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사람들
중국은 1986년 북한과 ‘변경 지역의 국가안전과 사회질서 유지 업무를 위한 상호협력의정서’, 이른바 국경의정서를 체결한 이래 자국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들을 체포해 돌려보내 왔다. (1998년 한차례 개정) 그러나 실상 ‘국경’은 이러한 협정이나 월경(越境)행위에 대한 단선적 시선으로만 설명되는 공간은 아니다. 그곳에 사람들마다의 사정이 있고, 새로운 기회가 있고, 불가피한 선택이 있다.
DailyNK 보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북송 대기 중인 그룹에 대한 보고는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대략 한 달 정도 지역 공안으로부터 변방대 인계, 조사, 구금 기간을 거쳐, 북한 당국(보위부)으로 신상 정보가 공유되고, 북측에서 통지를 보내오면, 인수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다. 통상 변방대 별로 약 20~200명 정도로 묶어 송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중 간 협약은 일정한 체계를 이룬지 오래고, 북한 주민들을 송환하는 ‘합의’ 결정에 변화를 일으키는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되지 못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또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문동희 기자, 中은 탈북민 200여 명 체포·구류…북한은 또다시 ‘송환 거부’ , DailyNK, 2020.10.14.)로 인해 이따끔씩 북한 당국이 송환을 거부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나, 북한 당국의 송환 의지가 줄어드는 것으로 예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국경을 넘고자 하는 이들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에 따라 국경 너머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위기 극복과 새로운 위험, 욕망 사이
북한이라는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극도로 억압하고 있지만, 인간이 곧 욕망하는 존재(Homo Desidero)라는 점을 바꿀 순 없었다. 북한 주민들 개개인이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지를 읽어낸다면, 억압과 통제에도 ‘이탈’이 발생하는 원인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 조치 아래 놓이지 못한 많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었다.
이후에도 고난의 행군이 만든 루트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개인들에겐 직업 선택의 자유, 이동의 자유가 허용되지 못하고, 여성들에게는 부양의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구조가 작용한다. 결국 거주지 내에서 생계 수단이 마련되지 못하면 인신매매를 가린 꼬임이나 취업의 유혹에 응하게 되고, 국경이라는 두려운 유무형의 선을 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과정이나 중국 현지에서 겪는 비참한 상황들은 정보 부족으로 미처 예견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자화(原子化)된 상태의 그들은 국경을 넘는 특수한 경험 속, 가족을 구성하기도, 불안정한 신분 상태로 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국가정체성이 변화하기도 했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 한국행을 택했다. 요약하자면, ‘생존’, ‘제약’, ‘가족’, ‘신분’, ‘정보’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탈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이다.
공식적 관리가 의미하는 것은?
2017년에 이어 2019년 중국에 체류 중인 북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임시거주증을 발급해 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장슬기 기자, 中공안, 불법체류 탈북여성에 “강제송환 안할테니 가정 지켜라, DailyNK, 2019.12.19.) 이후 중국 당국이 전체 탈북민이 아닌 거주지가 일정치 않고 사회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사람 위주로 체포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는 북한 여성들은 곧 강제송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기에,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현지에서 안정적으로 가정을 구성하게 된 경우라 하더라도, 신분상의 불안정성으로 정신적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행운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역 파출소에 체포된 경우라 하더라도, ‘남편이 벌금을 내거나, 10년 이상 거주자이며 가정을 이룬,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송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신분증은 내어 주지 않은 채, 강제송환의 위험은 ‘가정을 지키는 한’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임시방편적 조치는 불안정한 상태의 지속일 뿐이다.
나아가 중국 가족을 버리고 한국행을 시도하는 탈북민에게는 ‘재생의 기회가 없는 범죄행위로 보고 가차 없이 북송 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정태주 기자, 中 쿤밍시 공안, 한국행 탈북민 유동 집중 단속…무슨 일?, DailyNK, 2023.7.31.) 해당 정책은 중국 남성과 중국 당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에, ‘북한 여성’을 도구화하는 비인간적이고 몰지각한 시선을 노출할 뿐이다.
북–중 간의 협약과 의도
해당 북한 여성들은 일정 기간마다 파출소에 들려 자신을 둘러싼 동향을 보고하게 된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는 어떻게 인신매매 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다. 인신매매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러한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합의서에 따르면 북중 두 나라 사이에 관계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서로 협의하여…긴밀한 연계 밑에 서로 정황을 통보하면서 적극 협력’한다고 한다.
이는 북한 당국의 국경 시설 강화와도 맞물린다. 지난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22년 4월 촬영된 위성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169개의 감시초소를 추가로 설치하고, 9.2km에 달하는 지역에 철조망을 한 줄 더 추가했으며, 9.5km에 걸쳐 기존 철조망을 보완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코로나 이후 북한 당국의 통제 방식은 더 촘촘해졌다. 국경 봉쇄 조치로 인한 ‘폭풍군단’의 등장, 통행증 승인 기관 수 확대 등의 조치도 생겨났다. 김정은 집권기 들어 이미 즉각적으로 국경경비대에 의한 현장 사살이 허용됨에 따라,(김채환 기자, 양강도 국경서 도강 시도하던 일가족, 폭풍군단 총격에 사망, DailyNK, 2022.8. 12.) 그 행위의 엄중성의 정도는 눈에 띄게 뚜렷해졌다. 탈북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북한 당국의 의지는 명확하며, 중국 당국은 이에 조응하고 있다.
합의서 제7조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과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부부장을 조중 국경 안전, 공안 수석대표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명백한 책임 규명의 대상이다. 아울러 이 1998년 개정된 이 합의서는 20년간 효력을 가졌고, 이후 5년씩 자동적으로 연장돼 왔다. 지속되고 있는 ‘강제송환’ 문제는 북-중 양국 정책상 자리 잡은 비인간성, 알고도 이를 묵과하는 국제사회의 침묵이며, 정치적 판단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파괴되고 있는지에 무심한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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