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혁명군, 김일성이 가공해 만들어낸 군사조직

김일성이나 최현의 회고록에서는 공히 유격활동을 주도했던 군 조직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공간문헌에서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전설적인 항일유격대 투쟁이 선전되고 있으며 현재 조선인민군의 모태로 간주하고 있다....

최현의 유격대 생활에 전환점이 된 무산지구전투

무산지구전투는 최현의 유격대 생활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그 이전과 비교할 때 무산지구전투를 전후로 유격대 내에서의 최현의 지위가 급부상하여 제 4사장의 자리에 올랐기...

보천보 전투의 허구와 북한의 역사왜곡

1937년 6월 4일에 있었던 일명 '보천보전투'를 보도했던 한 일간지에서 최현이 김일성을 어린아이 다루듯 했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항일무장투쟁 당시 김일성과 최현의 관계는...

김일성의 抗日투쟁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없어

1933년 가을 최현이 김일성을 처음 만나고 돌아온 직후부터 일본군의 유격대 토벌이 더욱 강화됐다. 그해 겨울부터 이른바 '동기 토벌'이 강력히 추진됐는데 그 이전인 가을에는 전초전...

항일무장 유격대 당시 김일성 지위 높지 않았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생전에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권력의 본질이 물리적 폭력의 장악에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김일성과 최현의 관계를 볼 때 이 명제는 "권력은...

최현 항일무장투쟁史, 김일성보다 4년 빨랐다

암스트롱(Charles Armstrong)에 따르면, 김일성이 유격대 활동을 시작한 시점은 1932년이다 (찰스 암스트롱 저, '북조선 탄생' (서해문집, 2006), p.55). 그의 유격대 활동은 조선 국경과 가까운 안도현에서...

김일성보다 항일운동의 정통성을 지녔던 최현

최현은 1907년 음력 6월 6일 중국 길림성 훈춘현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득권이었다. 그의 부친은 최화심(崔化心)으로 당시 독립운동을 펼쳤던 홍범도 부대의 일원이었다. 독립군 집안에서 태어났던...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절대적 忠臣이었던 최현

지난해 12월 14일 노동신문에는 '우리는 김정은 동지밖에 모른다'는 정론이 실렸다. 그 요지는 이틀 전의 장성택 사형 집행을 정당화하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었다....

김정은 정권의 앞날 여전히 불투명하다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북한의 불안정성이 주목되기 시작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겉으로만 보면 북한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지난 3월 9일에는 김정은 정권의 제도적 완성을...

북한의 최근 평화공세에 진정성이 없는 이유

작년과 올해, 남북관계에는 극적인 변화가 몇 차례 발생했었다. 지난해 개성공단이 폐쇄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가동 재개된 일이 그렇고, 상봉 사흘 전 북한의 일방적인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