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4 생존권, 얼마나 위협인가

함경북도 국경지대 모습. 한 밭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북한의 식량난과 자력갱생의 한계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에 관한 지속적인 외부 사회의 문제의식을 야기한다. 극심한 식량난에 국경 인근 지역인 양강도 주민들이 감자 껍질을 모으러 다닌다니(Dailynk, 극심한 식량난에 양강도 혜산 주민들 ‘이것’까지 모은다, 2022년 11월 11일자), 실상은 알려진 것 보다 매우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수확량 문제에는 여러 가지 요건이 준비되어야 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활한 비료 수급인데, 북한 전 지역에 걸쳐 토양의 산성화로 양질의 비료가 공급되지 못하면 수확량을 크게 기대할 수가 없다. 또한 관개 시설 확보로 물을 충분히 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갖춰진 관개 시설도 수해가 한 번 발생하면 망가져 버리는 탓에 저수지 복구에 매해 애를 쓰는 모습이 목격된다. 이러한 기본 요건 외에는 통제 불가능한 기후 변화 등의 변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북한 당국의 태도와 의지이다. ‘자력갱생’을 내건 북한 당국의 정책에는 외부 자본의 유입을 막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외부의 거대 투자 자본 없이 북한 스스로의 힘으로 인프라 문제와 안정적인 비료 공급이 가능할까? 결국 당국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정책을 펼칠 뿐이다. 이로써 ‘종자 재배’와 노동력의 강제적 투입, 생산원가를 줄이려는 소위 쥐어짜기 전략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표현은 ‘고난을 스스로 이겨내라는’ 강제적 메시지가 동반된 정치적 표현이었다. 즉, 배급제의 중단으로 국가기능의 상실을 인정하되, 개인적 수준에서 감내하라는 방치 상태가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당시 북한 내부에서 먹고 살 길을 찾을 다른 길은 요원했다. 외부 세계와의 정보 및 물자 교류가 막혀있는 탓이다. 외부에서 들어가 구제할 기회를 막은 것도 북한 당국의 결정이다.

목표 미달과 생존권의 요건

식량난이 급진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김정은은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지도자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5개년 계획 수립이후 시간이 흐른 만큼 성과가 나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5월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으며 “5개년 전략 수행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음을 인정했다.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개회사”, 『노동신문』, 2021.1.6.)

생존권을 위한 요건은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위원회(CESCR, 이하 사회권 위원회)는 식량에 대한 권리를 “모든 남성, 여성, 아동이, 각자 혹은 공동체의 타인과 함께 언제나 적절한 식량 및 그것을 조달할 수단에 대한 물리적 및 경제적 접근을 가질 때”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체에 있어서 한정되지 않아야 하며, 방식에 있어서도 자유로워야 하고, 권리에 있어서도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식량권, 생존권 제한에 관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주요 조사결과는 북한의 식량권이 더 이상 부족한 식량 문제와 생필품 부족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만 논의될 성격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2018년 10월경 촬영된 평안남도 순천 지역의 풍경. /사진=데일리NK

식량에의 접근성 그리고 이동성 제한

이 가운데 북한 당국이 식량을 북한 주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근이 만연한 시기에도 식량 구입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생산량 부족분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안보 상의 이유로, 군사비 지출액을 유지하면서도 주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했던 것이다.

또한 식량에의 접근과 분배과정은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평양 등 특권층에 대한 특혜 성격의 배급도 존재한다. 인구의 상당수는 스스로 불법과 비법행위를 거듭하며 범죄자로 낙인찍힐 위험에도 생존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역량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주민들, 특히 내륙 지방의 주민들의 생활난은 국경의 그것과 내용면에서 크게 다르다.

적당한 식량에 대한 권리에서 ‘가용성’은 매우 중요한 요건이 된다. “생산지나 자연자원으로부터 직접 먹을 것을 구할 가능성”이 낮은 북한에서 수요에 따라 식량을 생산지로부터 그것이 필요한 곳으로 운반할 수 있는 원활한 유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에서는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어, 자체적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당국은 2003년 4월 들어 암시장을 합법화하였는데, 이후 화폐개혁 등 수 차례 시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현재도 수시로 단속이 이어지고 있으며, 시장 시간은 하루나 사흘에 한 번씩, 3~7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국제 사회는 지속되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이에 따른 장기적 영향에 대해 특히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과 낮은 생존권 문제는 궁극적으로 조선노동당의 방침 외에는 적절한 경제사회적 해결책이 채택되지 못하는 결과이다. 민주적 제도는 물론이고, 표현, 정보,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지는 총체적 한계성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정책적 지향의 한계, 북한 내부에서 의사결정 구조 상에 투명성, 책임성 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길은 요원하다. 열악한 상황에 놓인 농민들이 ‘양곡 빼돌리기’와 같은 비법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정치사회적 요건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식량권에 대해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중대한 침해를 저지른 책임 집단의 규명이 필요하다. 국가 통제 능력을 넘어서는 요인이 분명 존재하지만, 국가와 지도층의 결정이 곧 생존 여부를 가르는 위기 속에서 국가 조치의 책임성은 막대하다. 그들의 결정과 실행, 그리고 방기한 것들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미 국제 사회는 대규모 아사가 발생한 1990년대 통치 세력들의 책임성에 주목하였다. 이미 사망한 김일성, 김정일 지도자 뿐만 아니라,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생존을 위한 구제책으로 활용하지 않은 2000여 명의 엘리트 계급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수호하고자 했던 것은 대규모 주민들의 목숨이 아닌 소속 집단의 정치적 목숨이었다.

‘풍요로운 세계’속에서 발생하는 기아에 대해서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윤리적 문제이며 이를 구제해야 할 도덕적 의무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거대한 경계의 제한성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시선을 애써 돌리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의 절대 빈곤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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