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군단 성범죄 피해자에 “군인이니 참아라”…가해자는 겨우 강등

사건 밝혀지자 군단 정치부 "남자가 실수할 수 있다"며 가해자 두둔…여군들 울분 자아내

2017년 4월 13일 평양 려명거리 준공식에 참석한 북한의 여군들의 모습.(기사와 무관) /사진=연합

북한군 내 성폭력 문제가 여전히 고질적인 병폐로 남아있는 가운데, 최근 북한 평안북도에 주둔하고 있는 8군단에서 상급자인 남성 장교가 하급자인 여성 병사를 성폭행한 사건이 밝혀져 논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데일리NK 평안북도 군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일 8군단 지휘부 직속 전신전화소(대대) 청년지도원 리모 씨(상위)가 20세 여성 중급병사 김모 씨를 2년간 지속해서 성폭행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북한군에는 남군 상급자들이 여군 하급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몸종, 하수인, 성적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뿌리 깊은 인권침해 관행이 지속돼오고 있다. 실제 북한군 내에는 성폭행, 성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을뿐더러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도 않는 분위기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번에 불거진 사건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폭행 가해자인 청년지도원 리 씨는 8군단 전신전화소(대대)에 교환수로 배치받아 온 당시 18세 김 씨를 눈여겨보고 함께 외출도 나가고 돈을 주고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면서 접근했다.

그렇게 리 씨는 김 씨를 가까이 두면서 “군관학교를 가든 입당을 하든 사회대학을 가든 다 청년부 심의를 거쳐야 하는 데 내게 잘하면 그런 것쯤은 잘해줄 수 있다”는 말로 협박하는 등 약 2년간 위계에 의한 성범죄를 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최근 김 씨가 임신하게 되자 청년지도원 리 씨는 그를 데리고 외출 나가 불법 낙태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시내의 한 개인 의사 집에서 무작정 수술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후 김 씨는 근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몸이 불편해졌고, 정신적 충격에 육체적 고통까지 겹치면서 제대로 밥을 못 먹어 영양실조에도 걸리고 말았다. 이에 그는 ‘자택 영양실조 보양자’로 분류돼 고향인 보천군으로 잠시 보내졌는데 이 일로 부대 보위부의 의심을 사게 되면서 성폭행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부대 보위부 소속 보위지도원은 군단 보양소에서 치료를 받는 대대 내 다른 영양실조 환자들과 달리 유독 김 씨만 자택 보양자로 고향에 보내진 것 그리고 청년지도원 리 씨가 인솔군관이 돼 직접 김 씨를 집까지 데려다준 것에 수상함을 느끼고 김 씨 주변 여군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알 리 없던 청년지도원 리 씨는 후에 김 씨가 부대로 복귀하자 도착한 당일 바로 그를 사무실로 불러내 또다시 성폭행을 가했다. 그러나 이를 노리고 있던 보위지도원이 사무실 문을 뜯고 들어오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다만 이 사건을 보고 받은 군단 정치부는 되레 “남자가 한창때 실수할 수 있다” “전신전화소는 혼성대대라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면서 성폭행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인 김 씨에게 제대 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8군단 정치부는 부대 내 혼성 구분대들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군기 문란 요소를 도려내기 위한 보호차원이라며 감정제대(의가사제대)를 결정했다”며 “김 씨는 억울했지만 ‘군인이니 참고 견뎌라’ ‘생활제대(불명예제대)도 아니고 감정제대로 처리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대열과의 조치에 반항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반면 가해자 리 씨는 비교적 가벼운 강등 및 조동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내에서 강등 처벌은 통상 무기나 군민의 재산을 훼손하거나 혁명동지(전우)에게 가해를 입힌 경우에 내려진다.

특히 이번 사건이 발생한 부대 내 일부 남성 군관들은 “여성 하전사가 무조건 복종정신을 발휘했으니 높이 사야 하는 것 아니냐” “세상에 1대 1 강간은 없다” “여자도 동조했으니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막말을 내뱉어 여군들의 울분을 자아냈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이 일이 있고 나서 동료 여성 하전사들은 김 씨가 평생 제정신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반응을 보였고, 남성 군관들에게 당하고 제대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 여성 군인들의 현실이라며 개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