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발표한 담화(7·28)는 단순한 비난을 넘어, 북한이 대남 전략 전반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사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말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못 박은 이후, 북한의 전략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일단 대남 방송 중단은 화해의 신호가 아니라 전략적 침묵이었고, 기존의 노후화된 심리전을 효과 중심으로 재편하는 포석이었다.
정찰총국으로 주체가 이동한 심리전은 ‘민족 동질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청년층의 통일 무관심과 민족 개념 해체를 역이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적연구원(전 조국통일연구원)은 ‘이제 통일도, 민족도 없다’는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전략화하고 있으며, 교양자료나 선전물에서도 ‘생물학적 외국인’, ‘문화적 이질성’이라는 표현을 구사하려고 하는 등 ‘영구분단론’을 확산시키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는 단순한 선전 전략의 변화가 아닐 것이다. 북한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통일은 불편을 낳는다”는 메시지를 퍼뜨리고, 남북이 서로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인식을 한국 사회 내에 내재화하려 하고 있다. 즉, 대남 심리전의 목표는 이제 한국 내부에서 ‘분단을 당연시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고착화하는 데 있다.
이처럼 북한은 내년 예정된 9차 당대회를 계기로 심리전 조직 개편과 전략 정비에 나설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통일 무관심과 민족 개념의 해체는 새로운 공세 전략의 논리적 근거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민족’ 없는 심리전, ‘통일’이 없는 대남 전략은 김정은 시대의 대한(對韓) 노선을 규정짓는 상징적 변화다.
북한의 전략은 전면 대결을 준비하면서도, 제한적 해빙의 문도 열어두는 ‘이중전략’이다. 특히 군사 부문에서 그 움직임이 감지된다. 북한은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의 복원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를 향후 남북관계 개선 여부의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북한은 여전히 ‘강 대 강’, ‘핵에는 핵, 전면전에는 전면전’ 원칙을 고수한다. 그러면서도 군사적 긴장 완화가 안정과 자원 재배치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 아래, 한국의 새 정부가 ‘새로운 군사 조항’을 추가해 합의 복원을 시도한다면 ‘성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도 보이고 있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 국경 충돌을 피하면서 그 자원을 첨단무기 개발과 경제 발전에 전환 투입하겠다는 의지로, 즉 ‘비전투적 자위 전략’을 통해 내부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계산된 포석이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는 북한이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더 이상 민족 공조의 장(場)이 아니라 김정은식 국제 개발구와 관광지구로 전환될 예정이며, 과거와 같은 형태의 남북경협은 현실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다만 북한은 ‘간접적이고 제한적인 경제협력’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이는 대체로 ‘기업 대 기업’, ‘단체 대 단체’ 형식의 계약 형태를 의미하며, 남북 간 감정적 구호나 통일 프레임이 전면에 나서는 방식은 배제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민간교류는 더욱 경직될 전망이다.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비정치적 교류조차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간주하고, 외부 유입 통로로 철저히 검열할 계획이다. 이는 2020년 이후 도입된 ‘3대 악법’(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의 연장선이며, 외부 문화 차단에 대한 기존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흐름이다.
종합적으로 북한은 이재명 정부의 유화적 행보를 아직까지는 ‘형식적 제스처’로 치부하며 경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이 미국·일본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할 경우, 북한은 이를 ‘신군사파쑈동맹’으로 규정하고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이미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확대, 전술핵 실전 배치 등을 염두에 두고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의 과제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국제사회의 공동 과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위협이나 수사적 공세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북한의 전략 변화에 따른 장기적인 전선 재편을 인정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이 같은 북한의 전략이 내부의 치밀한 분석과 데이터에 기반한 전환적 대응에 가깝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과 국제사회는 다음의 과제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이 청년층의 통일 무관심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한국 사회는 통일의 의미를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재정의하고,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영구 분단’을 기정사실로 하려는 북한의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둘째, 북한의 심리전은 점점 더 정밀화되고 있으므로, 우리도 정책·기술·문화 콘텐츠를 융합한 입체적 대응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일단 북한발 심리전 감지와 조기 대응을 위한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북한의 심리전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통일부·방송통신위원회·민간기관 간 협력 플랫폼을 활성화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심리전 의도를 국민에게 사실 기반으로 설명하고 공개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이 심리전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심리전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단순한 반박을 넘어서 ‘역공’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북한 주민, 그중에서도 청년층을 대상으로 공감형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당국의 검열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과 맞춤형 콘텐츠 개발을 통해 일방적인 체제 비난이 아닌,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내부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최신 유행, 어학, 자녀 교육 등 북한 청년의 관심사를 반영한 생활 밀착형 정보 제공을 통해 자연스러운 관심 유도와 신뢰 형성, 궁극적으로는 체제 인식 변화로 연결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처럼 대응과 역공을 병행하는 입체적 전략이 심리전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력을 키울 수 있다.
셋째, 북한의 전략 변화는 단순한 남북문제를 넘어 동북아 안보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이에 따라 유엔, 한미동맹, 인도·태평양 등 다양한 외교 채널을 활용해 북한의 ‘분단 고착 전략’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김여정의 담화는 북한이 더 이상 민족이라는 정서적 유대를 대한 전략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심리전과 정보전을 무기로 한 장기적인 분단 유지 전략의 본격화를 의미한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분단의 고착을 당연한 전제로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실마리를 모색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방식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시대와 세대의 감각에 맞는 통일과 평화 전략의 재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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