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2023년 윤석열 정부가 한미핵협의그룹(NCG) 창설, 한미일 정상 캠프데이비드 선언 등으로 북핵 대응에 큰 성과를 내고 있을 무렵, 한반도 주변 정세와 국제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매우 현실적인 대응조치라고 의의를 평가하면서 “그렇지만 지금의 성과에 안도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의 핵 사용 의지를 근원적으로 봉쇄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미국의 정권교체로 인한 대한반도 정책 변화 등 돌출변수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해나가야 한다”는 이른바 플랜C(핵자강 정책) 물밑 협상 병행론을 제언한 바 있다.
《북핵 대응: ‘자체 핵무장’ 카드도 배제해서는 안된다》(2023.9.1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제하의 칼럼을 통해서였는데, 요지는 “플랜A(비핵화 협상)·플랜B(미국의 핵우산 제공에 의한 핵균형)는 당연히 계속 추진해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 공격 능력을 강화하며 선제 사용을 더욱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국면에서 ▲김정은에게 보내는 강력한 시그널 ▲미국 대선 이후 대한(對韓)정책 급변 가능성 ▲대한민국의 더 커질 국력과 높아질 국격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핵보유 찬성 국민 여론 ▲비상사태로 국가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자위적 차원에서의 핵보유를 허용한 NPT 제10조 1항 규정 ▲핵균형이 지금까지 확인된 최선의 핵방위책이라는 점 ▲배수진을 치는 협상에서 상대 양보를 이끌어내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2025년 1월 말 현재는 플랜C(핵자강 정책)가 물밑 논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치권 및 언론, 학계가 그동안의 수준을 넘어 여론을 모아 나가고, 정부는 이런 국민적 여론을 활용하여 정책의 큰 레버리지(leverage)로 활용해나가야 한다.
배경
김정은이 “핵무기의 기하급수적 확대”를 지시하면서 “임의의 시각에 사용할 수 있다”고 수시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핵 인질 상태에서 미국의 핵확장억제력에 기대어 버텨 나가고 있다. 지금 당장은 한미동맹이 굳건하여 별문제는 없지만 과연 이 같은 구조가 계속될 수 있을까? 한 나라의 안보를 외국에 맡겨 놓는 것이 과연 맞는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계속되어 오고 있는 물음(question)이다.
이런 상황에서 1월 20일 글로벌 가치동맹을 외치던 바이든이 퇴장하고 ‘America first’(미국제일주의)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걸고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가 제47대 대통령으로 컴백하였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지지자 2만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이든이 시행하던 행정명령을 무려 78건이나 취소하는 쇼맨십까지 보이며 ‘바이든 흔적 지우기-미국제일주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였다.
이목이 집중된 트럼프의 취임 연설은 미국이 당면한 국익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한반도 관련 메시지는 없었으나, 기자들과 문답 과정에서 취임 이후 첫 공식 메시지로 “김정은은 나를 좋아했고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고 있을 것이다”라면서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로 지칭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트럼프의 ‘북한=핵보유국’ 발언 의미와 파장
트럼프 발언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평소 트럼프의 발언 스타일을 볼 때, 우리가 사전적 의미(통상 ‘nuclear power’ 용어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같은 ‘사실상 핵보유국’을 지칭할 때 사용)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김정은에게 대화 재개 의사와 함께 북한이 주장하는 군축회담(small deal: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이나 감축)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보로 생각하고 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3차례 회담이 문재인 정부의 거추장스러운 중재자 역할 자임, 볼턴 등 측근들의 원칙론으로 인해 시간만 허비(북한 핵 능력은 더욱 증대)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은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의 발언, 대선 승리 후 대북 분야 인사 기용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위의 발언을 하면서 “난 그가(김정은이) 해안가에 엄청난 콘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언급도 같이 했는데, 2014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오는 6월에 완공 예정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 같은 추론이 실제 정책으로 나타난다면, 북핵 문제는 물론 대북정책 전반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예상 행보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 즈음하여 핵탄두 제조에 사용하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최초로 공개하고, 장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미사일체계 완성 선언’)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였다. 이어 올해 신년사 격인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는 ‘최강경 대미전략’(세부 내용 미공개)을 천명하였는데, 러-우 전쟁 파병으로 푸틴과의 공조가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트럼프와의 기싸움을 통해 향후 협상 재개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평가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북한이 ①김여정의 친러국가 벨라루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추진 사실 적극 부인(1.20) ②트럼프 취임식 사실 보도(1.22) ③트럼프 취임식 발언이후 개최된 최고인민회의(1.22~23)에 김정은이 불참하고 핵능력 고도화를 비롯한 대미-대러 현안관련 메시지를 내지 않는 등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④러-우 전쟁 휴전 시 변화된 환경에 주동적으로 대처할 필요 ⑤6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개장이 가까워오고 있는 점 ⑥2025년도 북한의 중요한 정치 일정(당 창건 80주년과 9차 당대회 준비) 등을 고려해 볼 때, 트럼프 진영과의 대화 재개를 조심스럽게 모색해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응 방향
따라서 우리 정부도 가용한 채널을 총가동, 트럼프 2기의 대북정책 로드맵을 정확히 파악하여 선제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가 정답이지만, 자칫 우리의 입장만 생각하여 사실상 물 건너간 ‘북한 비핵화’만 붙잡고 있다가는 ‘적대적 2국가론’ 기조로 이미 무시·패싱(passing) 당하고 있는 김정은에게는 물론 트럼프에게도 패싱 당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최선이지만 차선, 차차선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give&take’ 기조하에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격언도 있듯이 자체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등과 같은 카드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에 오르고 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스스로 버릴 카드가 절대 아니다. 어쩌면 트럼프의 《대중국 포위 및 대북한 관리전략》과 접점(接點)이 있을 수 있다.
지금 국내는 ‘12.3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안보 문제는 ‘조금 있다’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정치권이 아니면 민간에서라도 “북한의 핵위협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도 NPT조약 제10조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장을 검토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단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대한민국도 그에 상응하여 비핵국가로 회귀할 것이다”라는 요지의 《조건부 핵무장론》을 공론화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여론은 우리 정부가 트럼프와 대북정책은 물론 안보-통상 이슈를 협의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나름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직무 정지·구속되고 대행에 대행(최상목 경제부총리)이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문제만 해도 굉장히 버거운데 국가안보, 특히 공격적인 트럼프 2기 신행정부와 외교 임무까지 수행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트럼프와 상대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헌법재판소는 무엇보다 경제·외교의 거목 한덕수 총리 직무 정지(탄핵) 건부터 빠르게 심사하여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정파적 이익보다는 국민, 국격, 국익을 진정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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