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인터뷰] “무역도 우리식으로 하라고? 답답한 소리!”

[신년기획-北 주민에 새해 소망을 묻다⑤] 계속되는 무역 통제에 한숨…"현장을 믿어주면 좋겠다"

[편집자 주]
3년여 간의 코로나 국경 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꽁꽁 닫혀있던 국경이 서서히 열리고 인적·물적 왕래도 이뤄지고 있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경기 회복 속도는 느리기만 합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어김없이 농업 생산량 증대, 국방력 강화를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회복기를 맞은 지금, 북한 주민들이 가장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일리NK는 2024년 새해를 맞아 다양한 북한 주민 인터뷰를 연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지난해 11월 화물트럭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압록강철교(중조우의교)를 통해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로 향하는 모습. /사진=데일리NK

북한 경제가 코로나19 이후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공개한 ‘2023 북한의 주요통계지표’에 따르면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6조 2000억원으로 전년(35조9000억원)보다 늘었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 GDP 성장률은 -0.2%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4.5%, 2021년 -0.1%, 2022년 -0.2%로 3년째 하향세다.

북한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에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역이다. 2020년 1월 북한 당국은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해외로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했다. 수시로 해외에 있는 대방(무역업자)들과 통화하며 물건을 수입·수출하는 무역일꾼들은 선금을 치러놓고 물건을 못 받거나 수출품을 보냈는데 대금을 못 받는 등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기도 했다.

최근 데일리NK와 인터뷰한 국방성 산하 대형 무역회사 간부 A씨는 “하루아침에 목숨이 완전히 끊긴 것 같은 심정이었다”며 국경봉쇄 당시를 회고했다. 무역일꾼 개인이 국경봉쇄로 인해 발생한 미수금을 떠안으면서 상당수가 완전 파산하기도 했고, 실제 A씨의 동료 몇몇은 코로나 시기에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단다.

사실 지난해 북한 당국이 예년보다 무역량을 확대하면서 무역일꾼들은 수출입 통제 조치가 다소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당국은 코로나를 명목으로 부활시킨 국가유일무역제도를 내부 통제에 활용하는 모양새다. A씨는 최근에도 수시로 하달되는 무역 통제 지침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말한다.

아래는 A씨와의 일문일답

-새해를 맞아 대외경제성에서 내려온 무역 정책이나 지침이 있나?

“1.15 지시가 내려왔다. 우리식 무역제일주의로 나가야 하고 외국 대방들에게도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라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방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반동사상에 물젖은 대방과 물품을 가려보라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와 오랜 기간 함께 할 수 있는 대방이라면 혁명 대오에 설 수 있게 해서 웬만한 빚이 있어도 당장 필요한 물품들은 외상이나 그냥(무료로) 줄 수 있을 정도의 사상적 동지로 만들라는 것이다. 무역하는 해외 대방이 조선 공민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식 방침을 이해시키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무역하고 돈 벌면서 당 선전일꾼까지 되라는 말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특히 남조선(남한)과 결탁돼 있는 외국 기업, 기관, 대방들을 가려보고 이들을 구분해서 적들이 무역 부문에 발붙일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무역까지 우리식 사상으로 하라고 하니 일이 잘되겠나.”

-지난해 연말 무역기관 대상으로 총화하면서 새롭게 와크(무역허가권)을 발급했다고 하는데, 수출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와크 대상자도 확대됐나?

“그렇지 않다. 국가 소속 무역회사들, 이전에도 와크를 가지고 활동하던 기관이나 사람들에게 재발급하는 수준이었다. 와크를 재발급하는데도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굉장히 많았고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코로나 이전에는 와크를 발급 받을 때 증명서나 제출 문건이 10장 이내였는데 이번에는 20장 넘게 제출했다. 게다가 제일 어려운 건 중국에 있는 대방이 어떤 사람인지까지 증명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은 지방의 작은 무역회사라도 국가가 모든 걸 상관질한다. 규칙과 절차가 너무 많아서 무역 한 번 하는 게 너무 힘들다.”

-최근 국가에서 수입하라고 지시한 물품들은 무엇이 있나. 인민생활필수품도 수입하고 있는지.

“국가가 들여오고 싶은 것, 내가고 싶은 것은 모두 정상화됐다. 보석류, 고급 의류, 술, 잔, 주전자, 신발, 가방, 빼똑구두(힐) 등 국가의뢰 기관에서 요구하는 물품들은 없는 게 없다. 그에 비해 인민품으로 들여오는 것들은 양도 적고 가짓수도 많지 않다. 최근에 들여오고 있는 것은 의류용 자재가 전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발발 이후 북러 무역이 활발해졌다. 물론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훨씬 크지만, 러시아와의 무역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로씨야(러시아)는 번갯불이라면 중국은 느긋하게 하는 등잔불이다. 즉, 로씨야하고는 지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무역량도 많지만 오래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기름만 넣으면 계속 불이 켜져 있는 등잔불과 같다. 대신 등잔불은 계속 켜면 콧구멍이 새까매진다. 이미 우리는 중국만 바라보면서 콧구멍이 새까매졌다. 알면서도 등잔불을 계속 켜고 있는 것은 중국과 무역을 계속하지 않으면 완전한 암흑천지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무역실태가 등잔불이 커질락 말락하는 컴컴한 상태인 것 같다.”

-새해가 밝았다. 무역일꾼으로서 바라는 올해 소망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코로나 때 처갓집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빚내서 겨우 살았다. 무역쟁이로 수모받고 천대받을 때 그래도 나를 도와주려고 쌀 1kg, 돈 한 푼이라도 모아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올해는 돈을 좀 벌어서 옷이나 신발, 밥가마(밥솥), 손전화 같은 걸 사주면서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다. 국가에 바라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우리가 무역감데기(일감)을 찾아서 일을 할 테니 무역은 우리한테 맡겨주면 좋겠다. 와크나 수입수출 지표 계획도 우리 무역일꾼들과 토론을 해주면 좋겠다. 무역은 유일사상체계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과 우리나라의 균형을 맞춰서 해야 한다. 코로나에도 살아남은 무역일꾼들은 무역에 잔뼈가 굵었고 여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규정에 매달리며 허송세월하지 말고 현장에 있는 무역쟁이들과 무역기관을 믿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