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진정한 ‘농촌진흥’을 위한 2024년 北 농촌의 과제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농촌 발전의 새 시대에 평안남도 평원군 운봉리에도 전변의 새 모습이 펼쳐졌다"며 26일 살림집(주택) 및 공공건물 준공식 소식을 전했다./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농촌 발전의 새 시대에 평안남도 평원군 운봉리에도 전변의 새 모습이 펼쳐졌다”며 26일 살림집(주택) 및 공공건물 준공식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본보 취재에 따르면 최근 평안남도 농촌진흥 계획 총화 결과 평안남도에서 농촌주택건설을 1개 마을 이상 진행한 농장은 전체의 9.2%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이 제시한 소위 ‘농촌진흥’이 올해에도 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 중순 조선노동당 평안남도위원회가 주체한 2023년 농촌진흥 계획 총화 결과에 따르면 평안남도는 계획의 50%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안남도 20여개 시·군 산하 약 500개의 농장 중 국가농업생산계획을 수행한 농장은 98개로 19.6%에 불과했다.

또한 김정은이 노동당 제8기 제6차 및 제7차 전원회의에서 첫번째 과제로 정한 농촌주택건설을 1개 마을이라도 진행한 농장은 46개로 전체의 9.2% 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당은 ‘자랑찬 성과’라며 선전했지만 실질적인 통계는 농촌 현대화의 큰 의미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작년보다 조금 괜찮은 정도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道) 자체적으로 300만t의 생산 능력을 가진 순천시멘트공장과 북한 내에서 손꼽히는 전력·화학·기계·금속·철강 연합기업소를 갖춘 평안남도가 이 정도라면 다른 지역의 성과는 더 낮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왜 북한은 농촌진흥은 커녕 농촌 위기 상태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노동당이 제시한 농촌진흥의 목표 설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진흥’의 사전적 의미는 ‘활발하거나 힘찬 상태가 되도록 떨치어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농촌진흥은 농업생산력 강화를 포함해 아름다운 농촌건설과 농민의 재산 증대가 주요 목표로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주창하는 농촌진흥의 목표는 여전히 농민의 사상 개조가 1차 목표이고 그 다음은 농업생산력 증대 그리고 농촌주택 건설에 있다.

북한에서 농촌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이유는 둘째로 정책실행 전략의 경직성 때문이다. 농촌진흥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성공적인 경험을 참고해 농촌에 대해 금융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한데 북한은 투자는 하지 않고, 농민의 애국심과 충성심, 노력(인력) 동원에만 의존하고 있다.

셋째로 농장과 농민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제도의 문제다. 구체적으로 현재 농촌에 존재하는 지속 불가능하고 비효율적 노동당의 인사제도 및 농장 스스로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없게 한 경직된 교육제도 그리고 뼈 빠지게 일해도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불합리한 성과(成果) 시스템, 고용의 유연성 부족, 우량품종·선진 농기계·선진 경영 기술의 도입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직된 금융시스템 등 경직된 제도 때문이다. 제도적 발전의 측면에서 북한 농촌은 이미 지각생이다. 역사는 지각생을 벌(罰)하는 법이다.

북한에서 농촌과 농민을 위한 실제적이고 원만한 농촌진흥을 위해 2024년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로 군사력만 부지런히 키우는 국가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경제력도 함께 키워 농촌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역사는 국가 재원을 군사력에만 쏟아붓는 나라는 단명(短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이 70년 동안 ‘나라는 가난하고 주민은 굶주리는 위기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가 노동당이 말로만 경제와 국방의 균형(병진) 발전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비정상적으로 군사력에만 모든 자원을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동유럽 국가들과 동남아의 베트남 등의 사례처럼 산업 중심의 통상(通商)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로 시장을 중심으로 농장과 농민이 성장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형태야 어떻든 북한엔 이미 시장(市場)이 존재하고, 시장은 경제의 과도한 왜곡을 막는 경고등(警告燈) 구실을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북한 농촌진흥 정책이 사상만 강조한 1960년대 농촌 테제에 내재하여 있는 경직된 농촌 발전 전략과 달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농업생산력의 향상을 위해 새로운 영농형태인 분조관리제 안의 포전 담당 제도를 더욱 자율적으로 변화시켜 농가와 분조가 구분되지 않는 방식을 적극 장려하고 외부의 금융 투자 도입을 활성화해야 한다.

셋째로 외부로부터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다양한 투자를 통해 지자체와 민간의 역량을 활용한 농촌의 주택 및 생활 서비스 그리고 경제 활성화 계획을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지원해 농촌이 삶터이자 일터 그리고 쉼터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농민들이 노동당의 거짓에 속지 않고 투쟁으로 정치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농촌진흥은 지난 수십 년간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곁가지만 흔들다 끝났다. 강성 로마는 당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정치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등장했기에 천년 번영이 가능했다고 한다. 무너져야 할 것이 제때 무너지지 않으면 북한 농촌은 거듭나지 못할 것이다. 2024년은 북한 노동당이 정치적으로 몰락해가는 첫해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