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지우기’에 부정적 여론 커지자 주민 입단속 나섰다

당 및 근로단체에 "당 정책 비판 소지 있는 어떤 언급도 하지 말라"…반동적 현상 철저 보고 지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가 1월 15일 수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회의에선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기구를 폐지하는 결정이 나왔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통일 지우기’를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내부에서는 통일 개념 삭제 조치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북한 당국은 주민 입단속에 나섰다.

19일 데일리NK 평안남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달 초 각 당 기관과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조선직업총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등 외곽 근로단체에서 이뤄지는 강연과 학습, 생활총화 시간에 당의 대남 정책에 관한 발언을 신중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특히 기관·단체 간부들에게 강연회 등 계기에 일반 노동자나 주민들에게 당 정책에 대한 비판 소지가 있는 어떤 언급도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당의 정책에 토를 달거나 정치적 발언을 하는 자가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체계를 강화하라고도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최근 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일 개념 삭제 조치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반동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추측성 발언을 하거나 불필요한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경우 상부에 보고하라고 당부했다.

지난 1월 김 위원장이 제14기 제10차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쓸데없이 부연하지 말라며 입막음에 나선 셈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통일 지우기에 관한 의문과 비판 여론이 커지자 당국이 진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평안북도 평성시에서는 통일 개념 삭제 조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60대 남성이 보위부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전언이다.

이 남성은 “조국 통일은 수령님의 유훈인데 왜 갑자기 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가 반동 발언을 한 것으로 신고돼 즉시 보위부에 체포됐고, 최근 행적은 물론 이 같은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한 북한 간부도 당국의 통일 개념 삭제 조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당에 충직한 간부들도 민족과 조국 통일, 동포, 한겨레라는 역사적 사실은 말 한마디로 지우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포치(명령)는 좋은 동향은 아니라고 본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에 간부 “압살책동”, 주민 “부러워”)

북한 당 간부들조차 통일 지우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소식통은 “당 정책이나 결정 조치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발언도 하지 말고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경우 낱낱이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만큼 당분간 인민들이 ‘통일’과 관련한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