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민간인 학살은 김일성의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해 내린 지령 “도처에서 반역자들을 처단하며….”을 포함하여 북한 내무성 정치보위부 등 국가 기관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행되며 발생하였다. 6·25 남침 직후에는 김일성 호소문 전단이 서울 시내에 뿌려져 “반동분자, 비협력분자, 도피 분자를 적발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라”는 지령이 이행되었다. 1946년 7월 31일 남한의 지식인 납북 지시도 마찬가지이다.(차동길, 2025, 「침묵의 증언」에서 발췌) 누가 직접 지시를 했고, 연루된 자들이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은 현재로선 어려운 작업이다. 돌이켜 보면 인권침해 행위는 그 사건이 실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하나하나씩 역사 속에서 규명되기 마련이었다.
위안부 문제를 알린 목소리와 존재의 입증 과정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규명과 논쟁 과정을 살펴보면 참고할 만하다. 오랫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존재와 강제성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려 했다. 공식 문서나 기록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하고 강력한 방법이었다. 침묵 속에서 사라질 뻔했던 개인의 고통이 증언을 통해 사회적, 역사적 현실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성격과 대량 학살 피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성노예’라는 역사적 사실이 부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6년 유엔(UN) 인권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군사적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로 규정하며, 일본 정부의 왜곡된 주장을 무너뜨리는 출발점을 제공하였다. 이후 일본 우익 세력의 논리는 학계에서 논리의 허구성에 대한 증명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돌이켜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부인은 일본의 ‘역사 부정주의’의 흐름 위에 놓인 하나의 물갈래였고, 우리가 민족주의나 여성주의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 빠져 본질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군포로 억류 문제를 알린 목소리
1952년 북한에 억류 중 탈출 시도를 하다 수감된 뒤 무려 43년간 강제 노동을 하다 다시 귀환에 성공한 국군포로 조창호 소위는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내며 국군포로 억류 문제의 전환기를 가져왔다. 그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미귀환 포로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또한 당시 우리에게 전사자 처리가 된 상태였다. 휴전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정부 주도의 국군 포로 구출 시도가 없었으며,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해빙기를 맞으며 이 문제는 공론화되기 어려웠다. 민간 차원에서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제2건국위원회 소속 천주교 신부 및 일부 종교계 인사들이 비밀리에 국군포로 구출을 시도하였다. 당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기조는 중국 국경까지 넘어온 이들의 귀환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국군포로 문제에서도 사회적 인식에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창호 소위의 증언은 국군포로 억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씨를 지폈고, 오랜 노력 끝에 2008년에는 ‘국군포로 송환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국군포로의 귀환을 지원하고, 귀환한 포로들의 안정적인 사회 정착을 돕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오랜 침묵 끝에 피해자의 증언이 마침내 국가적 과제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규명을 요하는 억류된 국군포로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할 주체는 북한이다. 북한의 국군포로 억류 문제는 민간인 강제 납북과 민간인 학살 행위와 더불어 전쟁범죄임과 동시에 현재 진행형의 인권침해 행위이다.
강제실종 입증 과정의 문제
한편, 국제적으로 강제실종 문제의 제기는 1960년대 이래 남미 군부 정권에서 발생했던 반체제 인사 납치 사건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된다. 불분명했던 개념이 사건의 축적을 통해 확립되고, 국제인권규범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종 사건이 현재에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적 빈 공간은 우리를 수시로 위험에 빠트린다.
납치나 억류자들의 생사 확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선교사나 기자였던 이들이 반체제 인사로 분류된 경우라면 북한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 범죄이자 가장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정치범수용소행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경우 수용자에 대해 영구 억류와 가족 및 지인으로부터의 통신 및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탓에 구제책이 부재하다. 이들에 대한 수용소 생활 및 처우에서 더욱 가혹할 것으로 보인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납치와 억류 문제, 그리고 정치범수용소행은 북한 내에서 자국민뿐만 아니라, 중국 등 해외에서 발생하는 초국가적 범죄로서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실존하는 존재가 우리 곁에 있다 하더라도 이렇듯 현상을 타파하는 해결이 요원한데, 북한 내부의 강제 실종 문제의 경우 해결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선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계기, 심각성의 정도와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 가해자의 논리적 모순을 깨는 사회적 토론, 우리가 가진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여 문제를 공식적으로 바르게 명명하는 지난한 과정이 요구된다.
정부의 태도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의제로 올리고 북한의 부인 및 은폐 사실에 대한 문제 제기 등 응당 해야 할 기본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때다. 가해 행위를 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더 이상 북한 체제의 반인도범죄 행위를 묵과하지 말 것이며, 존재하는 바를 존재한다고 정부 차원에서 말하는 행위가 가진 파급력, 대외 인식 제고, 문제 해결의 기회 마련 등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대상은 정보 통제에 바쁜 북한 당국이 아닌, 북한 주민들이다.
남은 것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소화하는 태도이다. 적대 세력에 의해 맞춰 싸웠던 민간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제대로 된 처우를 제공하고, 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해결하며, 납북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입장을 변화시켜야 하는 몫은 이제 증언자의 목소리, 시민사회에 의한 입증이 아닌 국가에게 있다.
한국 정부는 ‘강제 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All Persons from Enforced Disappearance) 당사국이다. 강제실종방지협약은 유엔의 9대 핵심 인권 규약 중 하나다. 강제 실종 범죄를 방지하고 처벌하며,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은 제3차 유엔 보편적 정례인권검토(2017년 11월) 심의에서 강제실종방지협약 비준 및 가입 권고를 받아 2018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수용 의견을 표명한 후, 관계부처 및 전문가들과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쳤다. 이후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 이행입법안 마련 과정에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초기 협약 채택 당시의 태도와 달리, 본 사안에 대해 미적지근한 입장을 취해왔다. 국내적으로 형제복지원 피해 사건과 같은 대표적 사례가 해결되지 못했음에도, 국가 기관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권침해에 대해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8월 30일 강제실종의 날을 앞두고 피해 당사자와 가족, 시민단체들이 한목소리를 내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북한 강제실종 피해자 가족들, 이재명 정부에 해결책 마련 촉구) 주장의 골자는 ▲대통령 직속 납북자 송환 전담 부서 설치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 산하에 ‘국군포로·납북·강제억류 국민 송환 전담 대책 부서’ 설치 ▲관련 해결책을 모색하는 ‘남북인권대화’ 정례화 등이다. 한국 정부가 국제법과 헌법에 근거하여 이행해야 할 정책적·법적 책무를 상기시키는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대북 정책에 전환기를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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