되지 않은 대일(對日) 외교 정책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제되지 않은 평양의 거리, 주민들이나 상점의 모습 등이 국제경기 취재를 위해 북한에 입국한 해외 언론사들을 통해 외부에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북일 정상회담 추진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축구 경기를 계기로 한 일본 고위급 인사들의 방북이 정상회담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당초 지난달 26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일본과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B조 조별리그 4차전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경기 닷새 전 아시아축구연맹(AFC)에 “홈경기를 치를 수 없으니 제3의 경기 장소를 장해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AFC는 북한과 일본의 경기를 중립 지역에서 치를 방안을 검토했지만, 시일이 촉박할 뿐만 아니라 선수들과 팬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경기 자체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는 지난달 24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북한의 0-3 몰수패를 결정했다.

북한은 당시 홈경기를 포기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에 일본 언론은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연쇄상구균 독성쇼크증후군(STSS)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AFC가 평양 현지 시찰을 했을 때도 북한은 홈경기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위 소식통은 “우리는 전염병 관리에 자신감이 있다. 오히려 우리 축구팀의 국제 대회 참가의 중요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외교적 목표 달성을 위해 손해를 감수한 것이지 전염병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 북한은 일본의 식민지 배상 책임과 관련해 경제적 지원을 받거나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일본을 통해 외교적 보폭을 넓혀 나가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현재 당에서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 여지를 마련하고자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다”며 “일본을 통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협상 여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 중앙당과 외무성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를 위한 외교적 전략을 짜고 있고, 이러한 전략에 일본과의 정상회담이 포함돼 있다는 게 소식통의 주장이다.

다만 북한과 일본이 납치자 문제에서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북한은 김여정 노동장 부부장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통해 납치자 문제는 이미 해결된 사안이며, 납치자 문제를 거론할 경우 일본과의 회담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반면 일본에서는 납치자 문제가 북일 간 접촉의 핵심 사안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7일(미국시간) 방미에 앞선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북한에 고위급 접근을 하고 있다”며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고 양국의 안정적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여기서 ‘미해결 문제’는 납치자 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을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기시다 총리가 다시 한번 북한과의 접촉을 언급한 만큼, 북일 정상회담이 끝내 성사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