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0일은 북한 체제를 움직이는 뇌·신경망 조직인 조선노동당이 설립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올해는 북한이 중요시하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유동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북한은 수뇌급 해외 축하사절단 초청하에 경축대회·열병식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들을 개최하며 성대히 기념하였다.
총평
김정은은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절에 시진핑·푸틴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올라선 데 이어 1개월여 만에 다시 중·러 서열 2위(리창 총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와 베트남·라오스 수뇌 등을 좌우에 대동하고 주석단에 오름으로써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뛰어넘는 외교력을 내외에 과시하였다.
김정은의 고양된 자신감은 언행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바, 김정은은 10월 들어 이례적으로 5회에 걸친 시리즈 연설(10.4 국방발전무장장비전시회 개막식 → 10.6 평양종합병원 준공식 → 10.8 당창건사적관 참관 → 10.9 5·1경기장 경축대회 → 10.10 김일성광장 열병식)을 통해 핵능력 고도화, 친인민적 지도자상,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 비전 등을 부각하였다.
향후 북한은 ▲중국 전승절과 이번 당 창건일을 계기로 강화된 외교적 입지와 내부 체제 결속을 기반으로 ▲국방·경제발전 5개년계획(2021~2025년)의 성공적 마무리와 ▲핵과 적대적 2 국가론에 기초한 김정은의 탈(脫)선대·독자 노선을 보다 강화해 나가면서 ▲9차 당대회(북한판 대통령 선거/2026.1월 초 김정은 4기 체제 출범 예정), 러-우 전쟁 휴전, 미국 중간선거(2026.11) 활용 전략전술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이 포인트: 3무(無)
첫째, 김주애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의 12살 어린 딸 김주애를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또 어떻게 설명할까? 2년 전 열병식에서는 주석단 김정은 바로 옆에 앉아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았었는데? 중국 전승절과는 달리 이번 당 창건일 행사는 북한이 온전히 주관했는데?
필자는 2023년 11월 김주애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직은 후계자로서 수업을 받고 있다기보다는 극장국가 북한의 최고 연출자 겸 주인공인 김정은의 리더십과 치적을 더욱 빛나게 하는 카메오(cameo), 미래세대의 아이콘(icon), 김씨 일가로의 권력승계 당연시 분위기를 만드는 인트로(intro) 역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추적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김정은 영상정치》(2025.5.8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로 개념화한 바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에 북한 당국은 “당 창건 80주년은 그 자체로만 해도 김정은 1인으로 향하는 집중조명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에 굳이 어린 딸까지 등장시키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시선이 분산되고 억측만 발생하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둘째, 한국과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나 제안이 전혀 없었다. 이는 김정은이 지난 9월 초 중국 전승절 참석(글로벌 다자외교 무대 데뷔 및 북중러 3각협력 체제 공고화)이후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40여 분간에 걸친 시정연설(9.21)을 통해 ①‘핵무력 강화 노선과 적대적 2 국가론’ 절대 불변 ②트럼프를 향한 ‘북한 핵보유국 인정 및 군축협상’ 결단 촉구 ③이재명 정부 무시·패싱 기조를 이미 확고히 천명해 놓았기 때문에 ‘북중러 3각 협력과 신무기 공개를 통한 압박과 기다림(waiting)’으로 기조를 잡았다고 평가된다.
셋째,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전혀 없었다. 이는 북한이 지난 5월 8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한 이후 5개월여째 침묵을 지키고 있어 이례적이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배경은 ▲트럼프를 굳이 자극하지 않으려는 속셈 ▲러-우 전쟁이 당면한 제1과제인 상황 ▲신형 엔진 시험과 구축함·무인기 개발에 집중할 필요성 ▲김정은의 핵·미사일 연구소와 군수공장 현지지도를 통한 과시로도 충분한 효과 거양 가능 ▲이번 당 창건 80주년 열병식 개최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향후 북한은 ①국방발전계획에 기초하여 시험발사가 필요하거나 ②미국과의 협상 줄다리기가 전개될 경우 ③그리고 9차 당대회 등 주요 계기 시 김정은 치적 부각을 위해 7차 핵실험, 신형 탄도미사일·정찰위성 발사와 같은 도발을 언제든지 속개할 수 있다.
맺음말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미사일 개발에 계속 올인하여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2023년 말에는 ‘적대적 2 국가론’을 천명하며 김일성-김정일의 78년에 걸친 민족·통일중심 노선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부자 세습 정권의 속성상 선대를 정면 비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친위 쿠데타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노선 전환이었다.
이어 2024년에는 러시아와 군사동맹 수준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 체결과 러-우 전쟁 파병이라는 전략적 결단을 통해 푸틴을 우군화(友軍化)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곤궁 국면을 일거에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 2025년 새로 출범한 한국과 미국 정부가 김정은에게 끊임없이 구애하고 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다.
급기야 지난 9월에는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푸틴과 나란히 섰다. 선대(先代)를 넘어선 건 물론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1컷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5년 만에 재개된 대집단체조 공연에는 “그동안 상당 분량을 차지하던 김일성 관련 부분이 완전히 삭제되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김정은조선 일색이었다”.(10.11 강동완 교수 페북 분석글 원용)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다”와 같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분석과 소망성 전망을 계속 내놓고 있어 문제다. 이 같은 행태는 현정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북한에 선의로 대하면 김정은이 대화에 복귀하고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될 것이다”는 대북 유화정책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인 건 마찬가지이다. 김정은이 남북한 사이 ‘평화’(교류협력) 그 자체를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제1요인(남한풍과 외부사조 확산으로 인한 북한주민 의식구조 변화)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을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거나 상대해선 안 된다. 바른 진단은 선입견이나 소망을 배제해야 하며, 바른 처방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닌 종합적인 처방이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김정은을 과소평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난 승부사 김정은의 파부침주(破釜沈舟: 밥을 지을 가마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히고 싸움에 임함) ‘배수진 전략전술’이 부지불식간에 성공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아직은 우리가 다소 여유가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핵을 손에 쥐고 푸틴·시진핑에 이어 트럼프마저 자기편에 세운 김정은이 자유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려고 하는 국면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영토규정, 한미협력, 공산당 활동 등 국가 운영의 근간에 대한 변경을 요구하는 굴욕적인 청구서가 더욱 노골적으로 날아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가 한가하게 흘러간 추억을 곱씹으며 태평성대 노래나 부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모두 하나 되어 북한 및 세계발 삼각파도를 막아낼 정신적·물리적 방파제를 튼튼히 다지며, ‘국민주권 시대’가 대한민국에서는 물론이고 북녘땅에서도 열리게끔 하는 지혜(필자는 ‘세계로 미래로 통일로’ 방안을 제시한 바 있음)를 모아 추동해 나가야 한다.
소망·이상과 원론·이론만이 가득 찬 지적 유희(知的 遊戲), 나르시스트류의 레토릭(rhetoric)은 더 이상 안 된다. 실행력 있는 디테일(detail)이 중요하다. “공격이 곧 최선의 수비다”는 축구 격언과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어르신 말씀이 오늘따라 마음속에 더 깊이 다가온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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