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칼럼] 김주애의 표정에서 읽는 ‘후계자 수업’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월 15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국해방 81돐(주년)에 즈음하여 8월 14일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찾으시였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 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주애’로 알려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이 “사실상 후계자 내정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국영매체가 최근 주애를 노출하는 방식과 빈도를 보면 필자 역시 그가 후계자로 낙점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주애가 올라야 할 계단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월 14일 ‘조국해방 81주년’을 맞아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을 찾았다. 항일빨치산 투쟁 시기부터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들이 묻힌 곳이다. 참석한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 어두운색 정장 차림이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연분홍색 정장을 입은 주애와 흰색 재킷 차림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무부장이었다.

필자가 아는 재일조선인은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도 “아무리 그래도 상식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 부모인 김정은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이 장면에 대해 “로열패밀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당 배지를 달지 않아도 되고 복장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며 “현 단계에서는 주애를 김정은의 후계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필자는 주애가 등장한 두 영상에서 더욱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했다. 바로 주애의 서로 다른 표정이다. 하나는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 즉 한국전쟁 정전 73주년을 기념해 열린 공연이었다. 북한군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등 정치색이 매우 강한 공연이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전쟁 경험 세대와 젊은 세대는 눈물을 흘리고 국기를 흔들었다. 김정은도 몇 차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필자는 조선중앙TV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봤다. 그런데 김정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주애는 공연 내내 거의 무표정했다.

반면 8월 16일 ‘조국해방 81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립교예단 공연에서 주애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연신 웃음을 보였고, 김정은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줄타기와 곡예를 보면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9월 6일 원산항에서 열린 신형 구축함 ‘강건호’ 취역식에서도 비슷했다. 주애는 구축함과 바다를 바라보며 비교적 밝고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필자는 이 두 모습 모두 아직 어린 주애에게서 나온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은 주애를 2013년생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주애에게 70여 년 전에 벌어진 전쟁에 감정을 이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 수 있다. 아마 전승절 공연장에 있던 상당수 젊은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이 같은 정치행사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주민들의 결속과 충성을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선전의 성격이 강하다. 박수와 환호, 때로는 눈물까지도 정치적 충성심을 보여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일반 주민이나 간부라면 이런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과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태도를 의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연장에서 거의 혼자 무표정했던 주애의 모습은 오히려 그가 김씨 일가의 특별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애가 정말 후계자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란코프 교수는 필자에게 “솔직한 사람은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애 역시 앞으로 지도자로서 어떤 표정을 보여야 하는지 배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눈물도 흘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표정은 개인의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김정은이 공개석상에서 흘리는 눈물 역시 실제 개인적 감정일 수 있다. 동시에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정이 깊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정치적 효과도 낳는다.

필자는 2018년 5월 김정은이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했지만 경제개혁이 뜻대로 되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당 간부 교육용 영상에 등장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다음 달 필자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비난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 김정은이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더욱 자주 등장했다는 점이다.

주애도 언젠가는 이런 정치적 표정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다.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울며,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지도자의 얼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것 역시 최고 권력자로 올라가기 위한 하나의 계단일 것이다.

최근 개정된 노동당 규약도 흥미롭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따르면 노동당 입당 가능 연령이 기존 18세에서 20세로 높아졌다. 그렇다면 주애가 당원이 될 수 있는 시점 역시 이전보다 늦어진다. 물론 입당 연령 조정만으로 김정은의 후계 구상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정은이 주애에게 당적이나 공식 직위를 서둘러 부여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쳐 후계자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은 가능하다. 김정은 스스로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이처럼 강력한 통제와 세습을 바탕으로 한 북한 체제가 과연 주애의 시대까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은 과거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를 설명하면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절대권력을 누리던 차우셰스쿠가 연설하는 도중 군중 속 누군가가 그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외쳤고, 그 순간 사람들이 더 이상 독재자를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독재체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두려움을 잃는 순간 상황은 급변할 수도 있다. 김정은과 김여정, 그리고 후계자로 길러지고 있는 주애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도 바로 그런 때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간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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