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2 기각된 인권, 연좌제

/그래픽=데일리NK

연좌제라는 압박 기제

북한 당국이 자행하는 인권 침해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연좌제’를 비롯하여, 사회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성분제도는 북한의 인권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나 성분제도의 배경이 된 지주, 자본가들의 반혁명적 반항을 진압한다는 명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의미한 허울로 남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분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공고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과 함께 동반처벌되는 정치범을 포함하여 연좌제는 모든 법적 절차 및 비법적 권력 집행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DB상에 연좌제로 인한 사건발생 건수는 6600건에 달한다(2020 북한인권백서 기준). 생명을 위협하는 사형 제도와 구금시설 내 비법(불법)적 처형, 고문 및 폭행 피해 사건에서 구금과 실종, 국내 추방 등의 인신 구속 조치가 ‘연좌제’의 적용으로 발생한다. 직위 해지, 고등 교육기회 박탈 등의 사회권을 침해하면서 동시에 연좌제를 적용하여 일상에서 자유권을 압박하는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는 북한당국이 신분이나 성분을 기준으로 주민들을 차별함으로써 정치체제에 대한 저항을 억제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연좌제가 세운 사회적 장벽

인권 조사를 해오며 만난 많은 수의 증언자들은 출신성분으로 인한 자기 삶의 상실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성분조사사업에 따른 소속 계층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가 삶의 선택지에서 성분으로 인한 제약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이다. 특히, 지주·자본가 자녀로서 경험했던 연좌제, 억류와 노동착취의 피해자인 6·25전쟁 국군포로들과 그 가족들, 정치범으로 낙인찍힌 반당·반혁명분자와 그 가족들의 피해는 세대에 걸쳐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로 나타났다.

기본군중에 속하는 대부분의 생산직 종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크고 작은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하고도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고르고 이를 쫓는 사회체제 순응을 선택하였다. 일상에서 모든 사안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운신의 제약, 사고의 한계를 지우는 것이다. 즉, 이러한 구조적 제약은 삶에서 결정을 해야만 하는 모든 순간에 부딪히는 장벽이 된다. 그리고 최근 강화된 외부 문화 유입 검열로 인한 연좌제 폐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물림되는 사회적 낙인과 영아살해

북한에서 성분은 자손들에게 대물림된다. 특히, 출신성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지은 사회적 과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연좌제를 적용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기 식량난을 버텨내며 생존을 위한 ‘탈북’을 시도한 많은 탈북자들에게 ‘배신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 중국에 10년 거주하다 체포되어 송환된 최00(여, 1970년대생, 함경북도 무산군 출신)는 재판 전 딱 한 번 가진 면담에서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집안이 열사자 가족인데그런 집에서 태어난 자식이 이런 길을 걸어서 집안이 다 망하게 됐다. 그러니 네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후에 우리 어머니는 직위도 떨어지고…(E09-I-0839)”

중국에서 결혼생활을 하다 아이를 밴 채로 송환된 많은 산모들이 눈앞에서 낙태를 감행해야 했던 증언도 적지 않게 파악된다. 그 이유는 ‘종자가 다른 중국인의 아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태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버려지고, 물을 붓거나 숨을 못 쉬게 하는 악랄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그 장소는 집결소, 보위부, 보안서 등 구금시설 종류를 가리지 않으며, 1990년대에서 2010년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누구의 아이, 자녀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이유는 없다.

2015년 북한 미상의 재판소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하고 있는 모습. /사진=NKDB 제공

북한 사회의 미래는

세계인권선언 제7조는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을 위반하는 어떤 차별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한 차별의 선동에 대해서도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북한정권은 2009년 8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UPR)실무그룹 제6차회기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평등은 사람들 간의 단결과 협력에 기초하여 완전히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보장은 편향되어 있다. 평양과 지방간의 사회적 차별에서 극명화되고 있으며, 출신성분이 낮은 자녀들이 군입대, 대학진학 좌절, 그리고 간부 등용의 기회가 제약되면서 사회적 굴레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반면, 출신성분이 좋은 자녀들은 특혜를 받고 이를 대물림하고 있다. 최근 기성세대와 달리 경제난이 시작된 상황에서 태어나거나 곤궁하고 어렵게 유년기를 보낸 청소년층은 이전 세대와 달리 진취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다층적이고도 촘촘한 연좌제가 작동하는 현재의 북한에서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나의 자식에게 만큼은

2010년대 후반 오랜 고민 끝에 탈북을 결심한 이00(여, 1960년대생, 양강도 김정숙 군)은 2차례에 걸친 탈북 실패에도 다시 도전한 이유를 밝혔다. 그녀의 북한에 대한 첫 의문은 우연히 라디오를 듣고 알게 된 사실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시작됐다.

“(체포된 사람이) 잡히기 전에 황장엽이 달아났다고 말했대요. 취급 받고 보위부가 이렇게 자료를 올려 보냈어요. 그런데 일주일 만에 교양사업을 잘해서 내보내라.. 이렇게 회답이 왔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이 사실이 옳구나.. 저녁에 또 가서 라디오를 들었어요.”

이후 라디오에서 들은 김정일 일가의 부정 축재를 듣고 두 번째 균열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고난의 행군 시작되면서 수없이 많은 꽃제비와 아사자들이 목격될 시기였다. 자신의 아이들만은 살려야 겠다는 생각에 밀수에 매달렸다. 그러나 화폐개혁으로 모든 것을 상실한 나머지 정권에 대해 한 말로 ‘범죄자’로 낙인찍힐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연좌제로 인해 아이들의 삶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점을 토대의 상층부에 속했던 입장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 먼저 탈북을 감행하고, 두 아들을 무사히 한국에 데려왔다. 다음은 그녀가 남긴 말이다.

보위부에서 내가 반동 말을 했다고당시 정말 못살겠더라고요. 그동안 우리가 속으면서 살았구나.. 막 반항심이 기차게 나는 거예요. 내 자식에게만큼은 이런 세상 물려주기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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