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북한의 대남 특이행보: 강경과 신중의 이중모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3차 확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리태섭(맨 오른쪽) 군 총참모장이 경북 포항까지 표기된 대형 지도 앞에서 김 위원장에게 작전 계획을 브리핑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한·미 정보당국이 “김정은이 7차 핵실험 준비를 끝냈으며, 지금은 최종결심만 남아있는 단계”라고 평가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6.21~23)를 소집한 후 “전방부대에 중요 군사행동을 추가하였다(전술핵 등 신형무기 실전배치로 추정)”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군창건일(4.25)과 당 제8기 5차 전원회의(6.8~10) 연설 등을 통해 코로나19 확산·경제난 심화 등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국방력 강화’ 노선의 강화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이처럼 2022년 상반기는 북한의 18차례에 걸친 33발의 다종다기한 신형 전략·전술미사일 시험발사, 미사일 모라토리엄 파기(3.24), 핵무기 대남선제공격 가능성 발언(4.25 김정은) 등으로 인해 한반도 위기가 한층 더 고조된 시기였다.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김정은의 군창건일 열병식 연설/ 2022.4.26. 조선중앙통신).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과거와 구별되는 동향들도 함께 눈에 뜨인다. 이 같은 특이 움직임은 강대강·정면대결전의 도도한 흐름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김정은의 대남전략전술을 평가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보자. 가장 먼저, 북한이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3.9) 국면에서 일관되게 미사일 시험발사를 견지한 점이다. 다음으로, 지난 5월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 종료 직후 장·단거리 미사일 섞어쏘기 도발을 한 이후 이렇다 할 비난전을 전개하지 않고 넘어갔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밖에 우리 민간인의 대북전단 공개살포 재개, 윤석열 정부의 해수부 피살 공무원 월북조작사건 재조사 등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대선 일정을 개의치 않은 미사일 도발

김정은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이른바 진보·친북 성향의 문재인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실패과정에서의 앙금 표시로만 해석할 수 없는 면들이 많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전략전술적 측면에서 접근해 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비핵화 협상장으로 나온 이후 한미동맹 체제하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적임을 명확히 보았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를 상대하기 보다는 미국과의 직접적인 기싸움-대타협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판단하에 문 정부를 철저히 무시(passing)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른바 주미종남(主美從南)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 정부와의 대화보다는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대미 군축협상이 북한이 가야할 길이라는 판단이 섰다고 봐야 한다. 설사 대한민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미국과의 협상만 잘 이뤄지면 큰 이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한편 물러나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서 교환(4.20/4.21)을 통해 덕담을 나누며 예우한 것은 ▲그간의 수많은 도발과 냉대를 나름 희석시키면서 ▲향후 남북간 대화·협력 재개에 대한 희망고문을 계속하고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원칙적인 대북정책을 반평화·반민족 대결정책으로 매도하여 우리사회 내 51:49의 국론분열 지형을 만들려는 고도의 다목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평가된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북남수뇌들이 력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데 대해 회억하시면서 임기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써 온 문재인대통령의 고뇌와 로고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북남수뇌분들께서는 서로가 희망을 안고 진함없는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북남관계가 민족의 념원과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하게 될것이라는데 대해 견해를 같이하시면서 호상 북과 남의 동포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시였다. 북남수뇌분들의 친서교환은 깊은 신뢰심의 표시로 된다(2022.4.22. 조선중앙통신).

한미정상회담 종료 이후의 신중 모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10여 일 만에 바이든을 서울에 초청하여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 관계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기조를 공동성명에 명문화하였다.

이로써 북한핵은 무력화·무용화의 구조로 접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김정은은 장-단거리 미사일 섞어쏘기 시험(5.25) 이외에 별다른 비난전을 전개하지 않았다. 당국의 공식논평은 없었으며, 단지 10일이 지난 후 ‘메아리’ 등 대외선전매체가 “현대판 을사조약” 등으로 폄훼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한미 간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외무성이나 김여정이 직접 나서 강하게 비난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남북 간 주요 현안사건에 대해서도 침묵

북한은 2020년 6월 국내외 NGO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로 개성남북연락사무소 폭파(2020.6.16) 등 초강경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으며, 급기야 문재인정부로부터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제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대북전단 100만 장, 마스크, 해열제 등을 살포(4.25/4.26/6.5)하였다”고 발표하고 있음에도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북전단을 보내기 좋은 남풍(南風)이 부는 시기여서 북한내부에 다량의 전단이 떨어졌을 개연성이 큰데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또한 해수부 피살공무원 월북조작 사건 전면 재조사, 누리호 발사 등 굵직한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다.

북한은 지난 1월 17일에 발사한 2발의 탄도미사일이 ‘전술유도탄’이라고 밝혔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보도에서 전술유도탄의 검수사격시험이 전날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함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전날 평양 순안공항 일대에서 2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맺음말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결정한 ‘자력갱생+핵·미사일 고도화에 기초한 정면돌파전’ 기조, 그리고 최근 핵·미사일 개발이 실전배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시기적 측면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으로써 ▲김정은이 핵보유국을 목표로 자위권·평등권을 강변하면서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를 추진하지만 ▲코로나19 방역 등 내부 단도리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여타 현안문제를 둘러싼 대남·대미 대결전선(對決戰線) 확대는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렇지만, 이번에 김정은이 직접 주재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대한민국 지도를 걸어 놓고 새로운 전략전술에 기초한 전력운용을 논의한 점(전술핵 실전배치 단계)을 볼 때, 앞으로 보다 공세적인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최선희 외무상-리선권 통일전선부장 라인을 셋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김일성의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 2.0버전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핵·미사일 개발과 인간·사회 개조를 통해 북한을 전진기지로 만들고, 대남-해외 통일전선역량 강화를 통해 적화통일의 여건을 조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김정은의 구상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강화와 다양한 통일전선전술 구사를 염두에 두고 당규약을 개정한 사실에서 입증된다(상세한 내용은 2021.1.14자 데일리NK 곽길섭북한정론 ‘당대회서 드러난 김정은의 역주행, 그 미래는?’을 참조)

5일차 회의에서는 체제운영의 바이블(bible)인 당규약을 개정하였다. 가장 중요한 서문에서는 첫째 김일성·김정일주의와 김정은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보다 정치하게 서술하여 3대 세습통치의 정통성을 부각하였다. 둘째 해외동포관련 표현도 삽입하여 통일전선사업 기반 확대를 시도하였다. 셋째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파트에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한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환경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앞당긴다”는 문구를 추가하여 핵불포기와 무력에 기초한 대남적화통일 의지를 보다 노골화 하였다. 한마디로 기존의 전 한반도 공산화통일 전략전술, 유훈의 계승을 넘어 대내ㆍ해외ㆍ대남 기반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위의 2021.1.14자 정론).

따라서, 7차 핵실험 등 북한의 강對강(도발) 국면이 지난 후 어떤 형태로든 연對연(대화) 국면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강對강 국면 이후에는 남남갈등·한미이간 등을 노린 북한의 상·하층 통일선전술이 본격화(강·온對강·온) 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김정은이 핵·미사일 전력체계 고도화 → 상·하층 통일전선전술 전개 →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통한 안보·경제 실리 획득 → 비핵화 협상 파기 → 핵보유국으로 유턴 → 북한주도의 한반도 적화통일(연방제 또는 무력통일)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강·온 전술을 구사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은 1단계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2단계(본격적인 통일전선전술 구사기)로 넘어갈 것이다. 때마침 북한의 이른바 반미투쟁월간(6.25~7.27)도 시작되었다. 악의적인 ‘전쟁 대 평화’ 프레임, ‘우리민족끼리’ 선전전을 통한 남남갈등-반미분위기 조장을 위한 선동공세가 더욱 고조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 내 안보부처는 당면한 북한의 7차 핵실험 대비는 물론 그 이후에 전개될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고, 우리의 운동장으로 김정은을 끌어 들일 수 있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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