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셋이 걸어도 그중에 스승이 있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선생이라 생각하며 사는 게 세상살이의 지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반면교사(反面敎師)와 같은 고사성어가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일 터이다.
국가지도자의 덕목
최고통치자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뒤돌아보며 역사와 국민, 그리고 미래와 대화해야 한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도 선의의 경쟁,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
특히 자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비핵화의 가면을 벗고 ‘한반도 공산화 통일’ 야욕을 노골화하고 있는 김정은을 맞상대·리드해 나가야 하는 특수한 위치에 있다. 주적(主敵)이자 대화상대이기도 한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김정은과 북한 체제의 장점까지 국정운영에 활용하는 열린 마인드, 통 큰 자세를 가지면 금상첨화다.
필자는 최근 《김정은 대해부》, 《김정은과 바이든의 핵시계》, 《북핵과 분단을 넘어》 등의 3책자와 ≪데일리NK 곽길섭북한정론≫ 칼럼 코너를 통해 김정은의 리더십과 통치행태를 다각도로 분석·제시해 왔기 때문에 이글에서는 따로 상술(詳述)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관련 정보는 이미 국정원 등 안보부처에서 심층적으로 보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은 당선인이 대통령직에 취임(5.10)한 후 국정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만한 김정은의 통치행태를 알기 쉽게 압축적으로 서술해 보려 한다. 일종의 화두(話頭)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만한 김정은 통치행태
가장 먼저, 김정은이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도자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과소평가(붕괴론)하거나, 선의(감상적민족주의)로만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희대의 승부사·독재자를 상대할 때는 다소 과하게 평가하고 대비하는 게 더 안전하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 김 씨 일가 영구집권 기반 구축,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3대 목표(필자는 ‘김정은夢’으로 명명)로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hardware)로 핵·미사일을, 소프트웨어(software)로 인간·사회 개조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대북제재 위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전략을 구현하는 절호의 기회, 즉 문을 걸어 잠그고 평소 꿈꾸던 세상을 건설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대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경제난 등 여건의 악화로 36년 동안이나 순연해 오던 당대회를 이미 2차례나 개최하며 ‘경제발전 5개년 계획’, ‘국방발전 및 무기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또한 당규약-헌법-법률 재정비와 당·정·군·사회단체 조직의 활동을 보다 조직화·다각화하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도 이 같은 김정은의 장기적 안목에 기초한 대전략과 세부전략전술 시행을 눈여겨봐야 한다. 비록 임기가 5년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북핵문제 해결 로드맵을 비롯한 각 분야의 5년간 세부 국정 로드맵이 꼭 필요하다. 최소한 2년 후인 2024년 4월 제22대 총선까지의 큰 그림은 가지고 세부 국정활동을 조정하며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안보우선주의(security-first)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미국과의 ‘2.29합의’(영양지원 對 모라토리움)를 잉크로 채 마르기 전에 파기(2012.4.13)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해 오고 있다. 안보가 없으면, 지금은 물론 미래도 없다는 판단이다. 최근 들어서는 체제안전 담보장치를 넘어 “서울 주요시설 타격”까지 언급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도 안보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게다가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안보주권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어야 한다. 북한과 중국에게 당당하고, 국민들에게는 솔직해야 한다, 국론결집, 자강(自强), 한미동맹 강화,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답이다. 섣부른 대화는 김정은에게 핵·미사일 고도화의 시간만 더 벌어주고 체제에 자양분을 수혈해 주는 격이 될 것이다.
셋째, 승부사(勝負士) 기질이다. 김정은은 서자이자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후계자로 낙점되었고, 집권 후에는 아버지 김정일이 임명했던 후견인 리영호 군 총참모장·장성택 당 행정부장 등을 조기에 숙청하고 홀로서기를 선택하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국경을 선제적으로 차단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원 수령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이밖에 미국과의 판갈이 싸움·정상회담 참가 등 헤아릴수 없는 정도의 결단을 하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당정군·사회단체 시스템 재정비, 30~40대 젊은 층 등용 확대 등으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도 당장의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큰 시각을 가지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특히 사드(THAAD) 추가 배치, 쿼드(Quad) 가입 등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보다 더 당당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을 미리 겁내어 알아서 기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 중국이 그릇된 행동을 취하면, 미국 등 우방국과 연대해서 중국에 불이익을 준다는 결기 정도는 보여야 한다.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처럼 우리사회를 전반적으로 혁신해 나가야 한다. 그 밥에 그 나물로는 여소야대의 높은 벽을 넘어 국민의 기대를 충족해 나가기 어렵다. 신선함·혁신만이 답이다. 사족(蛇足)으로,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여러모로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서 별문제가 없긴 하지만, 필자는 평소 통일부 장관은 ‘게임을 할 줄 아는 30대 여성’이 기용되면 좋겠다고 애기하곤 했다. 북한을 상대하는데 기존의 관점과 방식은 이미 한계를 노정했기 때문이다.
젊고 개성 있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여성 장관 후보자가 나오면 남북한 청소년 간 게임도 제안하고, 방송 교류·인터넷 개방도 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지난 대선 기간 중 당선인에게 등을 돌린 ‘이대녀’들도 돌아오지 않을까?
넷째, 현장(field)을 중시한다. 김정은은 물론 김일성·김정일도 생전에 현지지도활동을 즐겨했다. 생생한 현장 목소리 청취와 격려, 본보기(model) 창조로 생산투쟁을 독려하는 주요 방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전국에 산재한 특각에서의 휴식 기회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우리 새 대통령도 한 달의 1/3 동안은 서울을 떠나 지방에 체류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국정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이른바 ‘움직이는 대통령실’ 개념을 도입하면 ▲책임 총리·장관제 구현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지방에 대한 관심도 제고) ▲국민 속으로의 대선 공약 적극 실천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도 자연스럽게 일을 떠나 ‘쉼’과 ‘새로운 것과의 만남’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부수 효과도 거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연출이긴 하지만 인간미(人間美)적인 요소다. 김정은은 애민정치를 표방하면서 필요할 때는 ‘악어의 눈물’까지 보인다. 수해 현장에 직접 RV카를 몰고 간다. 러닝셔츠 바람으로 농민들과 대화를 나눈다. 쪽배를 타고 NLL인근의 섬을 전격 방문한다. 주민과 군인들이 감격해하지 않을 수 없다. “각본이다”며 무조건 비하하기에 앞서 그 효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새 대통령도 서민 지도자, 국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의 이미지(PI: President Identity)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억지로 좋은 상(像)을 만들려고 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대통령이 평소 가지고 있는 서민적 풍모, 즉 요리하는 남자, 막걸리와 소주를 좋아하는 털털함, 당구 500을 치는 스포츠맨 등의 모습을 취임 후에도 그대도 보여주면 된다.
필자는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휴가도 가고, 야당 인사·청년·근로자·농민 등과 술잔도 기울이며 취미생활도 함께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결어: 적에게서도 배우는 초월적 발상
지금까지 우리는 김정은의 유의미한 통치행태, 즉 ①대전략(grand strategy)에 기초한 전략전술적 행보 ②안보 우선주의(security-first) ③승부사(勝負士) 기질 ④현장(field) 중시 ⑤친인민적(親人民的) 요소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면을 보고 과대평가한 게 아니냐”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특히 한정된 지면이라 논리가 비약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큰 틀, 화두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보름여만 지나면 임기 5년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김정은은 승부사다. 당선인도 승부사다. 두 승부사의 만남이 기대된다. 아무쪼록,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김정은의 장·단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하여 당면한 북핵 위기와 세대-지역-계층-진영 간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나가길 바란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자유·평화·번영이 넘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우뚝 서게 해주길 소망해 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 한반도는 일찍이 손자가 설파한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정신을 넘어 <적에게서 배운다>는 초월적(超越的) 발상까지도 필요한 때이다.
하나하나를 모아모아, 세계로-미래로-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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