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에 간부 “압살책동”, 주민 “부러워”

[인터뷰]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규정에 "한순간에 민족성 사라지지 않아”…남북관계 개선 바라

통일부. /사진=데일리NK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의 날’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은 우리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부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추진하기 바란다”고 직접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지시가 있고 나서 이 사안은 통일부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직접 탈북민 단체장들을 만나 견해를 듣는가 하면 통일부 나름대로도 남북하나재단 등을 통해 날짜 선정을 위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날짜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일인 7월 14일로 최종 결정됐다.

이 소식은 북한에도 전해졌다. 북한 당국이 단속하는 비합법적 루트를 통해서다. 북한 당국은 이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언급도, 비판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 자체로 내부 동요가 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이달 초 본보와 인터뷰한 국경 지역의 한 주민 A씨는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에 “우리는 여기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거기(한국) 간 사람들은 여기에 비기지 못할 좋은 환경에서 관심과 지원 속에 살아간다니 부러울 뿐”이라며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드러냈다.

이어 A씨는 “왜 갈 수 있을 때 가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며 “이제는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죽기 내기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민 지원 정책과 방향성을 알고 나니 북한 체제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는 게 A씨의 이야기다.

다만 체제 충성도가 높은 북한 간부는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여 간부와 일반 주민 간 명확한 인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 당 기관 간부 B씨는 “반동사상으로 도망친 자들의 날을 제정한 것은 반공화국 압살 책동으로 우리 내부를 흔들어보려는 목적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북한 당국의 입장이 당 간부들에게도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B씨는 “독립운동가도 아닌데 기념일까지 세운다는 게 이상하다”면서 “당적으로 북남 간에 통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한민국을 동족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황에서 남쪽에서 이런 정책이 나온 것을 인민들이 알면 동경심이 커질 수 있는 위험한 사상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 당국이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 및 민족 개념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을 두고서는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B씨에게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자신이 ‘당에 충직한 사람’임을 강조하며 입을 뗐다.

그는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도 충성심이 높고 당성이 높은 간부들이 많다. 하지만 민족이 아니라고 한다고 한순간에 민족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반동이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에 충직한 사람들도 민족과 조국통일, 동포, 한겨레라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은 말 한마디로 지우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포치(명령)는 좋은 동향은 아니라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픽=데일리NK

일반 주민 A씨의 경우에는 북한 당국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긴장 상태로 치닫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A씨는 “북남(남북)관계가 나빠질수록 주민들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고 군사력 강화를 위해 백성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최소한 북남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능하다면 남조선과 관계를 좋게 해서 식량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지원받으면 좋겠다”며 남북관계 개선으로 한국으로부터 각종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 사회와 그 사회에 속해 있는 탈북민들의 삶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B씨는 “남조선이 자유 국가고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사회라는 걸 간부들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안 좋은 실례만 종합해서 인민들에게 강연하면서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간부들은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없다. 남조선 가면 살 집과 돈을 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부들이야 남조선 가서 지금만큼 못 살면 굳이 갈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탈북을 감행할 마음은 없다는 얘기다.

반면 일반 주민 A씨는 “여기(북한)서는 탈북민 가족이 부러움의 대상”이라며 “남조선에 가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서,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 졸이지 않고 실컷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