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권력 서열 2위인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가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9월 방중 한 달 만에 성사된 이번 리 총리의 방북은 북중관계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정치·안보·기술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북한 관리’를 제도화하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북중관계의 구조적 전환
한때 소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냉기류를 형성했던 양국은 김정은 방중 이후 경제·무역 채널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년 넘게 개통이 미뤄졌던 신압록강대교의 북측 세관·출입국 복합건물 공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있다. 양측은 통관 절차 간소화 협의에 착수했고, 리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정식 개통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북중 간 인적·물적 교류의 ‘물리적 봉쇄선’이 풀리는 첫 신호다.
올해 초 양국은 랴오닝성 선양에서 ‘신의주–단둥 경제특구’ 설립도 논의했다. 중국은 인프라와 자본을 제공하고, 북한은 토지와 노동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중국의 ‘동북 진흥 전략’과 북한의 ‘경제 자력화’가 맞물린 결과로, 양국은 접경지대를 실험무대로 삼아 ‘제재 속의 합법적 경제 협력’ 모델을 구축하려는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김 위원장의 방중 직후 북한 시장의 위안화 환율이 급락(6500 → 4000원대)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중국발 투자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북한 무역기관들은 중국 지방정부나 기업들로부터 합작·투자 제안서를 팩스 형태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평양과 신의주 일대 무역회사들 사이에서는 “중국 자본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투자 금액이나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심리적 안정 효과만으로도 북한 환율에 영향이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동자 파견 재개와 제재 회피 구조 공고화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호 위반 사안이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에서 중국 내 북한 노동자 수가 3~5배 이상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랴오닝성 단둥과 동강 소재 수산물 가공공장에 신규 인력이 파견됐고 향후 봉제, 포장, 단순 제조업 분야에도 북한 노동 인력 확충이 예상된다.
북한은 노동자 파견 전 충성심·성분·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인원을 선발하고, 휴대전화 통제와 사상 학습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지방 차원의 자율적 고용’으로 포장하며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력 교류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외화벌이의 제도적 복원이며, 중국 입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통해 산업 비용을 절감하는 상호 이익형 제재 회피 모델이다.
양국 협력의 또 다른 축은 ‘공급망’(Supply Chain) 세탁이다. 북한 노동력이 투입된 수산물·섬유·가공품이 중국산(혹은 한국산) 라벨로 세계 시장에 유통되고, 일부는 베트남·태국 등을 거쳐 한국·일본·미국 등으로 재수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제재 회피이지만, 동시에 동북아 공급망 구조의 재편을 의미한다. 북한은 자국 내 생산 대신 중국 내 하청 노동력을 제공하며 외화를 확보하고, 중국은 북한산 자원을 자국 경제권으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통합을 진전시키고 있다.
관광·교육·군사로의 확장…’운명공동체’의 실체화
리 총리의 방북 이후 주목할 부분은 경제를 넘어선 협력 의제들이다. 김 위원장은 방중 당시 중국 관광객의 북한 방문 확대를 요청했으며, 군사과학·정보통신·공업·의학 등 분야에서 교류 및 유학 프로그램 확대를 제안했다고 한다. 또한 양국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전자전·위성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실무급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는 북중관계가 단순 경제협력을 넘어 전략기술 협력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북중은 ‘운명공동체’를 선언적 구호가 아닌 제도적 틀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미 실무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프로젝트들이 가동 중이다.
- 위안화 결제 확대 : 북중 무역에서 달러 의존도를 축소
- 공동 투자펀드 조성 : 중국 지방정부·기업 자본 + 북한 노동력·토지
- 전용 통관 시스템 : 제3국 감시 회피용 통합 물류망
- 자원-에너지 맞교환 체계 : 중국 원유·가스 ↔ 북한 석탄·광물
이는 국제 제재망 밖에서 작동할 수 있는 ‘비공식 협력’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면밀히 추적해야 할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적 함의 및 과제
리 총리의 방북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북중관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이자, 향후 러시아까지 포함된 ‘북·중·러 3자 협력 구도’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단기적으로는 신압록강대교 개통과 경제특구 착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장기적으로는 북중 간 경제·군사·금융 네트워크의 통합이 제재 체제의 구조적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외화를, 중국은 전략적 영향력을 얻는 ‘상호 필요의 결합’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리 총리의 이번 방북은 북중관계가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다. 북한은 중국을 통해 제재 체제를 우회하고 체제 안정을 강화하며, 중국은 북한을 통해 동북아 공급망과 안보 지형을 재편하려 한다. 양국이 구축하려는 ‘운명공동체’는 과거 이념동맹이 아닌, 경제·기술·안보를 결합한 21세기형 현실동맹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양국의 협력이 국제 제재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은 이제 전통적 군사 대치보다 훨씬 복잡한 전략적 구도로 접어들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단순한 북중 밀착 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형의 구조적 변화로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동영상 재생 기기의 북한 내 유포를 중심으로 ‘문화 폭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신압록강대교 개통 관련 움직임 활발…북중 세관 시설 정비 중
고공행진하던 北 환율 ‘뚝’…김정은 방중 이후 무슨 일이?
평양과학기술대 학생들 중국 유학길 열리나…분위기 들떠
[이상용 칼럼] 소프트파워에 집중하는 中의 新대북 전략







![[북한읽기] 평성중등학원 원아 3명 사망…무엇이 문제인가](https://www.dailynk.com/wp-content/uploads/2025/11/20250109_hya_평성중등학원-100x7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