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의 ‘꽃놀이패’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4일 “최정예 혁명강군의 전투적 위력을 더욱 만반으로 다지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 열풍이 전군에 나래치는 속에 조선인민군 대연합부대 포병 구분대들 사이의 사격훈련 경기가 7월 23일에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포사격훈련 경기를 참관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의 입(mouth)인 여동생 김여정이 지난 7월 28일 대남·대미 담화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미국을 향한 메시지는 조금 시차를 두어 29일 아침에 공개하였는데, 차별화된 가이드라인 제시와 관심 제고를 노린 것으로 평가된다.

김여정 담화

북한의 노림수는 성공했다. 정부 및 국내외 언론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북한의 공식 반응, 한국과 마주 앉을 일 없다 선언”, “핵능력 강화·러시아 뒷배 등 유리한 전략적 환경 조성에 대한 자신감서 나와” 등 다양한 보도를 쏟아냈으며, 특히 대미담화 90분 만에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비핵화된 북한을 이루어내기 위해 김정은과 소통하는데 여전히 열려 있다”는 화답(비핵화를 여전히 강조하는 한계는 있었지만)을 이끌어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즉 ▲대한민국에게는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적대적 2국가론’ 기조하에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을 계속 거부함으로써 이재명정부 길들이기와 대주민 한류 오염 원천 차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封南’) ▲미국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비핵화 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으로 선회할 경우에만 회담 테이블로 복귀할 수 있다는 고압적 메시지를 던져 놓는(‘通美’) 고도의 전략전술적 행보로 평가된다.

필자도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하면서, 바둑의 ‘꽃놀이패’가 떠올랐다. 동 표현은 바둑 고수(高手)들이 대국의 흐름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시도할 때 던지는 절묘한 꼼수·고단수인데, “패싸움이 일어났을 때 한쪽은 패를 따내도 큰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를 보는 반면, 다른 쪽은 패를 따내면 큰 이득을 보거나 패를 내주어도 큰 손해가 없는 경우”를 뜻한다.

이번 김여정의 7.28담화는 이 같은 ‘꽃놀이패’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김정은의 현재 심리와 미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즉 푸틴과 밀월을 즐기면서 트럼프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는 김정은이 김여정의 입을 통해 어느 정도 가르마를 타면서 비싼 청구서를 내민 격(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속마음

필자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 되어 지금 김정은이 생각하고 있는 대전제를 명제화해 보면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시간은 내 편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6.3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가시적 성과 도출)를 위해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북 전단과 방송의 조건 없는 중지, 북한 개별관광 허용 등은 맛뵈기일 뿐이다. 이재명정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은 러브레터를 얘기하며 느긋해 하지만 올해만 지나면 중간선거(2026.11) 국면이다. 4년 단임 대통령으로서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지금까지는 푸틴에 올인했지만, 이재명·트럼프에게도 눈길을 조금씩 주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다양한 유화책을 내놓고 있는 지금 그리고 한·미 정상이 회동하기 전, 한미연합군사훈련(UFS)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이 최적기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당장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한류와의 전쟁이다’. 즉 적대적 2국가론을 주민들 속에 착근시키는 것이다. 섣부른 정책 전환은 선대 유훈(민족·통일)을 떨쳐내면서까지 어렵게 쌓아가고 있는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죽을 고생하며 핵을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주민들이 남한풍(한류)에 빠져 있으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MZ세대를 비롯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아예 생각지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는 정신적·물리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넷째, ‘당면 외교 과제는 대한민국도 미국도 아닌 러시아와의 전방위적 협력 강화, 중국과의 점진적 관계 복원이다’. 《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구도》하에 한·미·일 공조에 틈을 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핵·미사일 무기체계를 더욱 고도화하고 대북제재를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적절한 시기에 트럼프와 직접 담판을 짓는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노이 외교 대참사(no deal)를 잊지 말자. 대한민국의 중재자 역할은 문재인 정부로 족하다. 진보정부이든 보수정부이든 미국 앞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핵심 변수

김정은이 결심을 하는 데 고려할 핵심 변수는 ①대전략 ②구조적 환경 ③중요 계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대전략은 핵보유국 위상 확보와 적대적 2국가론을 통한 김씨일가 영구집권 기반 구축, 사회주의 강국 건설, 전 한반도 공산화 통일(‘영토완정’)이다. 남북 간 문화전쟁의 패배로 통일전선전술에 기초한 연방제 평화통일은 포기하였지만, 핵을 기반으로 한 대남적화통일 야욕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핵을 기반으로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적 목표는 헌법, 당규약, 김정은 지시 등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음으로, 구조적 환경은 《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구도》라는 지정학적 환경 변화, 특히 혈맹으로까지 발전한 러시아와의 전방위적 협력체제 강화로서 향후 러-우전쟁 휴전 시기와 방식은 북한이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탈피하면서 핵보유국 위상을 확보해 나가는 데 있어 관건적 요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 계기는 최소한 2026년 말까지는 고려하면서 계획을 수립하고 조정해 나갈 것이다. ▲올해는 광복 80주년과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10월 북한 노동당창건 80주년,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내년에는 북한의 새로운 5년(2026~2030년) 방향을 결정하는 9차 당대회가 있으며, 6월 대한민국 지방선거, 3월과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11월 미국 중간선거 등의 큰 변곡점들이 있다.

향후 행보

김정은의 대전략과 북한이 처한 구조적 환경으로 볼 때, 북한 당국이 금명간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올해는 8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경제 및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5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눈은 ▲러시아 파병 성과의 극대화, 5개년 계획의 성과적 결속, 그리고 새로운 계획 수립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당면해서는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전후로 강 대 강 압박 전술을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특히 8.15에 즈음에서는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 이재명 대통령의 8.15경축사(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관련 새로운 제안 예상) 등이 예정되어 있는데, 내용과 무관하게 북한은 무시 또는 거부 전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지금과는 다른 행마를 시작할 시기는 러-우전쟁 휴전 및 내년 9차 당대회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2026년 상반기는 대한민국 지방선거와 미국 중간선거 국면이 시작되므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김정은은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승부수를 던져 난제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절대로 과소평가하거나 소망에 기초한 억지해석·무조건적 구애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김정은에게 이용당하고, 그사이 북한 주민의 고통은 심해질 뿐이다. 지금 그의 안중에는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적대적 2국가론 안착, 푸틴과 긴밀한 공조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조급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으며 이해당사자가 많이 얽혀있는 국제문제이다. 특히 지금 북한은 2018년의 북한이 아니다. 김여정의 말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며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다. 한류와의 전면전을 수행 중이다. 평창동계올림픽과 같은 매혹적인 글로벌 이벤트도 없다.

새 정부는 제2의 눈먼 사랑꾼이나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 되며, 워싱턴과의 사전 사후 긴밀 공조를 통한 북한의 통미봉남 타개·변화 유도 등 창의적 대안을 강구해나가야 한다. 대통령실과 통일부를 중심으로 긴 호흡과 치밀한 전략전술 수립, 국론통합·국제사회와의 유기적 공조를 통한 북한 당국 및 주민들과의 전방위적인 온-오프라인 접촉(on-offline contact) 노력 확대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해법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좀 더 세부적인 내용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필자가 새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데일리NK에 연속적으로 기고한 4편의 정론 ①새정부에 바란다: 북핵 공식사죄와 초당적 안보정책(5.28) ②새정부에 바란다: 대북정책은 고차방정식이다(6.11) ③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6.23) ④통일 명제를 생각해 본다(7.15)를 일독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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