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철직시 직무 정지만?…북한, 법에 ‘노동’까지 명시했다

[2020 개정 행정처벌법 입수] 강직→해임→철직순으로 징계 수준 높였다...이중 처벌은 불가

이전 글 보기 : 북한 “‘진심’으로 자백해야 처벌 안 받아”…자의적 적용 우려

북한 행정처벌법상 강직, 해임, 철직 규정. /사진=데일리NK

‘원산편직물공장 검열받아…밀무역 연관자들 모두 해임철직’
‘청진 맹인신발공장 노동자가족 장사 떠나다 단속…지배인은 철직’

북한의 간부들에게 내려지는 징계 중에는 ‘강직’, ‘해임’, ‘철직’이 있다. 북한의 간부 인사 관련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해당 징계가 정확히 어떤 기준에 따라 내려지고, 해당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단어의 뜻으로 징계 내용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는데, 본지가 입수한 새로 개정된 행정처벌법에 답이 나와 있었다.

지난해 개정된 북한 행정처벌법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조문에 상세한 설명이 생겼다는 점이다. 조문에 나오는 단어에 정확한 정의를 내려 법 집행시 나오는 자의적 해석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강직, 해임, 철직 처벌’은 ‘무보수로동처벌’, ‘로동교양처벌’, ‘경고, 엄중경고처벌’ 등과 함께 행정처벌(총 9개) 중 하나다.

행정처벌법 19조에서 강직, 해임, 철직처벌을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더욱 무거운 위법행위를 한 일군(일꾼)을 해당 직위 또는 직무에서 내려놓거나 떼는 행정법적 제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먼저, 강직 처벌에 대해서는 ‘위법행위를 하여 자기 직위나 직무에서 일할 자격을 잃었을 경우 한 급 또는 그 이하의 낮은 급에 내려놓은 방법으로 집행한다’고 밝혔다.

남한의 국가공무원법(79조)에는 징계를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譴責)으로 구분한다. 북한의 강직은 이 중 강등과 의미가 비슷하다.

해임 처벌은 ‘위법행위로 보아 철직 처벌을 주어야 하겠으나 특별히 고려할 사유가 있을 경우 해당 직위나 직무에서 떼여 로동을 시키거나 자기 단위에서 내보내는 방법’이다.

해임은 국가공무원법상 해임과 비슷해 보인다. 다만 북한에서 말하는 해임은 직무에서 벗어나게 한 뒤 강제로 노동을 시킨다는 점에서 다르다.

직무에서 완전히 떼어 추가로 노동을 하거나 다른 단위로 추방된다는 점에서 강직보다 한 단계 높은 징계라 할 수 있다.

철직은 해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징계로 분석된다.

철직은 ‘수행된 위법행위로 보아 일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해당 직위나 직무에서 떼여 어렵고 힘든 생산 부문에서 육체적 로동을 시키는 방법’이라고 규정한다.

강직과 해임은 ‘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는 경우’이지만 철직은 ‘일군으로서 자격이 없는 경우’다. 철직을 당할 정도의 죄를 지은 사람은 해당 기관에서 일할 자격이 박탈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한 철직된 사람은 ‘어렵고 힘든 생산 부문에서 육체적 로동’을 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해임된 사람은 단순히 ‘노동’을 한다고 규정한 것에 비해 강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남한의 국가공무원법상 파면과 비슷하나 앞서 말한 해임과 마찬가지로 추가 노동을 해야한다는 점이 차이를 보인다.

이와 관련, 지난 3일 본지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간부부 김 모 씨가 뇌물혐의로 철직돼 지방으로 추방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에는 부정부패를 한 간부가 철직 후 추방됐다는 내용만 담겼다. 행정처벌법 규정대로라면  해당 간부는 지역의 생산 현장에서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한 간부들의 징계 관련한 뉴스 속에는 해임과 철직이라는 표현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남한의 경우 헌법상 이중처벌의 금지 원칙에 따라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을 두고 공무원에게 해임과 파면이라는 두 가지 징계를 내릴 수 없다. 다만, 징계를 받는 상태에서 다른 위법행위가 발생하면 추가 징계를 받을 수는 있다.

행정처벌의 종류를 규정한 조문(15조)에도 ‘경고, 엄중경고 처벌, ‘무보수로동처벌, 로동교양처벌, 강직, 해임, 철직 처벌, 벌금처벌은 기본 행정처벌로 독립적으로만 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행정처벌 시 여러 종류의 처벌을 중복해서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북한 주민은 물론 간부들도 해임, 철직에 대해 정확한 규정을 알지 못한 채 ‘해임, 철직’을 간부 징계에 대한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