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에 선택과목을 도입하는 새로운 교과과정을 일부 학교들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향후 이 같은 교과과정을 전국적으로 추진한다는 명목에서 새로운 교과서를 인쇄하기 위한 파지 수매 과제를 내렸다는 전언이다.
26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이달 중순 고급중학교 학생들이 사회 및 자연(과학) 과목의 세부 교과목들을 의사에 따라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교과과정 개편 사업 추진에 관한 지시문을 내렸다.
이 사업은 현재 지역별로 일부 몇 개 학교들에서 시범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앞으로 선택과목이 도입된 개편된 교과과정을 전국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 밝히면서 이에 맞게 새로운 교과서를 출판하는 사업도 동시에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도·시·군 인민위원회들에는 상파지 및 하파지 수매 과제를 선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지나 책처럼 형태가 잡혀있거나 하얀 종이 인쇄물은 상파지로 분류하고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휴지 같은 것은 하파지로 분류해 각각 수매 활동을 벌여 교과과정 개편에 따른 교과서 출판 사업에 박차를 가하라는 지시다.
이에 따라 양강도 풍서군에서는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초급중학교(우리의 중학교), 고급중학교는 물론 인민반에까지 파지 수매 과제가 긴급하게 내려졌다.
그러나 주민들은 갑자기 내려온 파지 과제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비교적 고급 파지에 해당하는 상파지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다.
소식통은 “국가에서 만들어서 내려보낸 주요 과목 교과서를 내놓고 도내에서 생산한 교과서들은 질이 형편없어 대체로 하파지가 많다”며 “상파지로 된 인쇄물이 있지도 않아 수매가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 풍서군에서는 현재 학생 1명당 5kg의 상파지 수매 과제가 떨어졌는데, 과제량이 과도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파지 수매 과제를 사실상 대신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상파지 1kg도 내기 어려운 판에 도대체 5kg을 어디서 구하느냐”, “현실에 맞는 과제를 내줘야지 무작정 빨아들이려고만 한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세대는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김일성 저작물이나 덕성실기(德性實記), 회상기 등 북한에서는 파쇄할 수 없는 서적을 뜯어 일부를 상파지 과제로 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편, 갑작스러운 파지 과제에 시장이나 길가에서 돈을 받고 파지를 파는 장사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풍서군의 약삭빠른 장사꾼들은 길가나 매대에 ‘상파지 수매’ 간판을 걸어놓고 파지를 싼값에 넘겨 받아 비싼 값에 되팔고 있다”며 “새로운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 때문에 주민들이 이리저리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