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北의 ‘Again 2018’ 통일전선전술 경계해야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김정은 정권을 대하는 행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다. 국가의 안전과 국격이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넘어 의심스러운 눈길까지 보내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보자.

국민 혈세가 수백억이 들어간 남북연락사무소가 북한에 의해 무자비하게 폭파되어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나갔다. 북한 해군이 해수부 공무원을 총격·살해한 후 소각했는데도 김정은의 카더라식 전언(傳言) 사과에만 감읍하였다. 피해자 아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는 면피식 수색활동으로 시간을 끌며 애써 눈을 감았다. 이제는 사건 자체가 아예 실종상태이다.

김정은이 당 창건일(10·10) 열병식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를 총출동시켜 위력을 과시했는데도 남녁 동포에 대한 인사말의 의미만 집중 부각하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이 더욱 막강해지고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는데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집권층은 평화와 교류협력 타령만 주구장창 늘어놓고 있다. 마치 남의 일인 듯 대하고 있다. 북(北)바라기 이미지와 “상가집에 가서 축가 부른다”는 비유가 머리에 맴돈다.

최근 들어서는 말뿐이 아니다. 안보와 자유민주통일의 기본 축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고 있어 더욱 문제이다. 180석에 달하는 입법권력을 무기로 헌법 정신에 위배되고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법제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폭넓은 의견수렴과 같은 절차적·합리적 과정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게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국정원법 개정, 민간의 북한자유화 활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7조) 폐기 법안 발의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뒷받침해 온 이 법들은 지난 시기는 물론 향후 남북한이 평화와 통일로 가는 험난한 길에서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계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권 세력의 불도저식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뿌리째 뽑혀 나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같은 반(反)안보적·반(反)자유민주주의적 행동들은 ‘헌법 정신의 훼손’이자 ‘김정은을 위한 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마치 악질 성추행범 조두순이 출소하는 상황에서 보호조치를 보다 강화하지 않고 오히려 흉악범이 활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여당은 독재자 김정은의 앞길에 탄탄대로를 깔아주는 반(反)자유주주의적· 반(反)안보적 행동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만약 집권세력이 국회에서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내외에서의 전방위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즉 헌법재판소 위헌청구 소송은 물론이고 ‘세계 자유민주주의지도자 회의’(Global summit for demoracy) 구상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 정책과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외 인권기구의 연대 활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질 것이다. 정부는 소망성 사고나 확증편향적 인식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그럼 북한은 어떤가?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미사일 등 비대칭전력을 강화에 올인하여 이제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전한반도 공산화’ 목표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여기에다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 이른바 북한의 남조선 혁명역량 강화를 위한 3대 핵심공작 사업도 어느 날 호박이 저절로 넝쿨째 굴러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지난 2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막말, 조롱, 냉대, 위협으로 완전히 칼침을 놔두어 언제라도 손만 내밀면 한국 정부가 덥석 잡을 환경도 마련해 두었다.

내부적으로는 공포통치와 자력갱생, 사상교육으로 대북 제재의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소집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채택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을 암흑의 세계에 가두어 두기 위한 보다 강화된 제도적 기반까지 구축하였다.

한마디로, 그동안 김정은은 핵을 가졌고, 한국 정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중국을 확실히 잡아두었으며 미국·일본과는 협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경제외교적 어려움은 김정은이 마음을 먹고 비핵화 제스처만 조금 취하면 언제든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30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그럼 향후 북한은 어떠한 행보를 보일까?

한마디로 하면, ‘핵-경제건설 병진노선의 2.0버전’ 추구이다. 핵·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완료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핵을 가진 상태에서 경제난이라는 가뭄을 해갈시켜줄 우물을 파고 단비를 기대하는 것이 당면과제이다. 내년 1월로 예정되어 있는 8차 당대회와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의 출범이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등 고강도 도발은 이미 지난 10월 당창건일 열병식에서 첨단전력을 과시했고, 효과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매혹적인 카드는 아니다. 오히려 내부단속에 주력하면서 사태 추이를 관망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지난 8월 당대회 소집을 발표하면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수립을 이미 예고했다. 김여정은 7월에 발표한 대미 성명을 통해 미국 신행정부와의 군축 협상을 시사했다. 그럼 한국 정부와는 무엇을 할까?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Again 2018’ 전략전술을 내심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돌이켜 보면 지금은 지난 2017년 말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2017년은 한반도가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11월 29일에 미국을 사정권으로하여 발사된 화성-15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백미(白眉)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시사하고, 이어 트럼프를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을 공세적으로 진행하는 등 자세를 180도 전환하였다.

지난 2018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2021년은 또다시 북한에게 도전적인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핵·미사일 개발을 실제적으로 거의 완료하였다 ▲경제난이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어떤 형태로는 탈출로를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국정 목표를 제시하는 8차 당대회가 열린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임기이자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는 해이다. 따라서 당대회 또는 국가적 기념일, 도쿄 올림픽 등 주요 계기를 새로운 비전 제시와 대미 협상력 제고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8차 당대회에서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수립, 코로나19 대응체계 보강, 조직 및 법령 정비, 김여정 등 측근의 중용과 같은 조치를 넘어 체제목표를 규정한 당규약까지 손질할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당규약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먼저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과 2016년 당대회 결정서에 명문화한 ‘핵보유국 지위’를 이번 당규약에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업적 선전은 물론이고 바이든 행정부와의 핵 협상을 앞두고 우위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김씨 일가 영구통치’ 규정도 삽입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의 건강 이상 등 신변에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백두혈통으로 승계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규정은 이미 2013년 6월 개정한 <유일령도체계 확립 10대원칙>에 명문화되어 있어 원용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셋째, 북한이 대남적화전략 등 체제목표를 분식(粉飾) 수정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을 ▲개발 중일 때와 ▲거의 마쳐갈 때(2016년 7차 당대회 규약) ▲완료했을 때(2021년 8차 당대회)와는 상황이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승부사적 기질과 깜짝스러운 돌변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국적 범위에서의 혁명과업 완수와 관련된 조항은 대한민국이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수 없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이른바 독소조항이다. 만약 북한이 8차 당대회(또는 추후 당대표자회)에서 핵-미사일 개발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기초로 2021년을 ‘핵군축-경제탈출로 확보를 위한 위장평화 대공세’의 시기로 규정한다면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 재개에 목말라하는 문재인 정부를 유인하고 국내 친북세력의 활동 공간을 더욱 확대해 주기 위한 차원에서 얼마든지 용어 사용에 탄력성을 부여할 수 있다.

즉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대신에 “남조선 애국적 민주력량과의 협력을 통해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이루는 데 있으며”라는 다소 순화된 표현을 추가하면 근본목표에는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대남통일전선 전술 사업에서는 엄청난 효과를 거양할 수 있을 것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라는 문장속에 <전 한반도 공산화> 의미가 포괄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므로 핵을 가진 김정은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판을 크게 흔드는 술수를 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대남통일전선 강화를 위해 한국사회에서 거부감이 많은 ‘인민’이라는 표현을 삭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1980.10 6차 당대회) →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2010.9 3차 당대표자회)으로 변경한 사례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 응원단이 2018년 2월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B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에서 남북단일팀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이 2021년도에 기존의 배타적·반(反) 대화적 입장을 180도 선회, ‘Again 2018’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김정은이 원포인트로 활용하든, 지속적인 대남통일전선 전술로 확정하든 평화공세는 ‘핵있는 북한’의 중요한 전술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이 분명하다. 단지 그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측면에서 12월 8일 김여정이 최근 강경화 외무장관의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발언(“코로나 확진자 없다는 북한을 믿기 어렵다. 이상하다. 코로나 도전이 북한을 좀 더 북한스럽게 만들었다”)과 관련, “망언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계산할 것”이라고 과민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지난 2017년 말-2018년 초처럼 극(긴장고조)과 극(대화모색)은 서로 통하고, 2019년 6월 이른바 대적(對敵) 사태에서 보았듯이 김여정 다음에는 김정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내년 1월에 소집되는 8차 당대회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당대회는 지난 시기 사업을 총결산하고 새로운 국정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개최된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서는 ‘핵보유국 목표 달성’ 등 김정은의 통치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내부기반을 더욱 탄탄히 다진 후 향후 2025년 당창건 80돌, 더 나아가 2045년 100돌까지를 고려한 중장기 비전과 목표를 명문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 한반도 적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당규약의 수정은 북한의 2021년도 대남정책은 물론이고 향후 ‘핵있는 북한’의 대남정책의 바로미터(barometer)가 될 것이므로 정부는 예의 주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대를 너무 믿는 이른바 선의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이상적이지만 위험하다.

우리는 이미 지난시기 북한이 비핵화·평화를 강조하는 이면(裏面)에서 핵·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증강시켜 왔음을 생생하게 목도하였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잘못이다”는 말이 있다. 교류협력과 적화통일을 위한 상하층 통일전선전술 공작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이중적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남북한 교류협력,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전술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원칙있는 대북정책, 특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니 더욱 절실하고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미래, 국격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안보는 현실이다. 가슴이 뜨거울수록 머리는 차갑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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