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5200만 국민의 선택이다. 이제는 모두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때다. 필자는 38년간 북한 이슈를 다뤄오면서 좌파(진보)·우파(보수)가 아닌 양파(兩派)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자칭타칭 나라와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안보국익주의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글이나 말을 통해 “대한민국이 북핵 위협과 글로벌 무한 국익경쟁의 거친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안보는 보수, 국익은 진보의 시각이 필요하다. 이분법이나 발목잡기가 아닌 융합적인 사고를 통해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전진(前進)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지론을 설파하며 실천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새 정부가 통합과 실용을 중시하는 《국민주권정부》로 이름을 짓고 남북문제와 관련 “북한 GDP의 2배에 달하는 국방비와 세계 5위 군사력에, 한미군사동맹에 기반한 강력한 억지력으로 북핵과 군사도발에 대비하되, 북한과의 소통 창구를 열고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6.4 대통령 취임선서 연설)고 표방한 점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난 5.28과 5.30에 이어 3번째로 안보·통일정책 관련 몇 가지 소견을 보태고자 한다.
김정은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가장 먼저,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의 정신을 강조하고자 한다. 불행히도 지난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을 ‘민족·소망’의 관점에서 봤다. 그래서 임기 내내 상대의 선의만 기대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윤석열 정부는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가치·원칙’의 원론적 잣대만 들이댔다. 사실상 무(無)전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김정은의 북한은 오히려 더 큰 괴물로 발전했다. 실체를 보지 못하고 허상(虛像)만 쫓은 결과이다.
필자는 김정은을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난 승부사》로 규정한다.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과대평가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야망을 벼르다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권력을 쟁취했으며, 어느덧 집권 14년 차 통치권자라는 점이다. ▲권력을 위해서는 자신의 형도, 고모부도, 측근들도 잔인하게 죽이는 폭군이자, ▲주민들 앞에서 악어의 눈물까지 보이며 어린 딸까지 정치에 활용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형 독재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다 트럼프-시진핑-푸틴-이시바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니, 그야말로 산수(算數)가 아닌 고차방정식을 푸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남북관계와 국제질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남북관계 제1 당사자는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남북관계를 넘어 동북아, 더 나아가 세계질서의 헤게모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이슈이다. 일각에서 주창해 온 ‘자주’, ‘민족’ 논리는 선명성은 있지만, 현재 지구촌 네트워크 시대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지금 우리의 국력과 국격은 예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 저 멀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우리 대통령을 회의에 초청할까?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 효과’에서 우리나라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등등을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좁은 한반도 중심의 ‘통일로 미래로’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와의 전략적인 협력을 먼저 앞세운 ‘세계로 미래로 통일로’를 강조한다.
대북정책은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
김정은의 핵 질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한반도 안정은 요원하다. ‘평화-통합-통일’의 길은 어느 한 정부, 어느 한 이념으로 달성할 수 없다. 북한의 핵 개발이 진보정부 햇볕정책의 부산물인지, 아니면 보수정부 원론적 강경정책의 탓인지를 두고 한가롭게 논쟁할 때가 아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에 입각해 진보와 보수가 머리를 맞대고 북핵 위기 해소를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석(定石)을 기초로 다양한 묘수(妙手)를 배합해야 한다. 즉 국민통합, 자주국방, 주변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튼튼한 안보태세를 구축한 가운데 북한 비핵화와 인류보편적 가치 전파에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압박(stick)과 대화(carrot)의 2트랙을 동시 활용해 나가야 한다.
남북 당국간 회담과 인도적 지원,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폐지 촉구, 외부세계 소식 전파 등 북한과 온-오프라인 접촉면을 늘려갈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한 가지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상세 내용은 2025.5.28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새 정부에 바란다: 북핵 공식사죄와 초당적 대북정책’ 참조)
지금은 북한 비핵화에 더해 핵균형론의 관점을 배합해야 할 때다
북한 비핵화는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렇지만 협상을 통한 CVID 방식의 비핵화에만 매달리고 있다가는 ‘적대적 2국가론’ 기조하에 선제 핵 사용을 위협하는 김정은에게는 물론이고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에게도 패싱 당할 수 있다.
따라서 플랜A(협상을 통한 비핵화)와 함께 플랜B(핵균형론)를 상정하고 미국 등과 주동적으로 협의해 나가야 한다. 국가 안위와 국민생명이 걸린 문제이므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북핵 위협과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 절박성은 어쩌면 우리에게 기회의 영역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상세 내용은 2025.1.24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지금은 조건부 핵무장론을 본격 주장해야 할 때’ 참조)
북녘 동포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김정은이 2023년 말 주창한 ‘적대적 2국가론’은 공식적으로는 대남 전략전술의 변화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사실상 대주민 통제용의 성격이 강하다. 즉 집권 이후 국경통제 강화·악법 3종세트 제정과 같은 강경 대처에도 불구하고 한류 확산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게 되자, 남한과의 완전 결별이라는 극단적 조치 동원 필요성까지 느낀 것(‘핵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민심이 흔들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위기감’)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당국의 통제 조치 강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흐름은 절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한류에 중독된 주민들이 당국 방침에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계속 순응할 리가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부패로 인해 단속의 사각지대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북녘 동포들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리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맺음말
한반도 평화 및 통일을 위한 장기 전략 방향은 새 정부가 밝힌 국정운영 대강과 필자의 모토(motto)인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의 대북정책 16자 원칙 속에 포괄적으로 담겨 있어 이번 글에서는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다.
글을 맺으며 새 정부에 다시 한번 당부한다. ▲김정은과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양 날개로 안보·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가면서 ▲특히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비핵화에 더해 핵균형론 관점까지 배합하여 방위력과 협상력을 함께 제고시켜 나가야 한다. 한편 ▲독재의 사슬 아래서 고통받고 있는 북녘 동포들을 한시도 잊지 말고 그들의 부름에 답(答)해야 한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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