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노동당의 자화자찬에 깊어 가는 농민의 한숨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전국의 농업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올해 알곡고지점령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속에 각지 농장들에서 풍요한 가을이 펼쳐졌다”고 선전했다. 사진은 결산분배를 진행하는 평얀북도 정주시 일해농장. /사진=노동신문·뉴스1

최근 가을이 깊어 가면서 농민들의 한숨도 같이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개 주둥이에도 이밥 꽃이 핀다’는 대 가을에 어떤 사연이 북한 농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 소식통에 의하면 최근 평안남도 여러 농장이 예년에 없이 서둘러 결산(決算) 분배가 진행되는 가운에 결산 분배 장소로 나서는 농민들의 표정이 너무도 어둡다는 것이다. 올해 농사가 작년보다 잘 되었고, 국가 양곡 의무 수매 계획분도 다 바치고 이제 피땀을 흘려 지은 1년 농사의 결실을 가져가는 마당에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 진다는 것은 심각한 이상 현상이다.

그 이유는 바로 빚에 있다. 1년 식량도 빠듯하고, 북한 돈 20만 원 정도 되는 현금 결산 수준으로는 농장과 농민들이 봄에 돌려쓴 빚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농사가 잘되었지만, 그것은 작년에 비해 잘 된 것이고, 농민들이 부족함이 없는 정상적인 생활을 위한 담보는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 농사를 위해 돌려쓴 빚도 갚지 못한 농장 경리와 작업반장, 그리고 농민의 근심은 깊어 가고 있다. 돌려쓴 돈을 갚아야 신뢰를 얻어 내년 농사에 필요한 자금 융통이 가능하고, 그렇다고 다 주고 나면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겨울을 나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내년 농사에 당과 정부의 투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시장이라도 활성화되기를 기대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것도 요원하다.

아픈 속도 모르고 풍년을 노래하며 노동당과 원수님을 칭송하는 당과 정부 태도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 농민들의 진심이다. “추운 겨울 자식들이 배고픔에 고생할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농사일도 그렇지만 시장이라도 잘 돌아가면 좋겠다”는 것이 농민들의 바람이다.

사실 올해 농사가 작년에 비해 잘 되었지만, 최근 10년간 최저 수준인 작년보다 잘 된 것이지 정상 수준을 회복하여 만성적인 식량부족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현재 북한의 평균 식량부족은 1년간 100만 톤을 넘는 수준으로 위험 수위가 높다고 봐야 하며 시장과 외부 거래에 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당국은 농민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북한 역사상 최악의 상태를 기록할 만큼의 2022년 수확량보다 좀 더 증산되었다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체제 유지를 위한 권력 강화 보다는 먹는 문제로 노심초사하는 민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천륜(天倫)이다.

북한 노동당과 최고지도자가 할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선 시장거래 정상화를 바라는 서민들의 소원을 외면하지 말고 시장 활성화를 통해 농장과 농민이 정상적인 투자를 받으면서 농사일을 할 수 있게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방역을 빙자한 무식한 봉쇄로 시장 경기 침체가 장기화해 빚만 늘어나고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은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면서 어떤 대책이 나올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책 없는 자화자찬과 지속되는 통제 강화는 큰 실망감을 안겼다.

국가 의무 수매 계획만 하면 땡이라는 식의 북한 노동당의 태도는 너무도 반인민적인 것이다. 어려울 때 농민을 챙기고 그들의 속사정을 알아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신뢰에 흠집이 난 노동당과 최고지도자에게 하고 싶은 충고는 상처가 덧나는 것을 막아 체제 유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자그마한 성과에 자찬하지 말고 꽁꽁 얼어붙은 시장에 ‘훈기’를 넣어줄 자율성의 보장을 통한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