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평화와 통일로 가는 새로운 길 2.0

5월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이 발사되는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이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위험한 거래’에 합의한 가운데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정찰위성(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 이 시각 우리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도발이 실제로 강행되면 ‘북한도발 규탄, 국제사회와 연대 압박, 만반의 대비태세 구축’과 같은 정형화된 레토릭만 또다시 내놓지는 않겠지? 불현듯 사기(史記)에 나오는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 문구가 떠오른다.

이 고사성어는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복잡한 상황이나 위기 국면에서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필자가 오늘 이 격언을 얘기하는 것은 ▲현 남북 관계가 상당히 위중(危重)하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보다 선제적·공세적으로 북한을 관리해 나가야 할 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판 ‘고르디우스의 매듭 단칼에 자르기’와 같은 대통령의 제2결단과 전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제1결단은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원칙 하에 3축 체계 조기 구축에 진력하면서 한미 워싱턴선언,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력 제공, 한미일 연대 강화 등을 공식 문서화한 것이다. 이 같은 ‘힘에 기초한 평화’ 노선은 이념과 진영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지만, 김정은의 핵을 기반으로 한 초강경 대남전략을 고려해 볼 때 시의적절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길

최근 한반도 정세는 북한이 핵무기를 연구·개발하는 단계를 넘어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 핵능력 고도화 지속 의지, 핵 선제공격 정책 등을 명문화하고 ▲주민들에게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며 ▲우리를 육해공·우주·사이버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위협하는 국면으로 에스컬레이트(escalate) 되고 있다.

김정은이 장갑차를 직접 몰며 ‘남조선을 쓸어 버리자’는 구호 앞에서 전쟁 준비 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섬찟한 모습을 보고서도 공자님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평화와 민족을 사랑하는 인텔리라는 자위감(우월감)을 가질지 모르지만, 알든 모르든 적을 이롭게 하는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베트남·아프가니스탄 멸망 및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신(新) 중동전쟁의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말만 할 때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김정은의 핵 질주는 대화나 협상으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시기가 끝났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앞으로는 비핵화 장기목표는 계속 유지하되, 당면해서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전방위적인 압박을 통해 김정은이 ‘핵을 가지고 있으면 손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끔 만들어 나가는 단계적 대응에 주력해 나가야 한다. 비핵화만 추구하다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을 넘어 국가안전에 치명적인 허(虛)를 보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3대 세습 독재자의 막가파식 행보하에서 비핵화와 교류 활성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담대한 구상》의 기조는 이상적인 대목표로 계속 유지하되 ①자주국방과 미국과의 확장억제력 강화로 김정은의 오판을 방지하면서 ②자유의 확산을 통해 북한 사회 저변을 변화시켜 나가는 맞대응 정책을 수행하는 데 보다 방점을 두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김정은의 셈법을 바꾸고 ▲북한 주민을 노예 같은 삶에서 1분1초라도 빨리 해방시키고 ▲한반도 평화 및 자유 통일한국 건설로 나가는 실제적인 길이다.

다행히 ①번 사항은 대통령의 제1결단을 통해 어느 정도 토대를 구축하고 내실화를 기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없다. 굳이 첨언한다면,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의 평화적 이용 권한 확대, 핵 자체 보유를 허용해 주는 극단적 상황(시나리오)에 대한 물밑 논의도 함께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복구와 새로운 설계로 기반을 다지고 있는 ②번 관련 사항에 보다 총력을 경주해 나가야 한다. 이 방안은 ▲북핵을 넘어 북한 문제로 한반도 위기를 해소해 나가는 포괄성(comprehensity) ▲김정은의 선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추진하는 능동성(activity) ▲북한 주민의 참혹한 생활상을 한시라도 빨리 개선하려는 인류애(humanity) ▲심화 되고 있는 남북 간 이질화를 극복하는 동질화(homogenization) ▲반짝 이벤트나 특정 정부 임기를 넘어 지속되는 장기성(long-term nature) 등을 특징으로 한다.

필자는 이 같은 북한변화 프로젝트를 비핵화, 자유화, 시장화, 친한화, 세계화의 ≪5화 전략≫(상세 내용은 2022.4.15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김정은 對 윤석열(Ⅳ): 북한체제 변화를 위한 5化 전략’ 참조)으로 개념화한 바 있다. 이런 조치는 때로는 정부가, 때로는 민간이 주도하면서 국제사회와 유기적으로 공조하며 당당하게 끊임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

즉각 조치

먼저, 선제성이 중요하다. 김정은의 반평화·불법적 행태는 이제 도를 지나쳤다. 정부는 자위권 및 인류 보편적 가치 구현 측면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우리의 타임테이블(time-table)에 기초하여 선제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내외 여건상 어려움이 있다면, 최소한 레드라인(red-line) 개념이라도 도입하여 도발을 응징하고 우리의 대비 태세를 한 발짝 더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무기를 밀수출하거나 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할 경우, 우리는 휴전선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심리전을 즉시 재개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분명하게 선언해 두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북 전달 창구는 방송과 중·러 라인을 동시에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북한이 실제로 도발을 강행했을 경우이다. 당연히 미리 경고한 대북 심리전 재개 등 ‘북한 변화 프로젝트’를 본격 시행하는 것이다.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후 비난 담화와 국제사회 공조로 대응해온 그간의 수동적 관례를 깨뜨리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의 대응에 군사적 행동으로 맞서 나올 경우에는, 과거 연평도 포격 도발(2010.11), DMZ 목함지뢰 도발(2015.8) 국면에서처럼 원칙적으로 맞대응함으로써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월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12일 전술미사일 생산공장을 비롯한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하면서 군수 생산 실태를 료해(점검)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계속 조치

국가안보, 인류 보편적 가치와 관련된 문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북한과 주변국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손해가 있더라도 원칙적으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대의명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정부와 민간은 ①‘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은 절대 없다. 핵은 김정은 정권 멸망을 촉진할 뿐이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②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객관적인 평가와 개선 요구 사항을 담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2014.2/372쪽 분량) 이행을 지속 촉구해야 한다 ③한편 ‘남북 간 합의서와 국제법을 준수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만이 북한이 살길이다’는 점을 병행하여 강조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세계인들이 북한의 폐쇄성과 반인민성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테마를 선정하여 북한당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주민들을 깨어나게 하는 국내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인권단체 연대모임을 결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방송 청취와 인터넷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연대》,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한 국제연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연대》 등을 조직하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한다면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이런 울림은 북한으로 자연스럽게 전파될 것이다.

이 같은 조치를 위해서는 대통령과 통일부 등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국회 등 각 분야 지도자, 단체, 신문방송 등이 앞에서 이끌고 국민이 한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필요시에는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직접 발표하는 문제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필자는 36년간 북한을 관찰, 분석하며 나름의 대응책을 제시해 오고 있다. 찐 평화통일주의자의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대결주의자가 절대 아니다. 단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은 ▲이중적인 상대(주적이자 대화파트너)와 걸어가는 노정이므로 ▲감상적인 마인드나 특정 정부의 이벤트 영역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되며 ▲튼튼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실사구시·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오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목표(object)보다 과정(process)이 더 중요하며,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시대와 처한 환경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직해 나가야 한다. 2023년 현재의 상황은 과거와 달리 180도 변했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마구 휘두르며 대화와 교류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설사 미북 간 협상장에 복귀하더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처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목표는 유지하되 과정은 달리해야 한다. 때로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게 대화를 위한 가장 좋은 전략전술일 수 있다. 독일통일도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아데나워 총리의 힘에 기초한 ‘자석이론’이 뒷받침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가 어려운 국면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대착오적인 독재자 김정은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레토릭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①차분하게 힘을 키우며 ②국제사회와 협력하여 ③북한지도부를 압박하고 ④주민들을 직접 상대하여 깨우치게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⑤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전쟁이나 평화냐’의 틀린 논법에 현혹되지 않고 자유 대한민국과 자유세계의 힘,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이순신 정신을 믿고 자신 있게 생활하게끔 해야 한다. 그것이 비핵화, 평화체제, 통일한국으로 가는 진정하고도 미래지향적인 길이다. 다시 한번 지도자는 물론 국민들의 단단한 마음을 당부한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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