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김정은의 ‘통치’와 ‘건축’…비뚤어진 ‘평양착시’ 구축

[김정은 집권 10년⑨] 건축 통한 정치 드라이브, 사용자 편의성-안전한 건설 환경 고민 절실

동창리 은하3호 로켓
지난 2012년 북한 동창리에서 발사된 은하3호. /사진=노동신문 캡처

28살의 김정은은 2011년 12월 갑작스런 아버지 김정일의 죽음을 맞았다. 후계자로서 짧은 정치적 경험이 전부였던 김정은은 마치 혹독한 겨울에 늑대무리에 버려진 아이와 같은 심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버지 김정일의 입맛을 맞추려던 노장의 권력 세력들뿐이었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청년시절부터 감옥을 드나들며 항일 빨치산 활동을 통해 북한 공산당 최고 권력을 차지했다. 아버지 김정일 또한 30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정적들과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이어온 끝에 최고수반에 올랐다. 그러나 김정은의 권력 승계과정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처음 정치무대에 선 이후 2012년 4월 조선로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기까지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시 북한 권력승계에 대한 국내외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3대 세습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비판, 둘째는 어린 김정은이 주변의 아무런 저항 없이 온전하게 권력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무난히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공포정치로 다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2년 3월 김정일 사망 추도기간에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처형하고, 2012년 10월 군부 1인자였던 리영호 총참모장과 2013년 12월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고사총으로 처형, 2016년 7월 내각 부총리인 김용진을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숙청했다. 마침내 2017년에는 이복형인 김정남마저 타국에서 독살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을 놓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김정은이 한순간에 자신의 손에 쥐여진 권력이 아버지의 경우처럼 온갖 투쟁과정을 거쳐 탄탄하게 단련된 권력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2012년 은하 3호를 시작으로 미사일 개발에 집중했으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성능을 발전시키며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북한이 200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이어진 총 6차례의 핵실험 중 김정은 시대에 4차례의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얻게 된 수확은 매우 강화된 대북 경제제재 뿐이었다.

이 또한 김정은 정권초기에 그가 느꼈던 허약한 리더십을 만회하려는 의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김정은은 집권초기부터 강력한 리더십에 목말라 했었다. 인민들로부터 선대의 지도자상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는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2013년 마식령 스키장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평양에는 물놀이장, 승마장, 보육시설 등과 같은 인민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시설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입각한 인민중심의 시설을 건설하는 등 건축을 통한 정치에도 눈을 뜬 것이다.

려명거리
북한 려명거리. /사진=서광 홈페이지 캡처

통치와 건축

통치수단으로서의 건축은 북한식 사회주의에서 매우 요긴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매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과거 평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평양착시’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가령 대동강변의 화려한 고층빌딩과 그 사이에 펼쳐진 쾌적한 공원과 광장,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평양시민의 모습을 보면 유럽의 어느 도시도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많은 이들은 “평양은 영화를 찍는 거대한 세트장이나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같은 목적으로 건설되고 활용되었다”고 말한다.

2017년 4월 13일 북한은 외신기자들까지 초청해가며 려명거리의 완공을 선전했다. 이처럼 평양의 고층건물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창전거리를 시작으로 은하과학자 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에 고층 주거건축물을 공들여 짓기 시작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는 류경호텔이나 주체사상탑과 같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공들인 반면, 김정은 시대에는 주거용 고층 건축물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김정일 시대까지는 사회주의국가 성장시대의 체제완성을 위한 건축행위였던 반면, 김정은 시대에는 체제유지를 위한 기반조성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평양의 고급 아파트를 지어 핵무기 개발에 기여하는 과학자, 기술자 등 북한 내 엘리트 계층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회담의 실패는 김정은에게 건축이 보다 공세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노이 회담은 왕복 120여 시간을 열차로 강행군했던 김정은의 최고 존엄을 한순간에 추락시켰고, 지속되는 대북 경제제재는 북한경제를 더욱 꽁꽁 얼어붙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국경폐쇄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리게 되면서, 북에서 들려오는 ‘자력갱생’의 구호는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2020년 3월 평양종합병원을 건립하기 위한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이 자리에 김정은이 직접 참석하여 현장을 챙기며, 그 해 10월 10일 당 창건 75돌 기념일에 준공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어쩌면 코로나 시국이라는 비상상황에서 인민들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이야 말로 당시 슬럼프에 빠진 김정은이 벋어날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약 200일의 공사기한은 터무니없이 짧은 공기였으며, 약 3,000병상 규모 대형 종합병원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과정은 상상을 초월한 속력으로 질주하였다. 밤낮없이 3교대 건설현장이 운영되었으며, 수차례 걸친 김정은의 현지지도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마침내 그해 10월 초 언론에 공개된 병원의 모습은 마무리 공사에 돌입하는 듯 했다.

그러나 10월 10일 김정은이 고대했던 평양종합병원의 개원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또 한 번 김정은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 순간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대한 평양종합병원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 이 문제를 분석한다면, 김정은이 건축을 이용한 통치과정에서 병원건축에 대한 정확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을 것이다. 남한 최대 규모의 병원과 맞먹는 평양종합병원은 수년간의 연구와 의료진 간의 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중요한 절차지만, 막대한 의료장비 설치에 소요되는 비용조달이 없이는 병원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 건설사업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애민사상과 건축

2021년에 들어 김정은은 다시 한 번 건축을 통한 정치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평양종합병원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듯 비교적 무난한 주택건설을 통해 애민사상를 보여주려는 모습으로 비친다. 평양 보통강변의 강안지구, 사동구역의 송신지구, 송화지구 등 대규모 주택단지의 건설은 고급화된 아파트의 건설로 확인되었다. 북한의 주택보급률이 아직 60~70%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집중하여 고급아파트건설에 치중하는 모습이 과연 인민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

건축은 인류의 삶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가가 형성되고 정치와 권력이 강화되는 시점에 와서야 대형건축물을 건설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권력이라는 막강한 리더십이 뒷받침 되었을 때 건축이 발달할 수 있다는 것도 역사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거환경은 국가가 건설하여 국민들에게 지급되었을 때 보다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주거환경을 만들어 갈 때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건축은 공적영역보다는 민간내지는 사적영역에서 진정한 건축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경우 진정한 애민사상으로 건축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건축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주도의 건축행위에서 조선속도나 평양속도와 같은 속도전으로 사업의 성과를 내세우기 보다는 건축의 기능과 사용자의 편의성 차원에서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건축물의 품질확보와 안전한 건설환경과 개선방안에 대해 최고지도자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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