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제9차 당대회를 계기로 조선노동당 규약을 다시 손봤다. 전체 60개 조항 가운데 20개 조항이 수정됐고, 특히 당중앙과 총비서의 권한, 조직 운영과 규율 체계를 보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올해 3월 헌법 개정까지 함께 놓고 보면 방향은 더욱 선명하다. 헌법이 ‘김정은 시대 2.0’의 국가 운영 설계도라면, 이번 당규약은 그 설계도를 실제 현장에서 작동시키기 위한 집행 매뉴얼에 가깝다.
먼저 김정은의 권력은 한층 더 제도화됐다. 총비서에게 정치국회의 소집과 사회, 중요 간부 임면, 당원 입·출당, 당조직과 부서 해산 등의 권한이 구체적으로 부여됐다. 선대 지도자의 업적과 상징을 강조하는 표현은 줄이고 ‘수반 중심’과 5대 당 건설 노선을 앞세웠다. 김일성·김정일의 역사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체제 운영의 중심축을 김정은 자신의 정책과 조직관리 능력으로 옮겨가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이번 개정을 단순히 ‘김정은 권력 강화’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당이 집행과 검열, 책임 추궁을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규정했느냐는 점이다.
데일리NK는 최근 중앙당 조직지도부가 평안남도 당위원회를 검열하면서 생산 실적 부풀리기와 계획 달성률 조작, 사상사업 성과 과장 등을 집중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자재와 생산 조건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높은 계획 수행률이 요구되다 보니 지방에서는 실적을 과장해 보고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서상으로는 중앙의 정책이 완벽하게 집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9차 당대회 후 고강도 문건 검열…“서류 한 장 잘못 올리면 끝”)
이번 당규약에서 정치국·비서국·검사위원회의 역할과 회의 주기를 정례화하고,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당조직을 해산하거나 심지어 ‘재구성 책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당중앙의 결정이 지방당을 거쳐 당세포와 생산 현장까지 정확하게 내려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실패할 경우 조직 자체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당세포 역시 당원과 근로자를 조직동원해 정책을 관철하는 ‘직접적 전투단위’로 다시 강조되고 있다.
‘전당 강화’라는 표현의 의미도 비슷하다. 북한은 입당 연령을 18세에서 20세로 높였고, 출당자의 복귀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견책과 사업정지 등 책벌을 늘렸으며, 당원의 의무에는 ‘부정축재’를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당원을 많이 확보하는 것보다 누가 당원이 될 수 있는지, 당원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도 북한의 현실이 투영돼 있다.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간부의 권력과 돈이 결합하는 현상은 이미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법기관 간부 가족의 장사를 금지하고 적발 시 해당 간부까지 해임·철직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지만, 가족이나 동업자를 앞세운 음성적 영업이 계속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규율을 강화한다고 해서 이미 구조화된 비공식 경제와 부패가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두 국가론’ 역시 당규약의 변화가 주민들의 일상으로 어떻게 내려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규약에서는 ‘북반부·전국적 범위’, 민족자주, 민족대단결, 평화통일과 관련된 표현이 사라졌다. 더 중요한 것은 문구 삭제 이후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이 인민반 등을 통해 주민들이 여전히 ‘한민족’이나 통일에 대한 기존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관련 발언까지 보고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당의 노선 변화가 헌법과 제도를 거쳐 주민의 생각과 언어까지 관리하는 단계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생각까지 장악해서 보고하라”…‘한민족’ 인식 뿌리 뽑기 나선 北)
결국 이번 당규약 개정에서는 하나의 역설을 읽을 수 있다. 김정은 체제는 더 강한 중앙집권과 더 촘촘한 규율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반드시 체제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앙의 높은 정책 목표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집행 압박이 커지고, 현장에서는 허위 보고와 실적 부풀리기, 비공식적 회피가 발생한다. 그러면 중앙은 다시 검열과 처벌을 강화한다. 이번 규약 개정은 바로 이러한 악순환을 더 강한 당 조직으로 끊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규약’보다 ‘규약 이후’다
우리의 과제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이 어떤 조문을 새로 만들었는지만 따라가서는 ‘김정은 체제 2.0’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 규정이 실제 지방당과 공장, 시장, 학교, 인민반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어떤 비용을 부담하고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거나 회피하는지를 함께 추적해야 한다.
특히 세 가지를 꾸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앙의 검열과 조직 재편이 실제 정책 집행력을 높이는지, 아니면 간부들의 보신주의와 허위 보고를 더 키우는지 확인해야 한다. ‘부정축재’와 시장 통제가 주민 경제활동을 어디까지 위축시키는지도 봐야 한다. 무엇보다 ‘두 국가론’이 주민들의 한국 인식과 외부정보 접근을 어떻게 바꾸는지 세밀하게 기록해야 한다.
북한이 당규약을 촘촘하게 만드는 만큼, 우리는 그 규약과 주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더욱 촘촘하게 관찰해야 한다. 제도만 보면 강한 국가가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제도를 실제로 움직이는 주민들의 삶까지 들여다봐야 북한 체제의 진짜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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