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북한대사관도 자력갱생?: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몽골 울란바토르 소재 북한대사관 내부. 비닐을 덮은 온실이 보인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몽골 출장 중에 한국에서 계속 전화가 걸려 옵니다. 블라디보스톡 주재 북한영사관 모자 실종 소식과 관련한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 전화였습니다. 현지 정보지에 실종 관련 내용이 실렸다는 건, 탈북을 전제로 북한영사관에서 러시아 현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사진까지 게재한 건 실종신고가 아니라 엄격히 말해 수배 전단을 배포한 것이지요. 아무쪼록 그들이 블라디보스톡을 멀리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여 한국까지 무사히 들어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러시아 북한영사관 탈북 관련 소식을 접하며, 문득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의 동향은 어떠한지 궁금해졌습니다. 몇 개 언론사와 전화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그길로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높은 펜스로 둘러쳐진 대사관은 적막함이 감돌았습니다. 펜스 틈 사이로 카메라를 밀어 넣어 안쪽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몽골에 올 때마다 거의 매일 북한대사관을 찾아갔지요. 베일에 싸인 북한 정권의 속성처럼 펜스 너머 그들의 삶이 너무도 궁금했고, 무엇이라도 작은 단서를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숙소동과 업무동으로 나뉜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업무동 건물과 외부 펜스 사이 작은 공간을 텃밭으로 가꾼 것입니다. 몽골 주재 다른 국가 대사관은 일반적으로 그 공간에 나무를 심거나 꽃밭을 조성합니다. 그런데 북한대사관은 달랐습니다. 그 조그만 땅뙈기를 밭으로 일군 것입니다. 심지어 온실까지 지어놓았습니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의 날씨에 아랑곳없이 온실에는 난방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계절마다 가꾸는 채소의 종류도 달랐습니다.

취미 생활이나 낭만으로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생존의 현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로 인해 북한을 오가는 모든 교통편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해외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들은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그동안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목숨값으로 바친 충성자금으로 대사관 직원들의 생활은 그나마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착취의 고리가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충성자금은 대사관 직원과 북한 정권을 살찌우게 했지요.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울란바토르에만 6곳의 북한식당이 운영되었고, 유명 캐시미어 공장에는 무려 800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청춘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과 달리 대사관 직원들은 호사로운 생활을 했지요.

대사관에서 생활하는 외교관 자녀가 몽골 국제학교에 다닌다는 건 현지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심지어 외국계 가정교사가 직접 대사관을 방문해 과외를 할 정도지요. 몽골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려면 상위 1%에 속하는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현지인들도 부러워합니다. 그런 북한대사관에서 텃밭을 가꾸는 건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대사관 건물과 담장 사이 그 작은 공간에 텃밭을 가꾸고 자력갱생하는 모습이 꼭 북한의 현재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높은 담벼락 안에서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요?

몽골 울란바토르 소재 북한대사관 내부. 자그마한 텃밭 온실이 보인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수없이 많은 날 동안 몽골을 오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둘러보았던 북한대사관은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신변을 고려할 때 이 지면을 빌어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본 그들은 분명 한국의 경제적 발전상과 자유를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높은 담벼락을 조금만 벗어나면 분명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그들도 분명 알고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평양행 비행기가 재개된다면 해외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과 파견노동자들은 송환 1순위입니다. 평양으로 돌아가면 여기에서 그나마 누렸던 자유를 다시는 경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당신이 아닌, 당신 자녀의 미래를 그려보신다면 지금 무엇을 결단해야 할지 답은 명확합니다. 조그만 땅뙈기에 텃밭을 가꾸며 자력갱생하는 당신들에게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자’라는 선전구호는 가엾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펜스를 걷어차고 세상 밖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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