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평양에서 개최했다. 북한이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 이른바 전승절로 부르는 날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부인 리설주, 국제사회에서 ‘김주애’로 알려진 딸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김정은 일가는 전날인 26일에도 평양의 대성산혁명열사릉과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를 방문했다. 김주애가 전승절 관련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주애를 주요 정치 행사에 잇따라 등장시키는 것은 권력 승계와 관련된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김주애를 공식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아니다. 이름과 나이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13세 안팎으로 추정될 뿐이다.
행사에서 김주애는 검은색 치마 정장과 굽이 높은 구두를 착용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 계단을 내려올 때는 난간을 붙잡는 모습도 보였다.
김주애는 행사 내내 김정은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섰다. 공연 중에는 한 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다른 손만 작게 위아래로 움직여 박수했다. 주변 참석자들이 두 손을 얼굴 높이까지 들고 힘차게 박수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 탈북민은 필자에게 김주애의 박수 방식에 대해 “일반 주민이 저렇게 행동한다면 충성심을 의심받을 수 있다”면서 “지도자급 인물의 위상을 드러내는 동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열사릉에서 묵념할 때도 김정은과 김주애는 고개만 숙였지만, 다른 참석자들은 상체를 깊이 굽혔다. 김주애가 행사 하나하나에서 최고지도자 가족의 위상에 맞는 몸짓을 익히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김주애를 한국전쟁 관련 행사에 참석시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읽힌다.
첫째는 김정은 일가가 항일 빨치산과 한국전쟁 세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항일 빨치산과 전쟁 공로자들은 북한 체제를 떠받쳐 온 역사적·정치적 기반이다.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 후손을 비롯한 당·정·군 엘리트층에 김씨 일가가 혁명 전통을 계속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다.
둘째는 젊은 세대의 사상 이완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문화가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체제를 위협하는 ‘문화적 침투’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의 기억을 이용해 젊은 세대의 애국심과 대미 적개심을 고취하려 한다.
이번 전승절을 앞두고 북한은 전쟁노병과 전시공로자들을 평양에 초대했다. 각 지역에서도 노병과 청년학생들이 만나는 상봉모임이 열렸다. 노병들은 전쟁 경험을 들려줬고, 북한 당국은 이를 통해 젊은 세대를 김정은 중심으로 결속시키려 했다.
북한이 청년세대의 사상교육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이른바 ‘장마당 세대’의 성장이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태어나거나 성장한 이들은 국가의 배급보다 시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 시장에서 돈을 벌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데 익숙하며, 이념보다 개인의 생활과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휴대전화와 각종 디지털 기기 사용에도 비교적 익숙하고 외부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정성껏 준비한 전승절 선전은 김주애에게도 깊은 감동을 줬을까.
조선중앙TV가 28일 방송한 기념공연 영상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과 영상에 맞춰 국기를 흔들고 박수를 쳤다. 김정은도 무대를 바라보다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김정은 옆에 앉은 김주애는 영상에 잡힌 대부분의 순간에 담담하거나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김주애는 다른 현지 시찰에서도 참석자들과 악수는 하지만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다. 물론 그의 표정만으로 북한 젊은 세대 전체의 생각을 단정할 수는 없다. 최고지도자의 딸과 일반 북한 청소년의 성장 환경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당국이 만들어 낸 감동과 충성의 무대에서조차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주애의 무표정이 두드러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선전이 요구하는 감정과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탈북민은 필자에게 “학생 시절 7·27이 다가오면 군 입대 지원서를 쓰라는 요구를 받았다”면서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지만 거절하면 충성심을 의심받을 수 있어 모두 기꺼이 지원하는 척했다”고 회상했다.
김주애의 무표정이 북한 청년세대의 체제 이탈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행동뿐 아니라 감정까지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이 전승세대의 기억을 반복해서 불러내는 이유도, 어쩌면 그 기억만으로는 더 이상 젊은 세대의 마음을 붙잡기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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