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바야흐로 김정은의 시대

북중정상회담
2019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캡처

김정은이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이른바 전승절(9.3) 축하와 안보국익 외교를 위해서다. 시진핑·푸틴 등 세계 각국 수뇌들과 천안문 광장 높은 망루에 처음으로 함께 선다. 내외언론은 ‘김-시-푸 3인 풀샷(full shot)’의 가치와 의미를 이야기하며 호들갑이다. 바야흐로 김정은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반성이 먼저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필자는 그간 단선적 주장을 펼쳐오던 인사(정부)들부터 생각이 난다. 김정은 남매의 말처럼 진보·보수를 가릴 필요가 없다. 낡은 고정관념, 소아적 확증편향, 현실을 도외시한 소망성 사고 등은 국제정치 특히 남북관계를 다룰 때는 가장 금기시해야 할 것들인데, 지난 시기 우리 사회의 주류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김정은은 건강이 좋지 않아 곧 사망할 것이다. 북한체제가 무너질 날이 머지않았다. 러-우 전쟁 파병은 김정은정권의 종말을 더욱 앞당길 것이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핵보유가 기정사실화 되자) 김정은을 선의로 대하고 협력하면 핵을 내려놓고 대화·협력의 장으로 나올 것이다. 경주 APEC정상회의에 김정은이 참석할 수 있다” 등등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고 있는 말들인가? 단견(短見), 교설(巧舌)이 아닐 수 없다.

정확한 진단이 바른 처방의 기본

북한문제를 비롯한 국제정치는 사실(facts)을 사실로 보는 눈과 치밀한 전략전술이 필요한데, 억지로 보지 않거나 소망의 선글라스를 쓰고 본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냉철해져야 한다. 김정은의 속셈과 향후 핵심 변수에 대해서는 지난 8월 초 정론(김정은의 ‘꽃놀이패’)의 기조가 여전히 유효하므로 여기서는 재삼 언급하지 않는다.

필자가 『김정은 대해부』 등 5권의 책 출간과 칼럼 등을 통해 제기해 온 판단과 제언은 물론 100% 해답은 아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다각도로 전개해 볼 수 있는 화두(話頭)임은 분명하다. 오늘 다시 한번 ▲김정은을 과소평가하거나 선의로만 대해서는 안 되며 ▲지금은 한반도 문제의 이중성(민족문제이자 국제 현안)을 더욱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단선적-소망적-민족적 대처가 아닌 입체적-현실적-글로벌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핵심을 적시해 본다.

북한정세 및 남북관계 핵심 가설

첫째, 김정은은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승부사다. 김정은은 어느덧 집권 15년차 지도자이다. 숙청과 공포통치, 핵개발 올인, 코로나19 전략적 대처, 러-우 전쟁 파병, 중국 전승절 다자외교 무대 첫 데뷔 등을 부정적으로나 가볍게만 봐서는 안 된다. 어느 지도자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불리하여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한 합작통일은 당분간 포기하였지만, 핵을 기반으로 한 ‘영토완정’(적화통일) 전략은 더욱 강화하고 있다.

둘째, 김정은 체제가 가까운 시일 내 급변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근거로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구조적으로 수령제 전통, 강력한 공안 통치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주민들이 빈곤에 익숙해 있는 데다가 ▲국제사회 대북제재망도 균열(북·중·러 3각 동맹 강화)이 일어나면서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의 자의적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헌법 명기·핵정책법 채택 등을 억지로 무시하고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강해지고 중·러의 암묵적 승인에 더해 트럼프의 초조함(2026.11 중간선거)까지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김정은의 ‘적대적 2국가론’은 외양적으로는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고 독립국가를 지향하는 노선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저변에 확산된 한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문화전쟁’이다. 따라서 지금은 북한이 어렵게 쌓고 있는 공든 탑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남북 교류협력에 다시 나설 이유가 전혀 없다.

다섯째, 북한 주민들은 겉으로는 당국의 ‘적대적 2국가론’ 기조하의 한류 단속 조치를 감내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외부정보를 여전히 목말라하고 있으며, 기회가 생기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비하려 할 것이다.

여섯째, 진보정부 정책 2.0이나 보수정부 정책 2.0과 같은 어느 한 진영의 시각에 기초한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진보-보수 정책의 융합만이 길이다. 그래야만 김정은도 트럼프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고, 국론을 결집할 수 있으며, 북한 주민과 가까워질 수 있다.

맺음말

필자는 실무자가 아니다. 오랜 경험을 기초로 훈수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부디 오늘 화두가 정부와 독자들에게 김정은과 북한, 한반도 주변 정세를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은 김정은이 절대 성역인 선대(민족과 통일)를 부정할 정도로 생(生)과 사(死)의 도박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노선이다. 일종의 ‘김정은식 비상계엄’이다. 한류 차단이 교육-단속으로도 안 되고, 극형을 부과하는 악법들을 연이어 제정해도 안 되자 최후로 빼어든 초강경 카드이다. 물론 다양한 전략전술적 목표가 내재되어 있지만, 핵심은 가장 크고 근본적인 골치덩어리인 외부정부에 눈을 뜬 북한주민의 눈과 입을 가리며 핵과 공포통치를 통해 김씨일가의 영구집권체제를 다져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김정은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김정은의 시대이다. 환경이 이럴진대 북한이 대한민국이라는 마약을 건드릴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는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는 김여정의 말이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라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긴 호흡을 가지고 안보와 국익창출 환경을 더욱 튼튼히 다지면서 ▲김정은과 대화를 추진하되 너무 매달리지 말고 ▲북한 주민 곁으로 다가가는 다각적인 활동을 꼭 병행해 나가야 한다. 직선 길이 막힐 때는 돌아가는 게 방법인데, 《대남 단절-북중러 3각 공조》(필요시 트럼프와 빅딜)가 당분간 김정은 정권의 핵심기조가 될 지금이 바로 그럴 때이다. “제발 김정은처럼만 당당하게 외교를 하자”는 전직 외교관의 말이 새삼 가슴에 다가온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