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 내에서 노동력 및 자금 착취에 탈북을 고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보의 ‘해외체류 북한 주민의 제보·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배너를 보고 메일을 보냈다는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A씨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지난 1월 중순 돌연 ‘노동자들을 들여보내지(귀국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하달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 봉쇄가 완화되면서 장기간 발이 묶여 있던 북한 노동자들의 순차적 귀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실제 지난해 11월 초 건강상의 문제로 일을 못 하는 노동자들을 귀국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돌연 지시를 번복해 귀국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노동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들의 노동력을 통해 벌어들이는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당국이 귀국을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그럼에도 북한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도 있는데, 러시아 현지에서 ‘1번 동지’, ‘2번 동지’로 불리는 북한회사 사장이나 당비서에게 잘 보인 노동자들이라는 게 A씨의 이야기다. 그동안 뇌물을 착실하게 바친 순서대로 귀환길에 오르고 있다는 뜻으로, 북한식 부정부패가 해외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노동자들은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간부들은 몸이 아파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계획금은 곧 법”이라면서 매달 650달러씩 거둬가고 있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몸이 아픈)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일을 못 나가다가 4개월 정도 일을 못 하면 거의 1년 동안 힘들게 번 돈을 빼앗기게 되니 할 수 없이 아픈 몸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매달 걷는 금액이 북한 당국이 요구한 상납금(200달러)보다 3배 정도 많다는 점도 노동자들의 불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장이나 당비서 등 간부들이 거주비나 회사 경영비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착취해 가면서 그 돈으로 좋은 차를 타고 다니거나 주택을 구입하는 등 자신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에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간부들은 ‘당의 방침’이라거나 ‘조국의 지시’라면서 뭉개는 경우가 다반사고, 심지어 상급당에 제기하겠다고 하면 ‘해볼 테면 해보라’, ‘너만 손해 본다’는 식으로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현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간부들은 강도나 다름없다”, “전쟁 나면 (그들부터) 총으로 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는 전언이다.
A씨는 “사실 간부들은 모두 다 한통속이니 무서울 게 없는 것”이라면서 “설사 신소가 들어가서 검열이 내려온다 해도 돈을 찔러주면 무마되니 죽는 것은 (신소를) 제기한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본보는 러시아 내 북한 보위원 최성철 씨의 비행을 다룬 제보 기사 이후 북한 당국이 최 씨를 처벌하기는커녕 “성실한 보위일꾼”이라고 격려하며 사건을 덮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보위원 만행 폭로 기사에 “적들의 간사한 책동” 결론)
결국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이 탈북을 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A씨는 지적했다. 그는 “조국에서 떠날 때는 (사상적으로) 철저히 준비된 사람이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순간에 변하게 된다”면서 “처음부터 (탈북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 사장과 당비서들의 행태 때문에 그 길(탈북)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제보는 북한 국가보위성 해외반탐국이 현지 보위원들에 ‘적들과 내통하는 내부 불순분자 색출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제보 기사 후폭풍…”적과 내통하는 불순분자 색출” 지시 하달)
러시아 등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있음에도 외부와 소통하며 부조리를 알리려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앞으로도 이 같은 폭로나 고발 움직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NK는 해외에 계신 북한 주민들의 제보·연락을 기다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내 ‘해외체류 북한 주민의 제보·연락을 기다립니다’ 배너를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