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16 COI 10주년, 부작위 상태?

/그래픽=데일리NK

COI 리포트를 되새기며

피해자 정의에 입각한 과거청산 혹은 이행기 정의는 꿈일까. 북한의 가해자에 대한 책임 규명 필요성은 2013년 북한 COI 설립(UN Doc. A/HRC/RES/22/13 (9 April 2013), para. 4.)과 2014년 COI 보고서에 명시된 바대로 불문의 여지가 없다. COI 리포트는 조사 활동의 시간적 범위를 북한 당국이 존재한 어느 특정 기간만을 국한하지 않았으며, 지역적으로도 북한 내부에 한정 짓지 않고, 북한 당국이 다른 국가에서 자행한 ‘납치’와 같은 관할권 밖 사건도 포함하고 있다.

조사위원회는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직접 증언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충분히 신빙성 있는 자료를 모으고 검토하였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통상적 수준의 사리 분별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당 범죄의 행위가 발생했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합리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가히, 북한 당국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며, 의도성이 명백하고, 조직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기반한다. 조사위원회는 당시 사법기구도, 검찰 기관도 아니기에, 개인의 형사 책임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순 없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 사건이 국내 및 국제 사법 기관이 범죄 수사에 착수할 수 있을 만큼의 반인도범죄가 저질러진 ‘합리적 근거를 구성하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었다. (A/HRC/25/CRP.1의 V번 참조.)

이러한 판단은 모니터링에서 책임규명으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또한 북한에 대한 더욱 강도 높은 인권 제재로 이어지는 동력을 낳았다. 이렇듯 역사의 선상에서 우리가 구성한 ‘한 페이지’는 일정한 수준의 결과로 이어진다. 비록 그것이 우리가 염원하는 바로 그 결과로 이어지긴 힘들지라도, 그것은 유의미하다. 그리고 북한 주민이 처한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고 그것이 유의미하다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북한 내부도 변화한다

민간 연구소의 한 세미나에서 제시된 북한 내부 입수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시기 당 조직을 통해 내부적으로 배포된 연설에는 ‘성, 중앙기관 일군들 속에서 당 정책에 대하여 흐지부지하고 시비질을 한다’든지, ‘보다 심중한 문제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도덕관념이 심히 흐트러졌다’는 등의 김정은 연설이 담겨 있다. 북한의 현재는 높아진 자유권 부문의 법령 제정을 봐도 알 수 있듯 위태롭다.

체제 유지의 중핵인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북한 체제의 근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간부들은 ‘조직적 통제도 이제는 그냥 형식이 되고 말았고, 그렇게 된 지 오래’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 보위 핵심층의 불안정성은 사회 전반의 동요로 이어지기 쉽다.

한편, 북한 주민들 속 자본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일정한 형태의 저항을 시도하게 만든다는 증언도 발견된다. 시장 자릿세라든지, 판매 물품 몰수 등의 통제 조치에 대항하기 위해 주민들이 우발적인 것은 물론,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모양새를 띈다고 한다. 국가 달성 과제를 위해 기관원이 주민들에 돈을 빌리고, 이 대금을 받지 못한 주민들이 ‘악이 나서’ 법기관원들에 칼부림을 한다는 증언(2023년 황해도 출신 탈출자 김 씨 증언)은 ‘자본’이 낳은 ‘저항’의 공간을 짐작하게 한다. 법일꾼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과 증오는 너무나 커서, ‘북북 갈등’이 심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게 한다. 부패한 법일꾼이나, 체제 보위를 위해 악용되는 법, 행정·사법 기관에 대한 민중의 심판은 지금이든, 먼 훗날이든 이행될 당위적 결과이다.

부작위의 공간

형법상 ‘부작위(不作爲)’란 것은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북한은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주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알고도 방치하고 시장 통제 행위로 생존권을 위협한다. 아울러, 구금시설 관리자나 조사 기관원의 인권 가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가하지 않고 이를 묵인하는 ‘부작위 상태’에 놓여있다. 불행하게도 북한 내부에서는 사법적 구제 조치도 미비하며, 저항으로 인해 돌아올 직접적 후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COI 리포트는 국제형사법하에서 지도부와 상급자 책임 원칙에 따라 북한의 최고지도자에게 반인도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나아가 재판에 회부할 것을 촉구하였다. 당시 적시된 기관은 북한 최고지도자와 더불어 당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조선노동당 핵심 부서, 현 국무위원회(당시 국방위원회), 국가보위성(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사회안전성(당시 인민보안부), 조선인민군, 검찰, 사법부, 당 관료를 망라한다. 이들의 외관과 내용은 변하지 않은채 유지되고 있다.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무엇인가. 2022년 독일 법원에서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만행에 협력한 이름가르트 푸르히너(Irmgard Fruchner)가 유대인 학살을 방관한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녀의 나이 97세였다. 독일 정부는 80년이 흐른 지금도, 엄격한 잣대로 죄를 묻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는 어떤 사실을 규명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가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는 더욱 가열차게 불을 지필 때이다.

청산은 돌아오는 부메랑이다

COI 1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 정부는 최소한 일정한 메시지를 발신하며 북한 문제에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특히, 국군포로와 납북억류자(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를 기억하는 통일부 켐페인) 문제에 있어 ‘우리의 문제’로 치환하는 노력과 의지가 국가 차원에서 선행되는 점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청산’의 과업은 시간이 흘러도 그 사회의 책무로 되돌아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COI에 국군포로 문제가 적시 되었음에도, 2023년 3월 23일이 되어서야 유엔 인권이사회는 처음으로 국군포로의 인권 문제를 적시하였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 지난 2020년 국내 시민단체들이 진상조사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내고, 유엔인권이사회(UNHRC)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이 실종 국군포로 관련 북한에 질의서를 발송한 바도 있다. 11월 예정된 북한 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는 우리의 책무를 이행하는 기회이자, 북한으로부터 답변을 끌어내어 먼 미래의 과업을 선결하는 또 다른 ‘한 페이지’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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